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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대통령 안가'로 쓰여…독립운동가 김규식 손녀 "역사교육의 장 만들고파"


'삼청동 안가'를 가리키는 독립운동가 우사 김규식 선생의 손녀 김수옥 여사
[촬영 최원정]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아이고, 이거 완전히 막아놔서 안에는 들여다볼 수도 없네."

제106주년 3·1절을 사흘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전가옥(안가) 앞. 독립운동가 우사 김규식(1881∼1950) 선생의 손녀 김수옥(82)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마지막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민족대표로 파견돼 국제사회에 독립을 호소하는 등 외교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인물이다.

김규식이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으로 납북될 때까지 5년간 머무르며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이끌었던 '삼청장'은 현재 '삼청동 안가'로 활용되고 있다.

검찰·경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한 듯 안가 입구에는 미니버스 한 대가 장벽처럼 세워져 있었다. 버스 틈 사이로 간신히 본 안가도 김 회장의 기억 속 삼청장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김 회장은 "한옥이 하얀색 양옥으로 바뀌고 가족들과 오르락내리락했던 계단도 없어졌다"며 "할아버지는 고아로 자라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셨는데 놀다가 자전거에 부딪히자 손을 붙잡고 걱정하시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떠올렸다.

삼청장은 본래 친일파 민영휘의 막내아들인 민규식의 별장이었다. 1945년 8·15 광복과 함께 정세가 급변하자 민규식은 귀국한 김규식에게 이곳을 쓰도록 내줬다.

김규식은 삼청장에서 몽양 여운형 등과 함께 좌우합작을 논의하며 민족통일국가를 꿈꿨다. 1948년 백범 김구와 함께 북한의 김일성·김두봉에게 남북협상을 제안하는 서한을 쓴 장소도 이곳이었다.

삼청장은 1950년 김규식이 납북돼 평안북도 만포진에서 숨을 거둔 뒤 한동안 방치됐다. 이후 2007년 국고로 넘어간 뒤 공매로 민간에 팔렸다가 2011년 청와대 경호처에 매입돼 안가로 쓰이고 있다.

최근 두 차례의 탄핵 정국에서 삼청동 안가는 주요 무대로 떠올랐다. 김 회장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뉴스에서 할아버지의 얼이 서린 곳이 등장할 때마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고 털어놨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혐의 공소장에는 '삼청동 안가'가 8차례 등장한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직전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국회 봉쇄를 지시하는 등 지난해 3월부터 안가를 일종의 '아지트'로 사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지원을 요구하는 등 안가는 '국정농단' 사건에 얽혀 오르내리기도 했다.

삼청장 앞에서 촬영한 김규식 선생(앞줄 왼쪽 두 번째) 손녀 김수옥 여사의 가족 사진
[김수옥 여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회장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여러 차례 삼청장 복원을 요청했으나 청와대는 '경호 문제'를 이유로 거절했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가 개방되며 기대를 잠시 품었으나 삼청장 터는 여전히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남아있다.

김 회장과 동행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매번 대통령 당선인은 인근 금융연수원을 인수위원회로 꾸리면서 '소통 공간'이라는 명분으로 삼청동 안가에 처음 발을 들인다며 "안가 개방은 차기 권력자의 대통령 당선 직후 정치적 의지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삼청장이 하루빨리 복원돼 조부의 정신을 기리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규식과 더불어 '우익 진영의 3대 지도자'로 꼽혔던 이승만과 김구가 각각 사저로 삼았던 이화장과 경교장은 사적으로 지정돼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8개 국어를 하실 만큼 '언어 천재'였던 할아버지께서는 구멍 난 양말을 기워 신고 나라만 생각하며 뛰어다니셨다"며 "이런 분을 기념하기는커녕 아직도 '월북했다'거나 '빨갱이에게 이용당했다'고 깎아내리는 이들을 보면 억울하고 속상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의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와 달리 한국의 안가는 권력자들이 모여 유흥을 즐기거나 범죄를 모의하는 공간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밀실정치의 용도와 절연하는 의미에서 해방정국의 정치 지도자를 기리는 공간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독립운동가 김규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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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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