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살이, 이제 여기가 뜬다…베트남 전문가가 작성한 꼼꼼 체크리스트
| 글 위성은(베트남 파견 코피온 활동가)사진 위성은·78말띠 마라톤클럽·준K(아치맥스 앰배서더) 제공베트남의 로컬 매력을 느끼고자 하면 관광만으로는 부족하다. 베트남은 디지털 노마드, 자녀의 국제학교 진학 등 자신의 체류 목적이나 생활 방식에 따라 지역별로 다양한 ‘한 달살이’ 옵션이 존재한다. 사진 위성은
다낭에 이어 한국인 ‘최애’ 관광지로 부상한 푸꾸옥, 냐짱(나트랑)은 베트남의 ‘맛보기’일 뿐, 수박 겉핥기 여행으로는 미처 알 수 없는 ‘로컬’의 매력을 느끼고자 한다면 ‘한 달살이’가 제격이다. 최근 유명배우 박모씨가 호찌민 한인타운에서 한 달살이를 하고 있다는 뜬소문이 있을 정도로 베트남은 한국인의 장기 여행지로 ‘핫’하다. NGO 활동가로 베트남 생활을 시작한 지 3년차, 한 달살이를 위한 체크 리스트를 정리해봤다.
단기 체류지로서 베트남의 매력을 꼽자면 편리함과 안정성이다. 많이 올랐어도 여전히 저렴한 물가와 시차가 2시간에 불과한 지리적 위치, ‘사돈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할 뿐 아니라 코로나19 이전 이미 현지 교민이 10만명을 넘어선 만큼 한식과 한국문화가 널리 보급돼 있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치안과 인프라도 장기 여행지로 적합하다.한 달살이에 앞서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체류 목적이나 생활 방식에 적합한 장소를 찾는 것, 그리고 그다음이 예산이다. 가족이나 반려동물을 동반하는 경우 숙소 선택의 폭이 좁아지거나 달라질 수 있으므로 숙소부터 구하는 것이 좋다. 베트남의 가장 큰 특징은 술집이나 펍 등도 아이를 동반할 수 있는 ‘예스키즈존’인 반면, 쇼핑몰 등 실내 공간은 대부분 동물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흡연이 자유롭다는 점은 흡연자에게는 장점이겠다).
향후 자녀의 국제학교 진학 등을 목적으로 한 달살이를 한다면 거주 외국인 수가 많고 영어 소통이 가능한 호찌민이나 하노이 등 대도시가 적합하다. 단 큰 도시일수록 물가가 높고 교통 흐름도 원활하지 않은 점은 감안해야 한다. 베트남의 인터넷 접근성은 한국을 제외하면 거의 최고 수준일 정도로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며 여행하는 삶을 살기에 제격이다. 일을 놓을 수 없어 주말이나 한가한 틈을 타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근교에 볼거리가 많은 도시나 관광지를 권할 만하다. 다낭의 경우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호젓한 호이안과 후에(‘베트남의 경주’라 불리는 후에 왕국의 고도)를 끼고 있으니 로컬 라이프와 다양한 액티비티를 함께 즐기기 좋다.
숙소는 선택의 폭이 아주 넓다. 외국인은 호텔이나 에어비앤비 등의 서비스 아파트를 많이 이용하지만 한 달살이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원룸이나 주택을 임대하는 것도 로컬라이프를 경험하기에 나쁘지 않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의 월세는 1000달러 선이며, 보증금이 없는 서비스 아파트는 조금 더 비싸다. 식사를 직접 해결하며 비교적 저렴한 숙소에 머물면서 비용을 아낀 뒤 5성급 호텔에 며칠 묵어볼 것을 권한다. 베트남은 대도시에서도 1박 10만원대로 5성급 호텔을 예약할 수 있으며 소도시는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요즘은 비자와 숙소, 코스와 많은 것들을 대행해주는 업체가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발품을 팔아 얻는 정보로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이 크니 앞선 한 달살이 체험자들의 경험담을 많이 찾아보는 것이 좋다. 지역마다 교민 정보방이 활성화돼 있으니 오픈톡에서 검색해보자. 단 질문은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그리고 한 달살이에서 원하는 바를 명시하는 것이 좋다.
몰랐던 재미
특별한 음미
뜻깊은 의미
01. 열대 과일 먹는 맛까지 짜릿…원정 마라톤
동갑내기 러닝 친구들과 매년 1월 열리는 호찌민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하프 코스를 달렸다. 한국의 1월은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시즌이지만 베트남은 비가 오지 않는 건기로 연중 가장 시원한 날씨라 민소매 운동복인 싱글렛을 입고 뛰기에 딱 좋다. 기온이 높아서 초심자들이 좋은 기록을 내기는 어렵지만 오토바이들이 꽉 메우던 차도 위에 ‘주자 1’로 존재하는 기분이 상쾌하다. 한국보다 넉넉하게 마련된 급수대에서 목을 축이는 것만으로 탈수를 예방할 수 있고, 숨 돌리며 먹는 과일이 너무 맛있어서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매년 찾게 된다. 상금이 한국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행 경비를 제법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라 실력자들은 노려볼 만 하다(1월 참가한 대회의 풀코스 1위 상금이 약 147만원이었다).
02. ‘1일 1마사지’파들에겐 천국
‘1일 1마사지’를 외치는 이들이 꽤 많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은 마사지 서비스는 베트남 살이의 장점 중 하나다. 운동 효과를 내주는 태국식 마사지처럼 그 색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두루두루 무난한 마사지가 베트남의 장점이다. 다양한 옵션과 마사지 강도를 선택할 수 있으며 워낙 여행객이 많다 보니 관리사들도 기본적인 한국어 소통이 가능하다. 전신 마사지의 경우 저렴하게는 2만원대부터 있으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럭셔리 케어는 10만원 선이다. 강한 압의 마사지를 받았을 때 오히려 뻐근하고 아픈 적이 있다면 핫스톤 마사지를 추천한다. 샴푸 전용 숍은 물론 귀 내부까지 시원하게 청소해주는 등 디테일한 서비스는 처음 접한 자에게는 신세계 수준이다. 왁싱 서비스도 한국보다 저렴하다. 네일 서비스는 지속력이 아무래도 떨어지지만 존재감이 확실한 여행용 네일은 시도해볼 만하다. 원컬러 젤 네일 서비스의 가격은 호찌민 푸미흥(한인타운) 기준 30만~40만동(2만원 안팎).
03. 이렇게 맛있는 채식이라니
베트남에서 놀란 것 중 하나가 채식을 상당히 쉽게 할 수 있으며 가격에 비해 꽤 맛있다는 점이다. 비건은 적으나 건강이나 종교적인 이유로, 또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채식을 하는 현지인이 많기 때문이다. 음식점의 경우 로컬식당은 위생이 염려되는 반면에 채식 전문 식당은 기름기가 적거나 없어서 비교적 청결하고, 일반식에 비해 채식이 더 비싼 한국과 달리 가격도 저렴하다. 속이 좋지 않거나 더부룩할 때는 채식 국수나 죽을 찾으면 된다. 양이 많은 편이라면 2~3인용인 샤부샤부를 혼자서 즐기는 것도 괜찮다. 유난히 국물음식을 선호하는 식문화도 비슷해 향신채소에만 익숙하다면 베트남 음식을 즐기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고수를 빼달라는 주문도 얼마든지 가능하니 번역기를 활용할 것).
04. 스트리트 푸드를 찾아서 ‘아오자이 투어’
푸짐한 상차림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게는 베트남 음식이 양이 적고 곁들이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다소 허전한 감이 있다.
도심의 노상이나 학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식을 조금씩 맛보는 호찌민시티 아오자이 투어는 베트남의 스트리트 라이프에 최적화된 체험이다. 아오자이를 입은 대학생 라이더가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좁은 골목을 누비며 쌀국수와 반미, 전병과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는 데는 3시간30분이 소요되며 비용은 5만원 정도. 코스나 비용은 업체마다 조금씩 다르니 Klook 등의 사이트에서 ‘미식 체험’을 찾아보자.
05. 뻔한 커피·망고젤리 선물 이제 그만!
기존 관광객들이 많이 구입하던 인스턴트커피나 망고젤리 등은 이제 한국에서도 쉽게 살 수 있어 더 이상 장점이 아니다.
간단한 선물로는 견과류나 베트남 누룽지(깜짜이: 바삭한 누룽지 위에 양념 돼지고기 육포 등을 올려서 먹는 간식)도 손색없다. 달랏 등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는 견과나 후추류가 싸고 품질이 뛰어나 선물하기 좋다.
요즘 트렌드 중 하나는 필수 의약품을 베트남 약국에서 쇼핑하는 것이다. 수입 의약품의 경우 현지 물가를 기준으로 소비자가가 정해지므로 한국에 비해 절반가량 싸다. 살롱파스, 스트렙실, 비판텐 외 감기약 및 진통제 등을 저렴하게 살 수 있으나 간혹 국내 제품과 성분이 다른 때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드럭스토어에 가면 한국 화장품도 꽤 많이 들어와 있으므로 무겁게 한 달치 스킨케어 제품을 챙겨가지 않아도 된다. 현지 스킨케어 제품을 구입하고자 하면 비건 브랜드인 코쿤(Cocoon) 제품을 추천한다. 저렴하지는 않지만 헤어제품, 기초화장품의 성분이 좋으며 현지 기후에도 맞다.
남부의 도시 껀터의 참파 양식의 사원. 대부분 사찰이 도심에 있고, 그 양식이 다양해 보는 재미가 있다.
06. 역사까지…베트남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면?
전쟁을 모르고서는 베트남을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비전투병이었다 해도 참전용사의 딸로서 역사의 현장을 외면할 수 없어 첫 여행에서 찾아간 구찌터널은 미국에 유일하게 패배를 안긴, 베트남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폐소공포증을 유발하는 땅 밑 터널은 베트남군이 미군의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어떻게 핸디캡으로 바꿨는지 잘 보여주는 곳. 호찌민 시내에 있는 전쟁박물관도 관광객들에겐 필견의 명소로 꼽히지만, 한국군의 만행도 기록되어 있으며 다소 참혹하고 불편한 내용도 있을 수 있다.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구찌터널의 한 입구에서 관광객이 터널 내부로 들어가며 입구를 닫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과거를 털어내고 미래의 동반자로 나아가기 위해 이를 직시하고자 하면 한베평화재단이 매년 여름 주최하는 ‘평화기행’에 참석해볼 것을 권한다.
한 단계 높여 도전!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베트남에서 반려동물과 살기는 국내 사정과는 좀 다르다. 반려동물은 대중교통 탑승이 불가능하기에 근교 여행을 하려면 개인 자동차가 필요하다.
반려동물을 동반하는 경우 1인 항공 비용 이상이 추가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한국과 베트남에서 각각 방역 절차를 밟고 건강검진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기내 탑승 기준은 항공사마다 다르지만 6~7㎏ 정도다. 이를 초과하는 반려견은 수화물 칸의 동물 구역에 탑승하게 되며 2~3일 전까지 항공사 허가를 받아야 한다. 베트남 필수접종은 광견병 백신이고, 건강 진단서의 경우 탑승 10일 이내에 발급한 서류만 인정되기 때문에 준비 절차가 만만찮다. 또한 현지에는 반려동물이 탈 수 있는 펫택시가 없고, 대중교통 탑승이 불가능하기에 반려동물과 함께 근교 여행을 하게 된다면 자동차를 대절해 청소비 등의 부가비용을 주는 것이 좋다. 반려동물의 항공기의 수화물 운송은 국적기만 가능하며 비용은 베트남→한국 225달러(대한항공), 한국→베트남 300달러(베트남항공)였다.
이것만은 피하자!
무늬만 한식에 ‘쓴맛’
단톡방 통한 환전 ‘환장’
베트남에서 한식과 K컬처가 대유행하면서 무늬만 한식인 식당도 속속 생겨났다. 밑간이 전혀 안 된 김밥이라든가, 대파가 들어간 미역국 등을 만날 수 있으니 슬슬 한국 음식이 그리워진다면, 한국인이 추천하는 식당에 가자.
또 아무리 한국에서 베스트 드라이버였다고 해도 현지에서 오토바이나 승용차를 운전하는 데는 사고 대처 등 위험부담이 크다. 이륜차 등의 대여비용이 비싼 반면에 그랩(우버 같은 택시서비스) 비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니 운전은 되도록 프로에게 맡기자.
여행 비용의 경우 한국에서 환전하기보다 현지에서 달러를 베트남 동으로 바꾸는 것이 유리하다. 단 한국에서 가져온 달러가 떨어졌다고 단톡방 등을 통해 모르는 사람과 환전하는 일은 피하자. 같은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르는 이와 환전했다가 범죄나 스미싱 등에 연루되어 경찰 조사를 받는 일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