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군·경찰, 폭력 현장 수수 방관
집단 린치 당한 팔 감독 구급차에서 체포
전쟁 후 이스라엘 정착민 폭력·약탈 급증
저녁식사 위해 집 비운 사이 집 빼앗기도
집단 린치 당한 팔 감독 구급차에서 체포
전쟁 후 이스라엘 정착민 폭력·약탈 급증
저녁식사 위해 집 비운 사이 집 빼앗기도
다큐멘터리 <노 아더 랜드>로 올해 오스카상을 수상한 팔레스타인 감독 함단 발랄이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구 자택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체포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오스카 장편 다큐멘터리상 수상작인 <노 아더 랜드>를 만든 팔레스타인 감독이 요르단강 서안지구 자택에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집단 공격을 받았다. 최근 이스라엘 극우 정치권 인사들의 선동으로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겨냥한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폭력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23일(현지시간) CNN과 가디언 등 보도에 따르면 서안지구 수시아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감독 함단 발랄의 자택에 복면을 쓴 유대인 정착민들이 몰려와 그를 집단 린치했다.
발랄은 머리와 복부에 피를 흘리는 등 부상을 입었고, 이후 구급차가 도착했으나 이스라엘 군인들이 구급차에 난입해 그를 끌고 갔다. <노 아더 랜드>의 제작자 유발 아브라함은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 “군인들이 그를 끌고 간 후 발랄에 대한 소식은 없다”고 적었다.
정착민들의 집단 구타 현장에는 이스라엘 경찰과 군인들도 있었으나 이들을 제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소식을 듣고 발랄의 집으로 달려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오히려 총을 쏘며 접근하지 말라고 위협했다.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점령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유대인 비폭력센터’ 소속 미국인 활동가 5명도 유대인 정착민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CNN은 전했다. 이 단체는 정착민 수십 명이 곤봉과 칼 등 무기를 휘두르며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했고, 일부는 소총을 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내고 “테러리스트가 이스라엘 시민에게 돌은 던져 차량을 파손한 뒤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면서 돌을 던진 팔레스타인인 3명과 폭력에 연루된 이스라엘인 1명을 조사하기 위해 체포했다고 밝혔다.
발랄은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 농부이자 감독으로 서안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겪어온 폭력과 추방을 기록한 다큐 <노 아더 랜드>를 공동 연출해 이달 초 미국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이스라엘 문화부 장관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이 다큐멘터리의 오스카 수상을 “영화계의 슬픈 순간”이라고 지칭했다.
이 다큐에서 발랄은 이스라엘 정착민들로부터 집과 땅을 빼앗겠다는 위협에 시달렸다는 자신의 경험을 풀어냈다. 발랄은 이스라엘 정착민들과 대화 내용도 기록했는데, 그들은 신이 자신에게 발랄의 땅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노 아더 랜드>를 공동 연출한 바젤 아드라는 가디언에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거의 매일 이스라엘 정착민들로부터 물리적 공격을 받고 있다”면서 “이 공격은 아마도 영화와 오스카상에 대한 복수일 수 있다”고 말했다.
24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팔레스타인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집에 침입해 이스라엘 국기를 걸고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APF연합뉴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인 서안지구에서 점령을 확대하기 위해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하며 정착민에 의한 폭력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무장한 정착민 무리가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해 집과 상점, 차량을 방화하거나 집을 빼앗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 등에 따르면 서안지구 헤브론에 사는 한 팔레스타인 가족이 저녁 식사를 위해 집을 비운 사이 유대인 정착민들이 몰려와 집을 점거하고 원주인을 몰아낸 일도 발생했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이 집을 합법적으로 매입했다고 주장했으나, 이곳에 50년간 대를 이어 거주해온 팔레스타인 가족은 집을 판 적이 없다고 맞섰다.
24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유대인 정착민 활동가(왼쪽)가 집을 빼앗긴 채 주저 앉아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앞을 지나며 통화하고 있다. 이 팔레스타인 가족은 라마단 단식을 푸는 이프타르 저녁 식사를 위해 외출한 사이 유대인 정착민들이 집을 점령 해 50년간 대를 이어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 자국민을 집단 이주시키면서 팔레스타인 원주민들과 정착민 사이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 정부가 나서 정착민들을 무장시키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향한 폭력 행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부 장관 등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들이 극우 성향 정착민들에게 무기를 나눠주며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라고 부추기는 등 폭력을 선동해 왔다.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세운 전초기지 수는 전쟁 발발 후 50% 가까이 증가했다.
정착민 폭력이 기승을 부리자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상대로 극단적이고 조직적인 폭력을 저지른 유대인 정착민 및 단체을 제제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을 지지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이들에 대한 제재를 해제했다.
도 넘은 폭력과 영토 약탈로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스라엘 국내 첩보기관인 신베트의 수장이 정착민들의 폭력 행위가 이스라엘 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를 국가가 부추긴 ‘테러 행위’라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