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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가 준 뼈아픈 교훈이 있다. 말이 안 되는 음모론이라고 해서 함부로 무시할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분명 그날의 헌정 문란 사태는 우리의 인지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초현실적인 사건이었다. 국회 기능 마비와 정치인 체포를 시도한 그날 밤은 일찍부터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를 경고하며 대비해왔던 야당에도 충격과 공포였다. 무엇보다 내란 우두머리인 윤석열 본인이 지독한 음모론자였다. 여기서 우리의 상식과 순리는 무너져버린다. 그러나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우리가 이러저러한 음모론에 휘둘린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언제 지붕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천장만 바라보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보다는 지붕이 무너질 수 있는 희미한 신호를 포착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강구할 일이다. 분명 공직 세계 안에서 내란을 획책할 새로운 파벌이 등장하는 징후가 있었다. 그 징후들은 지금에 와서 내란 세력을 감별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 징후. 군과 경찰의 중요 직위자들이 권력자의 공관이나 안가에 수시로 모여 엄청나게 술을 마시거나 밀담을 나눈다. 계엄은 술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윤석열이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사령관들을 모아놓고 비상대권을 말한 지난해 11월30일 한남동 공관에서의 만찬에서 참석자의 음주량도 만취 수준이었다. 이전에도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은 대통령과 술을 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은 한남동 공관촌 만찬 뒤 차에서 내려 구토했다. 이런 현상은 양조업자의 매출에는 기여했을지 모르나 국가에는 위험이었다. 삼청동 안가와 한남동 대통령 공관, 국방부 장관 공관이 주로 술 모임의 장소로 활용된다.

두번째 징후. 이른바 ‘무궁화폰’이라고 불리는 비화폰으로 자신들만의 비밀 의사소통 체계를 구축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경호처의 비화폰 운용 내역은 정부 내의 또 다른 정부, 일명 ‘딥스테이트’가 존재함을 밝혀줄 것이다. 김건희 여사로부터 민간인 노상원까지 연결되는 소통의 비밀 공동체는 우리가 몰랐던 세계이자 또 다른 비공식 정부일 가능성이 높다. 이 소통 체계를 이용해 윤석열은 사령관들에게 “국회의원 끌어내라”고 윽박질렀다.

세번째 징후. 무력을 지휘하는 인물들에 대해 진급과 보직에서 비정상적인 파격이 나타난다. 연거푸 두차례 고속 승진하여 자리에 오른 조지호 경찰청장, 이미 진급 적기가 경과해버린 중장 4차 진급자인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계엄 하루 전날 내쫓아 1년에 5개 보직을 전전한 김봉수 합참 차장, 이와 대조적으로 합참 차장으로 이동한 지 하루 만에 계엄사 부사령관을 맡은 정진팔 중장 등등. 계엄 이전의 군과 경찰 인사는 심하게 요동쳤다.

네번째 징후. “(김용현이) 많게는 매주 3~4회 반국가세력, 종북세력에 대한 극우 동영상을 보내 가스라이팅 했다”는 곽종근의 진술이다. 노상원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동영상을 정보사 영관급들과 공유했다. 극우 유튜브는 내란 세력에게 행동 지침이자 강령이었다.

술, 비화폰, 진급, 유튜브는 정부 안에서 정치적 파벌이 형성되는 신호다. 지금 구속되어 조사받고 있는 내란 우두머리와 중요 가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반면 이 네가지에 해당되지 않아 술자리에서 배제된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강호필 지상작전사령관은 내란 세력에 포함되지 않았고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은 아예 명령을 거부했다. 내란 세력을 감별하는 데는 이 네가지가 전부일까.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지난해 총선 전부터 “윤석열의 경비계엄 선포”를 우려했다고 최근 유튜브 방송에서 말한 바 있다. 총선 직후 용산에서 윤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와서도 걱정은 수그러들지 않았나 보다. 그는 이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계엄을 말했다. 이재명은 윤석열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아마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증오심이었을 게다. 권력자의 증오심은 모든 합리적 검토를 생략하고 권력자의 주관과 변덕에 좌우되는 무질서한 명령과 혼란으로 이어졌다. 그날 밤에 육군 2군단의 한 대령은 수도방위사령부의 육사 선배와 통화하며 “대통령이 뭘 노린 거죠?”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국회 현장에 출동한 계엄군은 더 이상 윤석열의 감정에 따르지 않고 새벽에 회군해버렸다. 술 취한 계엄은 그걸로 끝났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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