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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경쟁당국, ‘감시가격’ 분석 중간보고서
개인·행동정보 폭넓게 수집해 활용
차별적 가격, 소비자 착취로 이어질 수도
게티이미지뱅크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 잔의 가격은 나라마다 다르다. 각 나라의 경제 사정과 사업 환경이 모두 달라서다. 우리는 이런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서울 매장과 부산 매장에서의 가격이 다르거나, 같은 매장 안에서도 소비자마다 다른 가격이 책정된다면 이를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소비자 데이터를 수집, 분석할 능력을 갖춘 빅테크 기업이 등장하면서 소비자의 취향과 성격, 소비의 패턴까지 고려한 차별적 가격 책정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마우스 클릭’ 패턴까지 활용

미국의 경쟁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 1월 ‘감시 가격(Surveillance Pricing) 연구’ 중간보고서를 공개했다. 지난해 7월 시작한 관련 시장 조사의 중간 결과를 담았다. 제품 수요나 소비자별 특성을 따져 같은 상품에 다른 가격을 매기는 ‘동적 가격 전략’(Dynamic Pricing)을 소비자 보호 및 경쟁법적 관점에서 살펴본다는 취지였다. 주요국 경쟁당국이 동적 가격 전략에 대한 보고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당국은 250개 이상 고객사에 가격 정책 컨설팅을 제공하는 맥킨지, 마스터카드 등 6개 컨설팅사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했다. 이들 기업은 고객들의 성별, 생년월일 같은 개인정보는 물론, 검색 이력, 구매 빈도, 장바구니 품목, 제품 정렬 방식, 마우스 클릭 패턴 및 커서 위치까지 폭넓은 ‘행동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별 맞춤 가격을 설정했다. 마우스로 특정 제품명을 드래그하며 강조하는 데이터도 가격 책정에 반영했다.

구체적인 사례도 공개됐다. 갓 출산한 부모로 분류된 소비자에게 검색 결과 목록 맨 위에 더 비싼 유아용 체온계를 노출하거나, ‘빠른 배송’을 선택한 소비자를 ‘시간이 부족한 부모’로 분류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공급자의 변동 요인을 주로 반영한 고전적인 동적 가격 전략인 ‘시가 정책’(시간대별 가격 변동)을 넘어서, 소비자의 개별적 특성을 반영하는 차별적인 가격 적용으로 진화한 증거다.

오프라인 매장에 적용하는 사례도 파악됐다. 여러 지역에 매장을 보유한 한 사무용품 업체는 매장 인근 경쟁사의 가격 정보를 분석해 지역별 맞춤 가격을 설정했다. 소비자가 자사 누리집에서 제품 가격을 검색하면 위치 정보를 활용해 가장 가까운 매장의 가격만 표시하도록 했다.

동적 가격 정책의 작용 원리. 같은 상품 및 서비스에 다른 가격을 적용하면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보고서 갈무리

“최적 가격으로 효율성 증대”

그간 동적 가격 정책은 기업의 합리적 마케팅 전략으로 여겨져 왔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소비자마다 다른 지불 의사에 맞춰 최적의 가격을 부과하면 사회 전체의 효율성이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 정도가 과도할 경우에만 도덕적 비난을 할 뿐이었다.

영국 밴드 오아시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15년 만에 재결합하며 올해 개최하는 공연의 입장권이 지난해 판매됐는데, 동적 가격 정책으로 높은 가격이 판매되면서 일부 팬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150파운드(약 27만원)로 책정된 스탠딩석은 온라인 예매 시작 후 구매 수요가 몰리면서 355파운드(약 64만원)까지 치솟았다. 국내에서는 야구단 엔씨(NC)다이노스가 동적 가격을 적용해 입장권을 판매하면서 4만5천원이던 스카이박스 입장권 가격이 72만8천원까지 폭등하기도 했다. 한국시리즈 등 포스트시즌 경기 입장권이 일반 경기보다 2~3배 비싼 것과 비교해도 과도한 수준으로 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국내 최대 온라인 쇼핑몰 쿠팡도 이런 가격 정책을 적극 활용하는 기업이다.

“소비자 착취 알고리즘 우려”

하지만, 최근 각국의 경쟁 당국은 동적 가격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필요할 경우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에 점차 무게를 싣고 있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기업이 ‘개인화된 가격’을 제시하기 유리해진 데다가 인공지능(AI) 발전으로 소비자가 가격 결정 구조를 파악하기 더욱 어려워져서다. 미 공정위가 이를 ‘감시 가격’이라 명명하고 조사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영국 경쟁시장청(CMA)도 오아시스 공연 논란을 계기로 지난해 11월부터 동적 가격 정책 실태를 조사 중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에서도 동적 가격 정책이 소비자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공정거래조정원은 2021년 펴낸 보고서에서 “독점사업자가 차별적 가격 전략을 사용하거나 가격 차별의 형태가 복잡한 경우 소비자 후생이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권영관 선임연구위원은 한겨레에 “차별적 가격 책정은 경쟁을 촉진하며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후생을 최대한 착취하는 방식으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설계되고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적 가격 전략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는 뜻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최근 가격 정책 변화에 대한 분석에 나설 계획이다. 이준헌 공정위 시장감시정책과장은 “동적 가격 정책과 관련된 경쟁법적 쟁점을 연구하고, 올해 발간 예정인 데이터 분야 정책보고서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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