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의 한 전광판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왕관을 쓴 모습과 함께 “왕을 원하지 않는다고?”는 문구가 적힌 광고가 실렸다. 광고는 ‘일론을 해고하라’고 요구하는 서명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미 의회를 향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머스크를 막아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시각 21일 밤 9시 반까지 11만1297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국방부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에게 중국과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의 작전 계획을 보고할 예정이라고 알려진 가운데, 머스크가 22일 국방부에 도착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이미 연방 정부를 축소하는 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머스크가 자신의 사업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미국의 가장 민감한 정보까지 제공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이해 충돌’에 더해 머스크의 권한을 둘러싼 논란이 더 퍼질 모양새다.
20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는 21일 머스크를 위한 미군의 작전 계획 브리핑이 미 국방부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첫 보도를 한 뉴욕타임스는 익명의 취재원 네명으로부터 확인했다고 이런 내용을 보도했다.
보도가 나가자 국방부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해당 일정이 중국 관련 군사계획과는 무관하다며 강력히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밤늦게 소셜미디어에 “중국은 언급되지도 논의되지도 않을 것”이라 “완벽히 거짓”이고 올렸다. 숀 파넬 대변인은 소셜미디어에 “이건 100% 가짜 뉴스다. 그냥 뻔뻔하고 악의적”이라고, 헤그세스 장관도 “이건 ‘극비 중국 전쟁 계획’에 대한 회의가 아니다. 혁신, 효율성 및 스마트한 생산에 대한 비공식 회의”라고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왼쪽) 옆에서 테슬라 차량을 배경으로 언론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머스크의 정치 행보에 대한 불만으로 테슬라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테슬라 주가까지 큰 폭으로 내리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테슬라를 구매하는 등 머스크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러자 월스트리트저널도 머스크가 중국 전쟁 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받을 예정이라는 보도를 내놨다. 신문이 익명의 취재원 둘에게 확인한 내용은 머스크가 해상 작전 및 표적 계획을 포함해 중국과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군의 대응 전략에 대해 들을 계획이며, 중국 문제는 이 자리에서 논의될 여러 주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또 이번 브리핑은 머스크의 요청에 따라 마련됐다고 사안을 잘 아는 취재원을 인용해 전했다.
머스크를 브리핑하는 자리에는 헤그세스 장관과 스티브 파인버그 차관, 새뮤얼 파파로 미군 인도·태평양 사령관과 크리스토퍼 그레이디 합동참모본부 부의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브리핑은 국방부에 보안이 유지되는 회의실에서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통상 합참 고위급 등이나 그들의 고위 참모와 전투 지휘관들이 회의하는 곳이다. 헤그세스 장관 본인도 지난주와 이번 주 두 차례에 걸쳐 처음으로 이 계획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DOGE)를 이끄는 머스크는 이미 기밀 접근 권한을 받은 상태다. 게다가 계획을 공유하는 범위에 대한 판단 권한은 헤그세스 장관에 있어, 머스크가 이번 보고를 받아도 형식적으로는 문제 될 게 없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머스크가 어떤 이유에서 이 브리핑을 받기로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정부효율부를 이끄는 그가 국방부의 예산 삭감에 나서기 전에 중국과 전쟁을 위해 어떤 무기 체계들이 사용되는지 이해했어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신문은 짚었다.
3일 미국 워싱턴 상공에서 찍은 미국 국방부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문제는 머스크가 운영하는 사업체들이 국방부와 광범위한 계약을 맺고 있고 그가 사업적으로 중국과 관계가 깊다는 점에서 중국에 대한 전략적 비밀에 대한 접근권이 주어졌을 때 심각한 이해 충돌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예를 들어 머스크가 소유하는 스타링크 위성들은 우주에서 데이터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가 브리핑을 통해 중국과 전쟁에서 미국이 그의 위성들을 방어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데 관심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머스크가 국방부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기구들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고, 그가 최고경영자인 스페이스 엑스에서 그것을 개발해 판매할 수도 있다. 머스크의 스페이스 엑스는 이미 미국이 새로운 군사 위성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며 연방 정보기관들로부터 수십억달러를 받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미군이 스페이스 엑스의 스타링크 위성 통신 네트워크를 이용해 정보를 주고받고 있어, 국방부로부터도 수억달러를 받고 있다. 지난해 스페이스 엑스가 미 공군과 맺은 계약만 16억달러(2조3천억원) 규모에 이른다.
여기에 머스크의 또다른 사업체 테슬라의 주력 공장 중 하나가 중국 상하이에 있다는 점도 지적 대상이 된다. 상하이 공장은 현재 테슬라의 글로벌 인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지난해 재무신고서에 따르면 테슬라는 중국 대출 기관으로부터 28억달러(약 4조원)를 대출받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외신들은 과거 머스크가 친중적인 행보를 보였다고도 짚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사건으로 트럼프 행정부 내 머스크의 입지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강력하고 광범위하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