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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니언] 김건희는 왜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 걸었나
조선일보 사옥, 김건희. 한겨레 자료사진 


국회가 ‘명태균 특검법’의 본회의 표결을 이틀 앞둔 지난 25일, 시사인(IN)은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전화통화 녹음파일을 공개했습니다. 이는 두 사람이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2022년 5월9일 오전 전화로 나눈 대화의 전체 내용입니다.

파급력이 큰 내용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2022년 6·1 보궐선거를 앞두고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에 개입했다는 정황을 좀 더 입체적이고도 생생하게 보여주는, 윤 대통령의 추가 육성이 나온 겁니다. 과거 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했던 해명을 정면으로 뒤엎는 내용도 여기에 포함돼 있습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민주당의 윤석열-명태균 전화통화 내용 부분 공개로 공천 개입 논란이 불거지자, 11월7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누구에게 공천을 주라고 얘기한 적도 없다. 솔직하게 다 말씀드리는 거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이 윤상현 의원인지도 몰랐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공개된 녹음파일의 전체 내용을 들으면, 윤 대통령은 명씨의 거듭된 김영선 전 의원 공천 부탁에 “내가 하여튼 그 처음에 딱 들고 왔을 때부터 여기는 김영선이 해줘라, 이랬다고” “알았어요. 내가 하여튼 저 상현이한테 한번 더 얘기할게. 걔가 공관위원장이니까”라고 합니다.

윤석열의 육성 “상현이, 걔가 공관위원장”

윤 대통령은 2022년 보궐선거의 공관위원장이 윤상현 의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지난해 11월 대국민 담화에서 사실과는 전혀 다른 거짓말을 한 것이죠. 최고 권력자의 민낯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흔치 않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사인이 다룬 내용은 누가 보더라도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고, 이 내용을 담은 보도의 공익적 가치 또한 대단히 높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무려 현직 대통령의 공천 개입 사실(공천 확정 시점 기준)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강력한 물증인데다, 대통령의 거짓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전화통화 녹음파일을 먼저 갖고 있던 언론사가 있었습니다. 조선일보입니다. 위 보도의 당사자인 주진우 시사인 편집위원은 보도 이후 여러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만이 아니라 조선일보 ㄱ기자도 해당 녹음파일 등이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유에스비)를 명씨로부터 건네받았다는 점, 명씨는 조선일보 기자에게 이를 건네주며 ‘용산에 전달해달라, 얘기 좀 해달라’고 했다(ㄱ기자 주장)는 점, 조선일보는 녹음파일의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는 점, 용산이 조선일보가 문제의 유에스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이후 김건희 여사가 ‘조선일보 폐간’을 운운할 정도로 격분한 사실이 있다는 점 등을 추가로 소개했습니다.

기이한 일의 연속입니다. 명씨는 유에스비를 어떤 목적으로 용산에 전달하고자 했으며 왜 조선일보 기자를 ‘메신저’로 선택한 것인지, 어쨌든 조선일보는 유에스비에 담긴 내용이 충분히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텐데 왜 보도하지 않은 것인지, 김 여사는 왜 ‘보도를 하지도 않은’ 조선일보를 향해 무슨 이유로 폐간까지 운운하며 격분한 것인지 등이 물음표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시사인이 보도한 윤석열-명태균 녹음파일이, 조선일보가 갖고 있는 유에스비에도 담겨 있는 게 맞느냐 하는 점도 검증 대상이긴 합니다.

이와 관련해 주 편집위원은 28일 오전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내가 공개한 녹음파일은 그 유에스비에 담긴 여러 파일 중 하나”라며 “녹음파일 공개 뒤 이뤄진 전화통화에서 조선일보 ㄱ기자가 (보도된) 그 파일을 명씨한테 받은 것인지 물어본 뒤 ‘명태균이 나한테만 주는 거라고 했는데, 다른 데를 통해 공개됐다. 약속을 어겼다’며 화를 냈다”고 주장했습니다. 주 편집위원은 “명씨 변호인 쪽에도 내가 갖고 있던 녹음파일이 명씨가 조선일보에 줬던 유에스비에 담겨 있는 것과 동일한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고 ‘맞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시사인(IN)은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전화통화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시사인 유튜브 갈무리

‘공천 개입’ 녹음파일 보도, 통비법 위반일까

조선일보를 향해 던져진 여러 물음표 중 ‘유에스비 파일 내용을 보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일부 설명이 이뤄졌습니다. 조선일보는 시사인 보도 등을 통해 위 사실이 공개된 뒤 아래 내용의 입장문을 냈습니다.

주진우씨 주장에 대한 조선일보 입장

(중략)

본지는 작년 10월 명씨를 취재하면서 과거 명씨와 윤 대통령 부부 간의 통화 녹음 파일이 담긴 USB를 입수했으나 이를 제공한 명씨는 자신의 동의 없이 보도하면 안 된다고 했다. 본지 검토 결과 대화 당사자 동의 없이 녹음 파일을 공개할 경우 취재원 존중과 보호를 규정한 언론윤리헌장과, 통신 및 대화 비밀 보호를 규정한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해 당사자 동의를 얻을 때까지 보도를 유보했다. 본지는 명씨가 구속된 이후를 포함해 수차례 명씨와 명씨 변호인 등에게 “보도에 동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명씨 측은 거부하거나 응답하지 않았다.
이해가 되시나요. 조선일보가 입장문을 통해 밝힌 ‘미보도’ 사유의 핵심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대화 당사자 동의 없이 녹음파일을 공개할 경우 취재원 존중과 보호를 규정한 언론윤리헌장과 충돌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통신 및 대화 비밀 보호를 규정한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는 겁니다.

먼저 통비법 위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이 법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한 ‘기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통비법에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의 녹음, 청취, 공개하는 행위를 금지(3조1항)하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이미 판례를 통해 “여기서 ‘청취’는 타인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그 대화의 내용을 엿듣는 행위를 의미하고, 대화가 이미 종료된 상태에서 그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하여 듣는 행위는 ‘청취’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4. 2. 29 판결)

2022년 5월9일 오전에 이뤄진 윤석열-명태균 두 사람의 통화를 명씨가 녹음한 건 당연히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 아니니, 법 위반이 아닙니다. 아울러 그 대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언론사 기자가 2024년 10월에 명씨로부터 입수해 ‘청취’하는 행위도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듣는 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데, 이렇게 알게 된 내용을 보도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게 타당할까요. 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미디어위원장을 지낸 이강혁 변호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판례에 비춰볼 때 조선일보 기자가 명태균으로부터 받은 녹음파일을 ‘청취’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보도’하는 행위를 통비법 위반으로 처벌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대화 참여자 등에 대한 명예훼손죄 등은 성립 가능성이 있으나, 대화 내용이 지엽적인 관심사가 아니라 공인인 최고 권력자의 중대한 법률 위반 혐의 폭로 등에 해당한다면 언론의 공적 사명을 고려할 때 형법 310조의 적용 또는 정당행위로서 위법성 조각을 주장할 수 있을 만하고 무죄를 인정받을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백번을 양보해 통비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해도,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진실 보도를 사명으로 하는 언론이 이런 중대 사안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보도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과연 우리 사회는 박수를 쳐줄 수 있을까요. 주 편집위원은 “윤석열-명태균 녹음파일에 담긴 내용은 단순히 사인 간의 대화가 아니라 명백히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며 “특히 ‘대통령의 공천 개입’이라는 범죄적 행위를 뒷받침하는 물증일 수 있는데, 이를 공개하고 보도하는 것이 기자가 하는 일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 VS 취재원 보호

조선일보가 ‘윤석열-명태균 녹음파일’을 보도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 ‘대화 당사자 동의 없이 녹음파일을 공개할 경우 취재원 존중과 보호를 규정한 언론윤리헌장과 충돌한다’고 주장한 것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앞서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한 진실 보도가 언론의 사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렇다 할지라도 취재의 자유, 보도의 자유가 무제한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 보도가 언론에 요구되는 중요한 책무 중 하나라면, 이와 동시에 언론은 ‘피해 최소화’라는 또 다른 책무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취재·보도 과정에서 취재원이나 취재·보도 대상의 인격권이나 존엄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취재원 보호 역시 중요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조선일보가 녹음파일을 보도하지 않은 배경으로 언론자유헌장을 언급한 것을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언론윤리헌장

3. 인권을 존중하고 피해를 최소화한다

윤리적 언론은 취재 대상을 존중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도할 가치가 있는 정보를 취재하고 전달할 경우에도 개인의 인권과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한다. 특히 미숙하고 동의 능력이 없는 취재원, 사건 피해자 등을 취재할 때는 절차적 정당성과 가장 높은 수준의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인다. 합법적으로 획득한 정보라도 이를 보도할 때는 윤리적 정당성을 갖춰야 한다. 공인이 아닌 일반 시민에 대해 보도할 때는 인격권 보호에 더욱 주의한다. 피의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공중의 알 권리 사이의 균형을 추구한다. 한국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문제는 이 사안의 경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진실 보도와 언론윤리헌장에서 강조하는 취재원 및 취재 대상의 보호라는 두가지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조선일보는 후자에 무게를 둔 것이고요.

깊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지만, 이에 대한 언론계의 판단은 사실 이미 내려져 있습니다. 보도 대상의 성격과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보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적 이익이 크다면 취재원 보호의 원칙은 유보될 수 있다는 것이죠.

홍원식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는 “두가지 원칙 모두 중요한 가치인 것은 맞지만, 언론의 가장 핵심적인 존재 이유는 결국 공익을 위해 공적인 관심사에 해당하는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이라며 “독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서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이 훨씬 크다면, 마땅히 보도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습니다. 또 홍 교수는 “그 경우 취재원 보호는 보도 이외의 수단을 통해서 보호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조선일보의 선택과 관련해 이런 의문을 추가로 던집니다.

“조선일보 기자가 해당 녹음파일을 입수한 시점(지난해 10월)을 기준으로 할 때, 이는 대단히 중요한 정보이고 어떤 언론사라도 특종으로 보도할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보도하지 않았다는 건데, 그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녹음파일은 대통령의 거짓말을 입증해줄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고, 조선일보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녹음파일 직접 인용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라도 그 사실을 보강 취재해서 진실이 드러나도록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명태균씨 관련 보도를 보면 이런 내용이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조선일보가 그 배경을 좀 더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넉달여입니다. 조선일보가 윤석열-명태균 녹음파일을 보도하지 않고 갖고만 있었던 기간이. 그 넉달간 조선일보는 보도하지도, 명태균씨 관련 보도에 반영하지도 않은 채 이 파일을 갖고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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