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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는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고 모든 것을 볼 빛을 주기 위해 여기 왔습니다. 더 이상 땅굴도 없고 공포도 없는 트럼프의 가자지구가 이곳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SNS 계정들에 현지시간 25일부터 올라온 영상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랩 형식의 가사로 '트럼프가 만들 가자지구'는 이런 것이라고 운을 띄웁니다. 영상은 전쟁으로 온통 건물이 부서진 현재의 가자시가지의 아이들로 시작해선 그 아이들이 손을 잡고 뛰어가자 마치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린 것처럼 천국 같은 가자가 펼쳐지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황금빛 모래사장에 초호화 리조트가 펼쳐지고 머스크를 닮은 남자가 등장해 후무스(중동의 전통 콩요리)를 먹고 하늘에 돈도 뿌립니다. 그러다 주인공이라 할 트럼프가 나오는데 황금으로 된 거대한 조각상으로 등장합니다. 이어선 트럼프가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선베드에 나란히 누워 칵테일을 마십니다.




35초 정도의 이 영상은 트럼프의 인스타그램과 트루스소셜 계정에 올라서 조회수가 1천5백 만회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 영상은 앞서 말한 것처럼 폐허가 된 가자지구와 호화 리조트로의 변모를 대비하면서 가자를 개발하겠다는 트럼프의 구상을 전하는 것이 1차적 의도로 보입니다. 리조트에서 춤을 추고 일하고 심지어 머스크가 뿌리는 돈을 받으며 기뻐하는 가자 주민들을 보여주는 건 확실히 이 개발로 주민들도 이익 볼 거라며 가자 개발 구상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런 메시지적 요소 이상으로 이미지 자체가 보여주는 시각적 효과와 '왜 이런 이미지를 넣었을까?"하는 즉 만든 이의 의도도 크게 다가옵니다. 그런 점에서 주목되는 건 바로 '황금 왕' 트럼프입니다. 거대한 황금상 트럼프는 물론 금색 트럼프 인형에 금색 트럼프 풍선을 들고 가는 아이까지 나옵니다. 특히 황금상의 모습은 흡사 평양에 있는 김일성 동상을 연상시킵니다. 폐허인 가자를 탈바꿈한다는 것만 보여주면 되는데 이런 황금 트럼프가 들어가면서 이 영상은 단순히 개발 구상 홍보영상이 넘어 다르게 다가옵니다. 즉 황금왕 트럼프가 영상의 주인공이 되면서 '황금왕 트럼프'가 지배하는 새로운 가자와 그의 지배를 받는 행복한 가자 주민들이란 정치적 프로퍼간다처럼 다가오게 됩니다.

아직까진 이 영상의 이미지들은 대부분들의 사람들에겐 소화하기 힘든 불편한 메시지로 느껴집니다. 우선 비현실성입니다. 지옥과 같고 이번 전쟁으로 4만 7천 명이 숨진 현재의 가자와는 전혀 맞지 않는 럭셔리 이미지들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위화감이 듭니다. 두 번째로 황금왕 트럼프 이미지도 '신하와 백성'이 아닌 시민인 우리에겐 수용이 안 되는 메시지입니다.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자신이 트럼프의 왕국을 '잠시' 구경한다 생각하고 즐겁게 트럼프 황금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김일성 동상 같은 거대한 트럼프 황금상 아래서 뿌려지는 돈을 받는 가자 주민들의 모습을 보고는 동일시하기보다는 거북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기 쉬울 겁니다.


실제로 이 영상에 달린 무수한 댓글 가운데에는 '나는 트럼프 지지자지만 이 영상은 저급하다', '가자문제 말고 미국을 위대하게 하는 것에만 신경써라' 처럼 지지자들마저 실망한 반응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트럼프 지지자라 해도 자신이 트럼프 왕을 모시는 백성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트럼프를 모시며 애틀랜틱시티의 카지노와 리조트를 수십년간 경영했고 트럼프에 대한 평전도 썼던 존 오도넬도 오늘 CNN에 출연해 트럼프의 의도를 언급하며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오도넬은 마오쩌둥이나 사담후세인이 했고 지금은 김정은이 하듯이 트럼프도 자신을 우상의 자리에 올리고 싶어 한다며 "미국에서 이런 것을 보니 솔직히 무섭다"고 답했습니다. 자신의 비즈니스월드에선 왕처럼 군림했고 왕처럼 이미지메이킹을 한 트럼프가 원래 하던 대로 정치 영역에서도 그대로 왕의 방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두렵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영상이 AI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당연하면서도 이채롭습니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상황을 정치적 메시지로 만드는데 AI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선 트럼프의 최고 심복이 된 일론 머스크가 선구자로, 머스크는 이민자 반대나 세금경감 등 자신의 주장을 AI가 만든 극단적 영상을 통해 퍼뜨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트럼프를 비판하는 진영에서도 AI를 무기로 풍자영상을 만듭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트럼프는 왕으로 등장합니다. 현지시간 24일 워싱턴DC의 주택도시개발부 건물에 있는 TV에서 틀어진 영상입니다. "Long live the real king" 즉 "진짜 왕이여 영원하라"는 글자 아래서 트럼프가 머스크의 발에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건 실제가 아니고 AI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영상입니다.


머스크가 정부효율부의 수장으로 임명돼서는 연방정부 공무원의 대규모 감축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만들어진 영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트럼프와 머스크가 둘 다 왕으로 등장했습니다. 물론 트럼프는 가짜왕, 머스크가 진짜왕이란 의미로 머스크의 꼭두각시 아니냐고 트럼프를 한 번 더 비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띄우는 영상에서도 왕으로 등장하고 비판 영상에서도 왕으로 등장하고 있는 트럼프. 아직은 지지자들도 '트럼프왕'에 대해선 거부감이 있는 건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또 트럼프 측이 만든 영상도 아직은 진지하다기보다는 트럼프 이미지를 띄우는 과정에서 나온 오락적 성격도 있습니다. 하지만 AI와 SNS를 동원해 '왕'의 이미지를 담은 트럼프의 영상이 계속 반복적으로 나오고 우리가 그에 대한 거부감 대신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면 어쩌면 그 또한 트럼프의 의도가 관철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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