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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우파와 달리 민주주의 ·헌정질서 파괴

친일·반공에 뿌리…12·3 계엄 올라타 급팽창

‘정변 불능’ 믿음 뒤엎고 민주정 취약성 일깨워

미국 영화 ‘조커’의 주인공 광대로 분장한 한 극우 유투버와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 정문 앞에서 탄핵 촉구 기자회견 중인 학생들을 향해 차량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소리치고 있다. 12·3 계엄 사태는 한국의 극우세력이 반민주적 폭력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사진가 박민석 제공

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 대통령(직무 정지)의 반헌법적 비상계엄이 시민과 국회의 긴박한 대응으로 좌절된 이후 한국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심리적 내전’이란 말이 나올 만큼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한국 극우세력의 조직적 결집과 준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계엄(戒嚴)’은 한자 말로만 보면 그 본질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계엄은 군대가 행정과 사법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행사하며 국민 기본권을 제약하는 군사 통치다. 영어로 ‘계엄령’을 뜻하는 ‘martial law’는 “일반법의 정지를 포함하는 군정 체제(military government, involving the suspension of ordinary law,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다.

“12·3 이후 우리 사회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오게 됐다”, “지금 상황은 극우의 차원도 넘어선 파시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보수집단의 극우화에 주목해온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의 진단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 극우는 민주화 이후 ‘조직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집단행동의 대중화’ 단계를 거쳤고, 12·3 계엄 사태 이후에는 내란에 동참(‘반란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석열 지지자들의 행태는 학자들이 설명하는 ‘극우’ 개념과 잘 맞아 떨어진다.

극우는 보수 우파와 어떻게 다른가? 그에 앞서, 좌파와 우파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그 핵심적 차이는 불평등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극우와 포퓰리즘 연구의 권위자인 카스 무데(미국 조지아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익 성향은 불평등이 인간 사회에서 자연스럽고 긍정적 현상이므로 정부는 그대로 놔둬야 한다고 보는 반면, 좌익 성향은 (불평등이) 인위적·부정적 현상이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없애려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보수주의나 자유주의 같은 주류 우익이 아닌, 자유민주주의에 적대적인 ‘반체제 성향’의 우익을 나는 ‘극우’라고 부른다.”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위즈덤하우스, 2021)

민주주의의 가치와 극우·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의 일부. ©한겨레

극우는 단순한 보수주의를 넘어선다. 극우의 사전적 의미는 “극단적으로 보수주의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인 성향. 또는 그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세력”(표준국어대사전)이다. 학계에서는 단순 우파와 극우의 본질적 차이를 헌정 체제의 인정 여부로 본다. 카스 무데는 극우를 다시 ‘급진 우익’(radical right)과 ‘극단 우익’(extreme right)으로 구별했다.

“극단 우익은 민주주의의 본질인 국민 주권과 다수 통치를 거부한다. 대표적 예가 히틀러와 무솔리니에게 권력을 쥐여준 파시즘이다.”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극우는 배타적 국수주의, 권위주의적 성향, 사회적 소수자 혐오, 가짜뉴스와 음모론 의존, 포퓰리즘 성향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국 극우의 뿌리는 해방 이후 친일파 잔존 세력과 냉전·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반공 이념에서 시작되었다. 1980년대 이후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지지 세력이 보수층으로 자리 잡았고, 2000년대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극우 세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했고, 문재인 정부 시기 극렬한 반정부 운동으로 영향력을 키웠다.

2024년 12·3 계엄 사태는 한국 극우 성장사의 결정적 변곡점이 됐다. 윤석열과 그의 지지자들은 뜬금없는 계엄의 명분을 국회 다수당인 야당(민주당)과 반국가세력, 북한과 중국 간첩, 그리고 부정선거 탓으로 돌렸다. 근거는 없으나 믿음이 넘쳤고, 부족한 설득력을 선동으로 채웠다.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는 괴물이 됐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 (…)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겠다.”(윤석열, 2024년 12·3 계엄 선포)

“대한민국을 붕괴시키는 저들(민주당)이야말로 암흑의 세력, 어둠의 세력, 내란세력.”(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2024년 12월28일 광화문 집회)

“비상계엄 당일 계엄군은 미군과 공동작전으로 선거연수원을 급습해 중국 국적자 99명의 신병을 확보했다. (…) 체포된 중국인 간첩들은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이송됐다.”(1월16일, 극우 인터넷매체 스카이데일리)

이러한 억지 주장과 극우 인터넷 매체의 가짜뉴스가 결합하면서, 확증편향이 강화되고, 극우 세력의 집단적 결속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내부에서 부풀어 오른 ‘열정’은 외부의 ‘적’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으로 터져 나왔다.

“진실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파멸은 기성 언론이 거짓되거나 편향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으며 그 사람만은 ‘진짜 사실’을 밝히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주장에서 시작한다. 지지자들은 그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그를 믿기 때문에 그를 믿는다.”
―‘극우, 권위주의, 독재’(루스 벤 기앳 지음, 글항아리, 2025)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실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고전적 폭정이 시민들을 단순히 억압하며 침묵시킨 것과 달리, 대중의 열정을 끌어모아 내적 정화와 외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향해 국민적 집결을 강화하는 데로 돌리는 기술을 찾아냈다.”
―‘파시즘’(로버트 팩스턴 지음, 교양인, 2005)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이 지난 1월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 사회는 1987년 이후 점진적이나마 꾸준히 민주화와 다원화 사회로 나아갔다. 군사 쿠데타나 계엄 같은 정치 후진국형 정변은 다시 없을 거란 믿음이 확고해 보였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국에서도 극우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집단 여럿이 존재해왔다. 해방 이후 반공을 기치로 활동한 정치세력부터, 특정 지역과 여성 혐오를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시킨 일간베스트(일베)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 이승만·박정희 권위주의 정권 시대를 향수의 대상으로 삼고 그 연장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맞불 집회인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 극우 기독교 세력으로 불리는 전광훈씨를 주축으로 동성애·이민자·난민을 공격하는 세력까지 다양하다.”
―‘누가 한국의 극우인가? 한국 극우의 특징과 정치적 함의’(황인정 성균관대 좋은민주주의연구센터 선임연구원, 한국정치정보학회, ‘정치정보연구’, 2024년 6월)

위 논문이 발표된 지 불과 6개월 뒤, 한국의 극우는 윤석열 계엄과 탄핵심판이라는 ‘예외 상태’를 자양분 삼아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윤석열 계엄은 헌정 파괴도 불사하는 극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아래 막말들은 차고 넘치는 사례의 일부일 뿐이다.

“지금 같은 평화 집회로 탄핵을 막을 수 있을까.(…) 지금쯤이면 곳곳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지며, 횃불과 가스통이 집회에 등장해야 정상이다.”(한정석 전 선거방송심의위원, 2월 22일 페이스북 게시글)

“공수처, 선관위, 헌법재판소, 불법과 파행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모두 때려 부숴야 됩니다. 쳐부수자!”(서천호 국민의힘 의원, 3월1일 서울 광화문 집회)

“문형배, 정계선, 이미선(민주당 추천 헌법재판관), 야 이 개××들아 당장 멈춰라. 대통령을 탄핵하면 나한테 죽어.”(오영석 목사, 3월1일 서울 광화문 집회)

“불법 탄핵 재판을 주도한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을 즉각 처단하자.”(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구속 수사 중 옥중서신)

‘처단’이라는 단어는 12·3 계엄포고령에도 나온다.

“포고령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내란 세력이 말한 ‘처단’이 불법체포와 살해도 서슴지 않는다는 끔찍한 사실이 내란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12·3 계엄의 설계자인 민간인 노상원(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는 ‘수거 대상 처리안’이라는 항목에 “연평도 이송”, “이동 간 적정한 곳에서 폭파”, “확인 사살” 같은 메모가 적혔다.

2025년 1월 19일 새벽, 윤석열 지지자들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직무정지)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잡겠다며 서울 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해 폭동을 벌였다. 한겨레 뉴스룸 동영상 갈무리

앞서 1월19일 새벽 3시께, 윤석열 극렬 지지자 수백명이 윤석열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잡겠다며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했다. (▶한겨레 뉴스룸 영상 보기=광기의 폭력, 윤석열 지지자들 폭동… 아수라장 된 서부지법 '대혼란')

우리 헌정사에서 사법부를 겨냥한 전례 없는 집단 폭력이었다. 꼭 4년 전인 2021년 1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패배 결과에 불복해 지지자들을 선동하자 2천여명이 폭도로 돌변한 연방의회 의사당 습격 사건의 판박이다.

“민주주의의 기반이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극단주의 선동가는 어느 사회에서나 등장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시험은 이런 인물이 등장하는가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와 정당이 나서서 이런 인물이 당내 주류가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 막을 수 있는가이다.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어크로스, 2018)

위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들의 진단을 적용하자면, 집권당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권은 이미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 불통의 정치, 뉴라이트 중용, 검찰권의 무기화, 공영방송 장악 시도, 계엄선포권 오용 등 ‘민주주의 파괴자’라는 근거는 많다.

“일단 잠재적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민주주의는 두 번째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전복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 제도가 그를 통제할 것인가? (…) 선출된 독재자는 사법부를 비롯한 중립기관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거나 무기로 활용하고 (…)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가장 비극적인 역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심지어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한국 극우의 핵심 집단 중 하나가 개신교 일부의 극단적 보수 성향 분파다. 배덕만 목사(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선임연구원)는 “전체적으로 한국 교회는 근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고 말한다. 송인규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은 극우파의 특징으로 ①극도의 편협성과 폐쇄성 ②편 가르기의 비열성 ③상대방을 정복·타도·파멸하려는 목표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이는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드러난 개신교 극우파의 언동에서도 드러난다.

“2030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탄핵 반대 운동을 펼치는 수확을 거뒀다. 계엄령이 ‘신의 한 수’가 됐다.”(1월27일, 김진홍 목사,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판사 검사들이요, 야 이 개××들아! 공수처 너희들 용서 못 해. 헌법재판소를 해체하겠습니다.”(3월4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이재명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 사법 절차를 지키지 않는 헌법재판소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3월4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담임목사, 세이브코리아 대표)

지난 1월 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왼쪽)가 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가운데)이 참석해 전 목사에게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MBC TV 뉴스 갈무리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신학적 근본주의가 정치적 극단주의로 변모했을까? 배덕만 목사는 불안과 공포, 기형적 신학, 지성의 상실 등 세 가지를 꼽았다.

“19세기 후반 이후 꾸준히 입국한 미국의 보수적 장로교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에도 근본주의적 성경론과 종말론이 일찍부터 유행했다. 이런 신학적 근본주의는 한국 근대사의 격랑을 통과하며 특정한 정치적·경제적 이념과 결합해 자신의 범주와 특성을 지속적으로 확장했다. (…) 특히 해방 전 한국 교회의 70퍼센트 이상이 있었던 평안도, 황해도, 북간도의 교인들이 공산주의자들과 갈등 후 대거 월남해, 반공을 국시로 내건 극우 정권을 끝까지 지지했다. 반공주의는 근본주의 신학과 함께 한국 교회의 핵심 도그마로 뿌리내렸다.” ―
‘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배덕만 외 5명 지음, 한국교회탐구센터, 2021)

계엄·탄핵 정국에서 한국 극우는 가짜뉴스를 생산, 확산, 신봉하고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을 우기는 행태도 도드라졌다. 2월1일, 개신교 우파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연 집회에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는 “비상계엄은 법과 질서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계몽령’”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극우 집단에선 ‘계엄=계몽’이라는 궤변이 화두처럼 확산했다. 급기야 윤석열 탄핵심판의 변호인단에서도 ‘계몽 간증’이 나왔다.

“임신·출산·육아를 하느라 몰랐던, (더불어)민주당이 저지른 패악을, 일당독재의 파쇼 행위를 확인하고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계몽되었습니다.”(김계리 변호사, 2월25일 헌법재판소 최종변론)

계몽.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침’(표준국어대사전)이란 뜻이다. 같은 뜻의 영어 단어 ‘인라이튼먼트’(enlightenment)는 ‘빛을 비추다’(en + light)라는 어근에서 왔다. 그 빛이 계엄 선포 직후 국회를 침탈한 계엄군 헬기의 서치라이트와 특전사 군인들의 플래시 불빛일까, 계엄령이라는 두려움과 모멸감을 딛고 강추위 속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외친 2030 청년과 시민들의 응원봉 불빛일까.

2025년 3월 10일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인근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연 집회에서 응원봉을 든 참가자들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즉각 파면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극우의 몽상에 가까운 독선과 타자 혐오, 가짜뉴스 맹신은 반지성주의적이라는 혐의를 받는다. 반지성주의는 지식수준이나 학력과는 상관이 없다.

“반지성주의는 지적인 삶과 그것을 대표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의혹(…), 그러한 삶의 가치를 늘 극소화하려는 경향이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교유서가, 2017)

“반지성주의의 핵심은 지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본질적인 의미에서 지성의 작용에 대해 모멸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 있다. (…) 정치권력은 우민화 정책을 실행하는 권력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심정을 권력의 차원으로 끌어들인다.”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중 시라이 사토시의 글(우치다 다쓰루 엮음, 이마, 2016)

미국의 도덕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는 짧고 강렬한 에세이에서 ‘개소리(bullshit)’와 ‘거짓말(lie)’을 구별한다. 둘 다 “부정확한 전달 또는 기만의 양상”이지만 개소리에는 “기만하려는 기획 의도”가 있으며, “자기 말이 맞든 틀리든 그 진릿값은 중심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소리쟁이는 사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낼 뿐 (…)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
―‘개소리에 대하여’(필로소픽, 2023년 개정판)

윤석열이 내세운 계엄의 명분, 한국 극우가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며 쏟아내는 주장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권력형 개소리는 자신이 진리보다, 타인보다 힘의 우위에 있다고 간주하는 데서 비롯한다. (…) 권력형 개소리는 진리에 대한 무시와 타자에 대한 멸시라는 이중적 악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일반적 개소리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해악이다.”
―‘개소리에 대하여’ 옮긴이의 글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인 2024년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계엄해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전광훈은 윤석열 탄핵 반대와 헌법재판소 공격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국민저항권’을 외친다.

“국민저항권은 헌법 위에 있다. 국민저항권이 발동됐기 때문에 우리가 윤 대통령을 구치소에서 데리고 나올 수도 있다.”(1월19일 서울 광화문 집회)

극우화하고 있는 보수우파 일부 세력이 이른바 ‘계몽령’과 ‘국민저항권’을 주장하는 것은 적반하장과 아전인수격 궤변의 생생한 실례다. 국민저항권의 참뜻은 선출된 정치권력이나 공권력의 행사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독재로 변질될 때 국민이 그에 맞서 저항할 권리다. 윤석열의 반헌법적 비상계엄과 그 지지자들이 내란 상태를 지속하려는 시도야말로 국민저항권의 대상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저항은 기본적인 권리이자 중요한 책임이다. 하지만 저항의 목표는 권리와 제도를 뒤엎는 것이 아니라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앞서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 선고에서, ‘저항권’ 행사의 세 가지 필수 요건을 명시했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 또는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이미 유효한 구제수단이 남아 있지 않아야 하며, 그 행사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 회복이라는 소극적인 목적에 그쳐야 한다.” (2013헌다1,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12·3 계엄 사태는 민주화 성취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도 어렵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 전문가인 미국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예일대 교수)가 민주정의 취약성을 경고한 통찰은 곱씹을 만하다.

“우리가 참된 것과 매력적인 것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때 권위주의가 시작된다. (…) 파시즘은 지도자가 선택한 적이 모든 국민의 적이어야 한다는 거짓말이다. 그러면 정치가 감정과 거짓말에서 시작된다. 평화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부키, 2019)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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