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기획재정부, 그래픽=송영 기자
상속세·국민연금·상법 등 묵직한 법안이 논의되면서 국회가 한창 시끄럽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한 여야 간 공방이 치열하게 오간다.
정치권에서 상속세 부담 완화가 거론되는 것은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면서다. 상속세는 1990년대 재벌들이 내는 세금이었다면 현재는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있으면 낼 만한 세금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 상속세 대상자가 2000년 1400명에서 2023년 2만 명으로 14배 급증했다(기획재정부).
정부도 칼을 들었다. 세금을 매기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대수술을 한다. 1950년 상속세법 도입 후 75년 만에 처음 시도하는 개편이다.
◆상속세 75년 만에 대수술
①주는 만큼 → 각자 받는 만큼
정부는 현행 ‘유산세’를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상속세 개편안을 내놨다. 물려주는 총재산 기준 대신 상속인들이 각각 물려받은 재산에 세금을 매긴다는 게 핵심이다. 현행 상속세는 누진세 체계를 따르고 있다. 유산취득세 적용으로 과세표준(과표) 구간이 낮아지면 세 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받은 만큼 세금을 부담해 과세형평을 높이고 공제 효과도 따로 적용해 실효성도 커진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예컨대 상속세 공제 종류 중 장애인 공제는 장애인 생계를 지원해 주자는 취지인데 현행에선 비장애인인 유족도 이 공제를 적용받는다. 이것을 바로잡자는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상속세가 있는 나라 중 유산세 방식은 한국과 미국, 영국, 덴마크 등 4개국이다. 유산취득세 방식은 20개국이다.
지금은 전체 상속액에서 일괄공제 명목으로 5억원을 빼준다. 기초공제(2억원)+자녀·장애인 등 추가공제의 합계와 비교해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면 된다.
유산취득세 방식에선 상속인별로 따로 공제하기 때문에 일괄공제란 개념이 무의미해진다. 정부는 일괄공제와 기초공제를 없애고 대신 현재 1인당 5000만원인 자녀공제를 기본공제로 삼고 10배 더 많은 5억원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형제는 2억원을 기본공제한다.
예를 들어 그간 자녀 2명이 상속받으면 자녀 공제가 적다보니 대부분 일괄공제를 택했다. 공제액이 총 5억원이란 의미다. 앞으로는 각각 기본 5억원, 총 10억원을 공제받는다. 미성년·장애인 등일 경우 추가 공제도 개인별로 더 받을 수 있다.
배우자 공제 혜택도 현행보다 확대한다. 현재는 △배우자가 실제 상속받은 금액이 없거나 5억원 미만이면 5억원을 △배우자 상속 금액이 5억원 이상이면 법정상속분(배우자:자녀=1.5:1)에 따른 상속액을 최대 30억원 한도 내에서 공제받는다. ‘일괄공제 5억원+배우자공제 5억원=합계 10억원’이 사실상 면세점(세금이 면제되는 기준)이 돼 왔다.
개편안에선 최대 공제한도 30억원을 유지하되 10억원까지는 법정상속분과 관계없이 전액 공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예컨대 배우자와 자녀 1명이 10억원을 상속받을 경우 현행에선 배우자는 7억원까지만 공제받을 수 있다면 개편안에선 10억원 모두 공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속세 면세점은 4인가구 기준으로 배우자 공제 10억원에 자녀공제 10억원(5억+5억원)을 더해 20억원까지 올라간다. 실거래가 20억원 안팎인 서울 강남권 아파트 한 채를 물려줘도 상속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정부는 3월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4월 공청회를 거쳐 5월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안 국회 통과에 주력한 후 2026~2027년 보완 입법을 거쳐 2028년 최종 시행하는 일정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야권이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어 이런 계획이 현실화할지는 불투명하다. 야당은 ‘세수 감소’를 반대 이유로 들었는데 실제 정부도 유산취득세 시행 시 연평균 2조원 정도의 세수가 감소할 것이라 보고 있다. 고액 자산가일수록 유산취득세 전환으로 인한 세 부담 경감 혜택이 크다는 점도 짚어볼 만한 대목이다.
②‘배우자 상속세 폐지법’ 난항 예고
정부 개정안과 별개로 국회에서는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3월 17일 배우자 상속세를 폐지하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속세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8명 전원이 법안에 이름을 올렸다.
개정안은 배우자 공제의 ‘30억원 한도’와 ‘법정 상속분 한도’를 모두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배우자 상속분이 얼마가 됐든 세금이 ‘0원’이란 얘기다.
여당은 ‘이중 과세’ 논란을 이유로 들었다. 현행 상속세법은 부부 중 한 명이 먼저 사망한 경우 상속 재산에 대해 ①생존한 배우자에게 상속세를 물리고 ②이후 배우자까지 숨지면 자녀에게 상속세를 또다시 부과하는 구조다.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 국가는 배우자 상속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다(국회예산정책처). ‘유산세’ 방식을 사용하는 OECD 국가 중에선 한국만 유일하게 배우자 상속세를 갖고 있다.
하지만 법안 발의 후 이튿날 야권이 신중론을 제기하면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상속세 개편을 주도하고 있는 임광현 의원은 “생존 배우자가 전액 상속 공제를 받더라도 추후 사망 시 자녀에게 상속하는 것을 감안하면(2차 상속) 상속세 전체 금액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속재산 100억원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을 할 경우 2차 상속까지 고려한 총 상속세는 현행 체계에서는 약 35억2000만원, 법정상속분 내 공제 폐지할 경우는 약 34억7000만원, 전액 공제 폐지할 경우는 약 39억2000만원”이라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법정상속분 한도 내에서 폐지하는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③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는 제외
중소·중견기업계의 관심도가 높은 ‘가업상속공제 한도’ 확대는 여야는 물론 정부가 내놓은 상속세 개편안에서도 빠졌다. 가업상속공제는 피상속인(사망자)이 10년 이상 계속해 경영한 중소·중견기업을 상속인에게 승계할 경우 가업상속 재산가액의 100%를 공제해 주는 제도다. 피상속인의 경영기간이 10~20년이면 300억원, 20~30년이면 400억원, 30년 이상이면 600억원까지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단 중소기업은 자산총액이 5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은 사업연도의 매출액 평균금액이 5000억원 미만이라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세법개정안에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1200억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야당 반대 등으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바 있다.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와 대주주 할증 과세 폐지, 가업승계 땐 과세하지 않고 추후 처분 때 세금을 물리는 자본이득세로의 전환도 이번 개편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여당은 현재 50% 수준인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은 ‘부자 감세’라며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행 최고세율 50%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 다음으로 높다. 최대 주주 할증(20%)을 적용하면 세율은 60%로 뛴다.
◆국민연금 18년 만에 개혁
①더 내고 더 받고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3월 20일). 2007년 이후 18년 만이자 1988년 국민연금 도입 후 세 번째 연금 개혁이다. 이번 연금개혁안의 핵심은 지금보다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더 받아서 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뒤로 늦추는 것이다.
개정안은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린다. 내년부터 해마다 0.5%포인트씩 8년 동안 단계적으로 인상한다. 소득대체율(받는 돈)은 40%에서 43%로 조정한다.
현행대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유지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 수지 적자로 전환해 2055년 완전히 소진될 전망이다(보건복지부). 개정안대로 올리면 기금의 수지 적자 전환 연도는 2048년, 소진 연도는 2064년으로 늦춰진다.
현재 월급 300만원을 받고 있는 40대 직장인의 경우 국민연금 월 보험료는 27만원(월급의 9%)이다. 이 금액이 2033년 39만원(13%)으로 증가한다. 보험료는 매달 회사와 절반씩 부담해 개인이 내는 돈은 13만5000원에서 19만5000원으로 올라간다.
65세부터 받는 연금액 월 129만원(소득대체율 43%)을 받게 된다. 이전 체계에선 월 120만원(소득대체율 40%)을 받았다.
②아이 낳거나 군 복무하면 연금 더 받는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인정해 주는 크레딧도 확대한다. 출산 크레딧은 첫째와 둘째는 각각 12개월, 셋째부터는 18개월씩 인정하고 상한은 없앤다. 현행은 둘째부터 자녀 수에 따라 추가 가입 기간을 산입하도록 돼 있다. 군 복무 크레딧은 현행 6개월에서 12개월로 늘어난다.
저소득 지역가입자에 대해선 12개월 동안 보험료 50%를 지원한다. 국가가 국민연금의 안정적·지속적 지급을 보장하는 내용의 ‘지급 보장 명문화’도 국민연금법에 반영한다.
이번에 잠정 합의한 연금 개혁안은 내는 돈과 받는 돈(숫자)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모수개혁 합의를 토대로 노후 보장 체계를 체계적으로 만드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구조개혁 문제는 추후 국회 연금개혁특위를 구성해 논의한 다음 여야 합의로 처리하기로 했다. 특위는 국민의힘 6명·민주당 6명·비교섭 단체 1명에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기로 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동상이몽 상법 개정
논란의 상법 개정안이 3월 13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상장 여부와 무관하게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상장 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 등도 담고 있다.
민주당은 기업 합병이나 분할로 피해를 입는 소액 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충실 의무 대상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재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경제 8단체는 3월 19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거부권 행사를 호소했다. 개정안은 ‘총주주의 이익 보호’,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 등 표현이 모호하며 기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핀셋 개정’이 아니기 때문에 헌법상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전자주주총회 도입 의무화에 대해서도 “수백만 명의 주주가 안정적으로 동시 접속 가능한 전자주주총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부정확한 주주 자격 확인 및 대리투표, 해킹 등 보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 대행은 거부권 행사 시한까지 법안 공포 여부를 숙고하겠다는 입장이다. 거부권 시한은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날로부터 15일이다. 그간 최 대행은 상법 개정에 반대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비쳤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힘을 싣고 있는 상태다. 정부·여당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은 자본시장법 개정을 대안으로 내놨다.
정부·여당 내에서도 상법 개정안을 놓고 이해관계가 묘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상법 개정 거부권 건의에 대해 ‘직을 걸고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여권의 반발을 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일부에서 금감원이 의견을 내라 마라 하는 것 자체가 월권”이라며 “다음 주든 언제든 한국경제인협회에 공개적인 열린 토론을 제안한다”고 했다(3월 19일).
앞서 이 원장은 상법을 바꿔야 한다고 줄곧 얘기해 오다 지난해 11월부터 정부 입장에 발 맞추고 재계 볼멘소리를 반영해 자본시장법부터 개정하자는 쪽으로 선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