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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2019년 3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제 핵무장 검토할 때’ 긴급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이후에도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들은 핵 무장을 외치고 있다.

이들의 핵무장 주장은 크게 독자 핵무장과 핵 잠재력 확보로 나뉜다. 홍준표 대구시장,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유승민 전 의원은 ‘독자 핵무장을 하자’는 쪽이고,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장 핵무기를 만들 수 없으니 일단 핵 잠재력을 확보하자’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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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배경으로 거론되는 여당의 핵 무장론을 지목하며 “선동적 허장성세”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동훈 전 대표는 “제가 주장한 건 일본과 같이 농축, 재처리 기술을 확보해서 핵무장 직전까지인 핵 잠재력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그건 허장성세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키고 국민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다”고 반박했다.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하려면 미국의 동의나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차선책으로 나온 게 핵 잠재력 확보다. 농축·재처리 능력을 갖춰 유사시 신속하게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과 자원을 갖추자는 것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에서 러시아와 손을 잡는 것을 보면서 국내에서는 미국의 확장억제에 의존할 수 없다는 핵 자강론이 나오면서, 핵 잠재력 확보 목소리가 높아졌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정치권과 학계의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는 방식으로 핵 잠재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먼저 국내에서 핵 잠재력 연구 결과가 많지 않아, 어느 수준이나 능력을 핵 잠재력이라고 할지 합의된 정의가 없다. 국내에서 핵 잠재력을 어떻게 정량적으로 측정할지에 대한 합의도 없다. 사람마다 핵 잠재력에 대한 정의와 기준이 달라, 국내에서 핵 잠재력은 과학기술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시류 영합적 개념에 가깝다.

한동훈 전 대표 등 여러 사람들이 일본과 같은 수준의 핵 잠재력 확보를 주장한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의 핵주기 프로그램에서 일본만큼 대접을 해달라고 미국에 요구하는 것이다. 한·미 원자력협정과 미·일 원자력협정을 보면, 일본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관련해 자유로운 재처리가 가능하지만, 한국은 핵무기로 전용이 불가능한 재활용기술(파이로 프로세싱)의 전반부 공정에 한해 허용받았다. 한국은 20% 미만의 우라늄 저농축을 할 수 있지만, 단서 조항이 있어 20% 미만 저농축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20% 이상 우라늄 고농축은 한·미 원자력 협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일본은 우라늄의 20% 미만 농축을 전면 허용받고 당사자 합의시 20% 이상 고농축도 가능하다. 농축도 20%가 넘으면 핵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다.

핵 잠재력 확보를 주장하는 쪽은 미국이 한국을 일본만큼 대접하지 않는다고 섭섭해한다. 미국이 핵 재처리 시설 등을 일본에게 허용하고 한국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핵을 무기화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1967년부터 핵무기를 제조·보유·반입하지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견지하고 있으며, 원자폭탄 피폭 경험으로 국민들의 핵에 대한 저항감이 강했기 때문에 핵 무장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어 왔다. 2010년대까지 일본 여론조사를 보면 핵무장 찬성 응답은 10% 안팎이었다. 2020년 이후 북한의 핵능력이 높아지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의 여론조사에서는 핵무장 찬성 여론이 높아져 20% 안팎이다.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북핵 위협 현실화에 따른 우리의 핵 대응 전략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일본 정부가 핵무장을 공식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국민 다수가 바라지도 않기 때문에 일본 공론장에서 핵 무장이나 핵 잠재력 같은 용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 상황은 일본과 정반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3년 1월 핵 무장 가능성을 언급했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핵무장 주장이 계속 나왔다. 최근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핵 무장과 핵 잠재력 확보를 주장하는 공개 세미나를 계속 열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북핵 위협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으로서 핵 무장 1천만명 서명운동 제안도 나왔다.

지난해 최종현학술원,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 때 독자 핵무장을 선호하는 응답이 60%를 넘었다. 2000년 이후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핵무장 찬성 응답은 꾸준히 60~70%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이 핵 잠재력을 확보하려면 먼저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핵무장의 차선책으로 핵 잠재력을 확보하겠다는 속내를 꺼리낌없이 드러내고, 국민 다수가 핵무장을 열망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요구에 응할 이유가 없다.

한국이 핵 잠재력을 확보하려면, 국내외 공론장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한국은 핵 비확산 모범국이란 점을 강조해 미국 등 국제사회에게 ‘한국이 핵을 무기화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줘야 한다. 핵 무기 우회 개발 꼼수란 인상을 줄 수 있는 핵 잠재력 같은 용어 대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내세워야 한다. 지금처럼 말로만 요란하게 떠들면 핵 잠재력 확보는 멀어진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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