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미국의 경제적 이익 증대를 꾀하는 트럼프식 압박이 한국도 겨누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제 집권 2기 첫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한국의 (대미) 평균 관세율이 미국보다 4배나 높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한국에 군사 등 분야에서 많은 도움을 주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트럼프는 다음 달 2일부터로 예고된 상호관세 필요성을 역설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콕 찍어 이같이 말했다.
4배라는 근거는 불분명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지난해 평균 관세율은 실효세율 기준으로 0.79%이고, 공산품은 무관세다. 환율, 부가가치세 등 비관세장벽을 거론한 것일 수 있으나 트럼프를 상대하면서 일일이 팩트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한국을 ‘현금인출기’라고 부른 트럼프가 미리 청구서 자락을 깐 셈이라 대비에 서둘러야 한다. 거래에 있어 트럼프는 전략적이고 치밀하다. “군사 분야 도움” 언급이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가 임박했다는 뜻일 수 있는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트럼프가 반도체지원법 폐기 의사를 거듭 확인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투자를 하는 대가로 미국 정부에서 약속 받은 수조 원대 보조금 무산도 유력해졌다. 조 바이든 정부 당시 미 의회가 이 법을 의결했으나 트럼프는 어제 “돈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의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트럼프 시대 뉴노멀이지만, 우리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는 한미 양국이 협력 가능한 프로젝트도 언급했다. 그는 "알래스카주의 세계 최대 규모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한국, 일본 등이 수조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성 때문에 진척이 없는 프로젝트였으나 미국 압박에 따라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방안으로 한국 정부가 참여를 검토 중이다. 트럼프가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 조선업 부흥 의지를 밝힌 것은 세계 최고 조선기술을 보유한 한국 입장에선 협상 카드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의 무차별 공세에 맞서려면 우리가 가진 것을 공격적으로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