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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석 경제부장

지난주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의 814억원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행사 소식이 전해졌을 때 시장의 반응은 ‘당연하다’ 또는 ‘대수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경영진의 스톡옵션 행사는 시장이 달가워하지 않는 이벤트다. 주가가 고점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져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먹튀 논란’ 이후 기업 임원의 스톡옵션 행사는 탐욕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김 부회장 건에서 메리츠 주주들은 불만을 표출하기는커녕 ‘성과에는 보상이 따르는 게 맞는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그다음 날 발표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3조6000억원 유상증자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지금까지도 싸늘하다. 돈을 잘 벌어 현금 흐름이 좋은 회사가 왜 주가가 고점인 지금 역대 최대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느냐는 반응이다.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거나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 왜 기존 주식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유상증자를 택했는지 의아하다는 것이다. 이 회사가 한 달 전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비상장 계열사에 1조3000억원을 주고 한화오션 지분을 사들인 일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회삿돈은 총수 일가의 현금 확보에 쓰고 투자는 주주의 돈으로 하겠다는, 결국 총수 일가의 이익을 고려한 결정 아니냐는 비판이다.

두 케이스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다른 이유는 ‘신뢰’에 있다. 김 부회장과 메리츠는 오랫동안 주주 친화적인 행동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 ‘쪼개기 상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다른 기업과 달리 계열사를 지주사에 편입해 하나의 상장사로 관리했다. 높은 배당 성향,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으로 이익을 충분히 주주와 나눴다. 그 결과 주가는 계속 올라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제치고 국내 주식 부자 1위가 됐다. 지배주주가 해마다 거액의 배당을 받아가도 주주들은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소액주주에게도 같은 식의 보상이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주주들이 유상증자 결정을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한화에어로는 억울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유상증자 목적이 글로벌 투자를 통한 미래 성장이라고 설명한다. 전 세계에 생산 거점을 확보하는 등에 쓸 돈이라는 얘기다. 이런 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성장한 다른 기업의 사례도 국내외에 부지기수다.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총수 일가를 위한 일이라는 의심도 억측일 수 있다. 그럼에도 주주들이 회사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데는 그간 주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이 회사의 책임도 있다고 봐야 한다.

한화에어로에 대한 불신은 단지 개별 기업의 이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여러 상장사가 그동안 주주에게 보여준 태도가 쌓여 이런 불신을 만들었다. 잘나가던 회사를 물적분할해 상장함으로써 주가를 떨어뜨린 사례, 시장과 다른 기준의 합병 비율로 주주에게 손해를 끼친 사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배주주에게 더 유리하게 지배구조를 개편한 사례를 겪으면서 주주들은 기업의 결정이 누구를 위한 일인지 의심부터 하게 됐다.

지난해부터 모두가 외치는 주식 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기업과 주주가 신뢰를 쌓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업이 주주들에게 믿음을 줘야 주주도 기업을 믿고 투자할 수 있다. 상장사들이 알아서 잘하면 최선이지만 그렇지 않다 보니 법을 고쳐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자는 방안이 나온 것이다. 경제계는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평소 주주를 충분히 배려해 의사결정을 했다면 만들어질 필요가 없는 법이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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