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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조병옥·신익희까지 소환된 보수 논쟁
반발하는 이인영·임종석, '86 민주화운동' 상징
'전문직' 이언주·'서울 지역구' 장경태의 엄호
총선 계기 학생운동→법조인·관료 세대교체
호남 보수→민주화 진보→중산층 중도 재편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김대중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우리 당 입장을 보수, 또는 중도보수라고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당은 진보부터 보수까지 스펙트럼이 아주 다양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중도보수' 선언 이후 민주당 내에서 이를 둘러싼 논쟁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존 민주당 주류였던 '86 운동권' 인사들이 "민주당의 역사는 진보 추구"라며 대거 반발하자, 친이재명(친명)계 좌장으로 꼽히던 정성호 의원이 "김구 선생님이나 조병옥, 신익희 선생님이 진보혁신운동을 한 건 아니지 않느냐"며 민주당 뿌리 찾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대표 발언 자체는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을 계기로 여당인 국민의힘에 '극우' 프레임이 덧씌워지면서, 민주당이 비어버린 '합리적 보수' 공간을 차지하려는 선거 전략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당내 인사들의 갑론을박은
'진보 민주당'을 추구하는 기존 주류와 '수도권 중산층'을 대변하는 당내 신주류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비칩니다.

이재명(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파란 옷 입고 빨간색 가치" '86' 이인영·임종석의 비판



“민주당은 한순간도 보수를 지향한 적이 없습니다.”


이 대표의 ‘중도보수’ 발언에 가장 거세게 반발한 사람은
이인영
의원입니다. 그는 이 대표 발언 다음 날인 지난달 19일 밤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다. 파란색 옷을 입고 빨간색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색하다”며 공개 저격했습니다.

이 의원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차례차례 거명하며 “민주당의 역사는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의 축적”이라고 했습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과세 유예, 반도체특별법 논의 과정에서의 주52시간 예외 논란, 상속세 완화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난달 5일에도 “민주당은 윤석열이 아니다”라며 주52시간제 관련 논란을 비판하는 등 최근 부쩍 각을 세우는 모습입니다.

“(중도보수는) 실용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고 대표가 함부로 바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임종석
전 의원도 이 의원을 거들었습니다. 그는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 △성장과 복지의 균형 △환경과 생명 등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추구해 온 가치를 언급하면서 “
민주당이 어찌 중도보수정당이겠느냐
”고 꼬집었습니다. 임 전 의원은 지난달 27일 이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도 “대표께는 듣기 좋은 소리보다는 쓴소리를 많이 하고 싶다”며 “언젠가부터 민주당의 철학과 의지가 많이 약화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진보정당’ 민주당을 상징하는 인물들입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3대 의장으로 활동했던 이른바 ’86 운동권’ 출신이고, 2000년 총선 직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영입으로 정계에 입문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 국회에서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 시기에는 각각 민주당 원내대표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으며 이 시기 민주당의 색깔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주류’였습니다.

이들 외에도 86그룹의 비판이 눈에 띕니다. ‘중도보수’ 발언 직후 민주당 현역 의원들의 단체 대화방에서 반발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김원이 의원이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중도보수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느냐”고 한 게 대표적입니다. 전대협 출신이던 김 의원 외에 박선원(삼민투), 오기형(학생회) 등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86세대 의원들도 말을 보탠 것으로 알려집니다.

2월 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딥시크 쇼크 대응과 AI 발전 전략 긴급 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동영, 황정아, 이언주 의원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도 중도보수" 전문직·중산층의 항변/h3>



“민주당 내에서 우리가 중도보수라 생각하거나 적어도 중도보수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은 이재명 대표 혼자가 아니다.”


이 대표의 중도보수론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 의원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복귀한
이언주
의원입니다. 이 의원은 스스로도 “’중도보수’를 천명하고서도 당원들에 의해 최고위원에 선출됐다”며 자신의 색깔을 명확히 합니다. 그는 민주당이 ‘김대중의 보수야당’ 이후 좌클릭했었다고 인식합니다.

“민주당은 우클릭해야 합니다. 스펙트럼을 중도보수까지 넓히자는 것입니다.”


이 대표 1기 체제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던
장경태
의원도 전략적 관점에서 중도보수론을 지지하며 엄호하고 나섰습니다. 장 의원은 나아가 “일본의 중도 민주당이 장기 집권 자민당을 만드는 과정을 참조하자”며 이념 확장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장 의원은 지난해 ‘종합부동산세 논쟁’에서도 “종부세는 실거주 1가구 1주택에 한해 90%까지 감면 혜택이 있지만, 재산세·양도세·취등록세와 통합하고 개편할 필요가 있다”며 개편 필요성에 손을 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잘나가던 ‘기업 변호사’ 출신인 이 의원은 고소득 전문직을, 서울을 지역구로 둔 장 의원은 수도권 중산층을 대변합니다. 전문직·중산층은 근로소득세와 상속세 완화 같은 '이재명표 감세'의 핵심 타깃이기도 합니다. 1970년대, 1980년대생인 이들은 민주화 운동 당시 대학생활을 한 86세대와는 달리 ‘운동권’이 더 이상 주류가 아닌 시대에서 대학생활을 해 왔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운동장 넓게 쓰기?' 실상은 '주류 재편'



이 대표의 ‘중도보수’ 발언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민주 개혁 진보’를 자처해 왔던 민주당의 운동장 넓게 쓰기 선거 전략으로 꼽힙니다. 기존 보수가 ‘우파’로 더 향하면서 기존 보수층 지지를 민주당이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직전 대선에서는 심상정 전 의원이, 2012년 대선에서는 이정희 전 의원이 민주당과 진보층 지지를 놓고 경쟁했지만 이번에는 눈에 띄는 진보 후보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86그룹으로 분류되는 재선 의원은
“이 대표가 ‘중도보수’를 선언해도 당장 대안이 없는 ‘진보’ 지지자들은 민주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는 인식”이라고 해석합니다.

그 이면에는 이인영·임종석으로 상징되는 ’86 그룹’에서 이언주·장경태로 대변되는 70년대생 이후 ‘수도권 중산층·전문직’으로의 주류 재편 과정이 엿보입니다. 변화는 2022년 대선 이후부터 감지돼 왔습니다. ’86 청산론’이 고개를 들면서 대표적 86 정치인인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지난해 총선 공천 과정에서 우상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기존 86세대가 대거 배지를 내려놓았고, 대신 법조인과 관료 등 ‘전문가’ 출신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기도 했습니다.

이번 논쟁 속에서 회자되는 것은 이승만 정권에 맞서 만들어졌던 1955년의 민주당입니다. 민주당이 홈페이지에 올린 '우리의 발자취'에서도 이때를 민주당의 기원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첫 당대표였던 신익희, 조병옥, 장면 선생 등은 이념적으로는 보수에 가깝습니다. 과거 호남을 중심으로 한 보수 야당이 민주화운동 당시의 학생운동 세력과 함께 진보 색채를 강하게 띠었던 게, 다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중도보수로 이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인 조귀동 명지대 객원교수는 "초기 전대협 출신 의원들이 과거 민주당 친문재인(친문) 주류를 자처해 왔지만, 이들이 퇴장한 자리에 과거 보수정당에도 어울릴 만한 인사들이 영입되며 새로운 색깔이 씌워지는 것"이라며 "이 대표의 중도보수 선언은
수도권 상위 중산층의 마음을 얻어야만 안정적인 집권이 가능하다는 민주당의 현주소
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정치 도산공원 연재 문패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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