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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잃었다 너 때문에 아니, 나 때문에 ㅜ.ㅜ
| 정우성 | 매거진 ‘더파크’ 대표

생후 6개월 무렵.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 아빠도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아들을 얻고 통잠을 잃었다. 주말 저녁의 느긋하고 다채로운 식사 대신 가까스로 잠든 아이가 깰까 소곤거리는 저녁을 얻었다. 샤워는 이병처럼 빠르게 했다. 옷에는 침과 눈물이 얼룩져 있었다. “2023년 11월 이전의 삶은 전생 같아.” 아내가 말했을 땐 아들이 태어났을 때 우리도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다정하고 강렬하게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된 후의 일상은 완전히 새로운 판 위에서 좌충우돌이었다. 그동안 당연한 줄 알았던 일상의 조각들 하나하나가 호사가 되었다. 그중 가장 그리운 단어는 바로 잠이었다. 양질의 수면.

어제, 저녁 7시 반에 잠든 아들은 밤 12시경에 퍼뜩 깨서 울기 시작했다. 먼저 잠든 아내가 깨기 전에 얼른 뛰어 들어가 아들을 안고 달래려는데 울음소리에서 평소와는 좀 다른 기세가 느껴졌다. 아들을 달랠 때 흔히 쓰던 몇 가지 자세와 기술을 약 15분 이상 골고루 썼는데도 울음이 잦아들지 않았다.

“이제 교대. 내가 달랠게. 엄마를 찾을 때가 있지.”

졸린 눈으로 등장한 아내가 아들 방으로 들어올 땐 뒤에서 후광이 비추는 것 같았다. 아내 품으로 옮겨간 아들은 이내 울음을 그쳤다. 어깨에 볼을 기대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던 그 순간부터 엄마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흔히 있는 일. 이 시기의 육아에는 아빠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아빠는 무슨 수를 써도 달래지지 않았는데 엄마가 등장하는 순간 해결됐다. 아내의 존재는 무슨 마법 같았다.

30~40분 정도 지났을까? 문틈으로 두 사람의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루의 피로가 온전히 느껴지는 아내의 숨소리에는 가끔씩 코 고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 사이로 아들의 숨소리가 ‘색새액 색새액’ 했다. 이보다 평화로운 소리가 있을까. 두 사람의 숨소리를 듣는 새벽마다 가족에 대해 생각했지만…. 아들은 3~4시간 후에 한 번 더 깨고, 최종적으로는 7시 언저리에 깨는 것이 요즘의 패턴이었다. 백색소음도 들려줘보고 철분도 소고기도 먹여보고 온습도도 기가 막히게 맞춰봤지만 10시간 이상의 통잠을 기록했던 건 지난 1년 반 동안 한두 번뿐이었다. 부부의 수면 패턴도 아들을 따라가야 했다. 요즘의 소원이 있다면 밤 11시 반경에 잠들어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산뜻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것 정도일까.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아는 분도 애기가 잠을 너무 얕게 자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그랬대. 아기의 수면 패턴은 거의 100% 유전이라고.”

아내도 나도 잠이 많은 아기는 아니었다. 누굴 탓할까.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는 아들의 모습은 모두 우리의 면면일 것이었다. 이거야말로 육아의 아이러니 아닐까? 덕분에 자주 생각한다. 내가 아기였을 땐 엄마와 아빠의 새벽이 이랬겠구나. 누구나 한때는 아기였다. 너무 약하고 여려서 깊이 잠드는 법도 모르는 존재였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으아앙!” 깨고, 깨고, 또 깨고…아들을 얻고 통잠을 잃었다, 다크서클 내려앉은 아내가 말했다

“의사가 그러더래, 수면 패턴은 100% 유전이라고”…아뿔싸! 누굴 탓하랴




하지만 감동도 잠시. 아침의 분주함도 좀 다른 차원이 됐다. 육아 시작 이전과 이후의 아침을 비교하는 건 좀 잔인한 정도다. 요즘 아내가 씻고 준비하고 나서는 시간은 총 15분을 넘기지 않는다. 그전까지는 두 사람이 아이를 중심으로 펼치는 일종의 스포츠다. 한 명이 놀아주는 동안 한 명은 아침을 만들고, 한 명이 아침을 먹이는 동안 다른 한 명은 반려묘와 놀아주고 빠르게 세수한다. 아내는 군장을 싸서 뛰쳐나가는 군인의 기세로 현관문을 나선다. 간단하게나마 뭘 먹을 시간도 없다. 아들의 등하원은 회사원인 아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나의 몫. 어린이집 등원까지 둘이서 보내는 시간은 매일 아침 한 시간 남짓이다. 아이와 놀다 보면 허기도 잊는다. 뇌과학적으로 흥미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모든 신경을 아이에게 쏟는 시간은 지나치게 더디다. 30분 정도 놀았나 싶은 마음으로 시계를 봤는데 7분 정도 지나 있거나, 이제 10분 정도 지났을까 싶어 다시 시계를 봤는데 3분 정도 지나 있곤 했다. 온통 새롭고 신기한 채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노는 아이의 1시간과 어른의 1시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영유아의 돌봄과 놀이 사이, 어른의 시간과 아이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걸까?

낯설 게 없고 예측 가능한 일상에 익숙해진 어른은 시간을 아이보다 빠르게 인식한다고 한다. 익숙한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고, 그럴 땐 정신 활동의 부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외계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에서의 7년이라는 설정이 있었다. 아들과 보내는 시간도 혹시 다른 행성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 아닐까. 이 작은 존재와는 최대한 같은 행성에 있고 싶어서, 그 시간만큼은 지구의 시계를 보지 않기로 했다. 몰입을 위해서였다.

시계를 보지 않고 보내는 아침 놀이 시간은 확실히 더 빨리 흘러서 지루하지 않았지만 어떤 날은 샤워할 시간도 없었다. 샤워를 하고 옷장을 열었더니 남아 있는 속옷이 없던 날도 있었다. 어제 입었던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 다시 입고 나가 아들을 등원시킨 후 사무실로 향하는 길에는 그나마 미팅이 없는 날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편의점에 자주 들렀다. 최소한의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절의 육아는 당연했던 것들을 모두 포기해야 지속 가능한, 지나치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블랙홀 하나를 안고 지내는 라이프스타일인 걸까. 잠과 시간, 청결과 속옷과 느긋한 식사 역시 전생의 일 같았다. 한참 일하다 거울을 보면 피부가 오래 신은 갈색 구두 가죽 같았다. 입술은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가끔은 육아 선배인 친구에게 하소연하듯 묻기도 했다.

“야, 이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냐. 너네 딸은 어때? 26개월쯤 되면 잘 자나?”

“야, 크크크 포기해. 우리는 포기했어. 근데 너무 예쁘지. 요즘은 말을 해. 아니아니 우리 말은 잘 안 듣지. 근데 자기 말을 해. 진짜 귀여워.”

엄마와 아빠가 잠과 식사를 포기하고 다크서클과 친해지며 늙는 동안 아이는 눈부시게 자란다. 이제 막 지구에 떨어진 블랙홀의 회전이 차차 약해지면서 지구의 중력에 익숙해지는 걸 확인할 때마다 절묘하고 신비롭다고 친구는 말했다. 친구의 딸은 이제 세 살쯤 되어갈까? 막 16개월에 접어드는 아들도 요즘 말이 늘었다. 책을 보면서 “돼지?” 하면 “꿀꿀!” 하고 “토끼?” 하면 손을 머리에 대고 토끼 귀를 만든다. 그러다 눈을 맞추며 “헤헷” 웃을 때, 지난 시간의 고초들은 눈 녹듯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게 육아의 호사일까. 그렇다면 통잠과 느긋한 식사 같은 건 몇년쯤 미뤄둬도 나쁘지 않다고, 지금 막 잠든 아들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정우성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하듯 가볍게>를 썼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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