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왼쪽 두 번째) 현대차그룹 회장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두 번째)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미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 미국 백악관에서 향후 4년 동안 210억 달러(약 30조8175억원)의 (대미) 신규투자를 한다고 밝혔다. 워싱턴=AP 뉴시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4일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210억 달러(약 31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다음 달 2일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개시를 앞두고 선제적으로 이뤄진 현대차의 발표로 트럼프 정부의 한국에 대한 관세 압박이 한결 완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현대차 투자발표 현장에서 상호관세 유연성을 시사한 가운데 "미국에서 만드는 현대차는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화답했다. 이에 미국이 실제 다른 수출 경쟁국보다 더 낮은 관세율을 한국에 적용할 기반이 마련됐다는 기대감도 크다.
정 회장이 이날 공개한 대미 투자계획은 1986년 현대차의 미국 진출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올해부터 2028년까지의 투자 내용을 담고 있다. 조지아주 신규 자동차공장의 생산능력을 50만 대로 확대하고, 루이지애나주에 1,300여 명의 현지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제철소를 건설하는 게 골자다. 정 회장은 "철강과 부품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미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내 완성차 밸류체인을 완성하겠다는 취지로 현대차의 글로벌 위상 강화를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관세 압박을 채찍 삼아 미국 제조업 재건을 촉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호응한 투자계획인 것이다.
대기업이 앞장서 관세장벽 완화의 실마리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정 회장의 투자계획 발표는 평가할 만하다. 특히 대통령 탄핵정국이 계속되면서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뤄진 민간영역의 적극적 대응이기에 더 그렇다. 반면에 현대차에 이어 우리 대기업들이 잇따라 대미 투자를 확대하면서 오프쇼어링이 심화될 경우 국내 산업기반의 공동화가 진행되고, 일자리가 축소될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에 생산시설을 둔 기업의 미국시장 경쟁력 추락, 부품사 등 유관기업들이 겪게 될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현대차는 물론 대미 투자 확대를 추진하는 우리 기업들은 국내 투자 축소를 경계하고, 정부는 미국의 통상 압박 앞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