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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구제시장도 피하지 못한 불황의 그늘
동묘 구제시장 상인들 "코로나 때보다 손님 더 줄어"


어떤 옷이 좋을까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동묘 구제시장에 위치한 한 옷 가게에서 손님들이 옷을 구경하고 있다. 2025.3.2.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최근 들어 손님이 더 줄었어요.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코로나 때보다 손님이 더 준 게 체감됩니다."(상인 B씨)

"예전엔 이태원 버금갈 정도로 동묘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많이 준 것 같아요. 또 다른 문제는 예전보다 가게에 와서 구경만 하고 가버리는 손님들이 더 많아졌다는 겁니다."(상인 C씨)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묘 구제시장. 상인들은 너도나도 장사가 안된다고 하소연했다.

한때 '가성비 쇼핑'의 대명사였던 구제시장과 빈티지 숍마저 고물가 속에서 위축되고 있다. 빈티지 감성을 찾는 젊은층은 많지만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실제 구매까진 이어지지 않아 상인들의 한숨이 짙어지고 있다.

어떤 옷이 있나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동묘 구제시장에서 손님들이 옷을 고르고 있다. 2025.3.2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로 나와 동묘공원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동묘 구제시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길바닥에 산처럼 쌓인 색색의 옷더미들을 시작으로 구제 옷 가게들이 골목골목마다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평일임에도 이곳은 북적였다. 동묘가 '빈티지의 성지'로 알려지며 개성 있는 옷을 찾으러 나선 10~20대들이 끊임없이 보였고 몇몇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동묘에선 겨울 아우터나 아디다스·나이키 같은 유명 브랜드 맨투맨 티셔츠도 단돈 1만원에 '득템'(좋은 물건을 얻었음을 의미하는 신조어) 할 수 있다. 더 저렴한 곳은 청바지 두 벌을 단돈 5천원에 판매하기도 했다.

이거 좀 괜찮은데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동묘 구제시장에 위치한 한 옷 가게에서 손님들이 옷을 구경하고 있다. 2025.3.2


그러나 정작 손에 쇼핑백을 든 손님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MBC TV 예능 '굿데이'에서 정형돈이 지드래곤에게 줄 나이키 재킷을 구매했던 한 가게 입구에서 만난 20대 남성 A씨 역시 빈손으로 가게를 나왔다.

A씨는 "서울에 친구들을 만나러 온 김에 구제 옷으로 유명하다는 동묘에 와봤다"며 "확실히 옷들이 저렴하긴 하지만 구매는 안 하고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다"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 정도가 지갑을 여는 듯했다.

벨기에에서 온 루카스 씨와 벤저민 씨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벨기에 친구가 있는데 이번에 동묘를 소개해 줬다"며 "옷 가격이 합리적이고 동묘만의 '쿨한 무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경만 할게요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동묘 구제시장에 위치한 한 옷 가게에서 손님이 옷을 구경하고 있다. 2025.3.2


지난달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 290만3천원 중 늘어난 건 필수 지출(주거·수도·광열·음식·보건 등)이었다.

의류·신발에 대한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0.3% 감소해 17만원에 그쳤다. 전체 소비지출 중 의류·신발이 차지하는 비중은 5.9%에 불과해 총 12가지 소비지출 항목 중 4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경기 불황 속 고물가 행진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자, 구제시장 상인들은 이제 '가격을 얼마까지 낮춰야 하나' 고민하게 됐다.

상인 C씨는 "우리 가게는 거의 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옷을 들여오는데 같은 옷이라도 예전보다 수입해 오는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판매 가격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판매 가격을 올려버리면 손님들은 더 안 사기 때문에 쉽게 가격을 높일 수도 없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상인 B씨 역시 "물가는 올랐지만 예전과 똑같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며 "가격은 그대로인데 손님은 줄어드니 결국 수입도 줄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1kg에 2만5천원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양천구의 한 구제의류매장에 옷들이 진열돼 있다. 2025.3.2


지난달 26일 찾은 양천구의 한 빈티지 숍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옷 1kg당 판매 가격은 2만5천원. 무게가 늘어날수록 1kg당 책정되는 가격은 낮아져 옷을 더욱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없는 옷이 없을 정도로 매장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옷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구제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옷 상태도 매우 훌륭했다. 간혹 태그가 그대로 붙어 있는 새 옷이 있기도 했다.

매장을 방문한 김모(23) 씨는 "물가 상승이 확실히 의류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며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싶기 때문에 굳이 새 옷이나 비싼 옷을 사기보단 빈티지 옷 가게를 자주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니트, 블라우스, 청바지, 정장 바지를 각 한 벌씩 골라 계산대에 올리니 3만5천원이란 가격이 나왔다. 옷 한 벌 살 가격에 총 4벌의 옷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매장은 한산했다. 약 한 시간 동안 매장을 찾은 손님은 7명 정도. 다들 한참 동안 구경만 할 뿐 구매까지 이어진 손님은 김씨 한 사람밖에 없었다.

해당 매장 관계자는 "고물가라고 해서 손님이 더 늘진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 때보다 더 준 것 같기도 하다"며 "지금도 충분히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더 저렴한 가격대의 상품을 찾는 분들이 꽤 있다"고 한숨 쉬었다.

청바지 한 장에 3천원
(서울=연합뉴스) 김유진 인턴기자 =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동묘 구제시장에 위치한 한 옷 가게에서 손님이 청바지를 구경하고 있다. 2025.3.2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동에 위치한 한 구제의류매장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2층으로 구성된 큰 규모 덕에 흥미로운 눈빛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많았지만, 이것저것 구매하는 '큰손' 손님은 많지 않았다. 다들 사진만 찍거나 옷을 착용만 해보고 제자리에 두고 자리를 떠났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2일 "옷을 소비하는 건 '선택적 지출'이기 때문에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가장 먼저 지출을 줄이게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더군다나 의류 시장의 주 소비층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인데 그들의 지갑 사정이 더 좋지 않다 보니 옷에 대한 소비가 더욱 감소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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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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