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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를 지난해 12월 중순쯤 만나 인터뷰하려 했다. 그는 그해 하반기 <도덕감정의 사회학>(한울아카데미)을 펴냈다. ‘생태문명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지식 공동체’인 지구와사람 대표를 맡은 이유도 궁금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때문에 인터뷰 약속은 기약 없이 밀렸다. 11월 어느 행사 자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계엄사태를 예견이나 한 듯 “세상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듯한 불안과 심란한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권의 극우화와 미래세대의 불투명한 삶, 세계 곳곳의 전쟁과 학살, 불평등과 기후위기 등을 두고 한 말이었다. 올 2월 다시 날을 잡아 진행한 인터뷰에서 불면의 강도가 세어졌다고 했다.

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불거진 극우 문제를 혐오 같은 병리 증상과 반지성주의의 결과로 분석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 지구와사람 사무실에서 촬영했다. 김종목 기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던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혈압이 오르고 몸이 떨려오는 증상, 수치와 모멸, 표현할 수 없는 황망함과 무기력한 분노 같은 것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어요. 청년 시절 겪었던 계엄의 트라우마 ‘증상’이 걷잡을 수 없이 되살아났습니다”.

<도덕감정의 사회학>은 계엄 등 지금 한국 사회를 내다보며 진단한 책 같다. “민주주의 기본가치인 시민들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며, 준(準)전시에 해당하는 예외 상황을 통해 유사 총통제로의 전환을 꾀했던” 과거 독재 정권의 통치 유산을 12·3 사태가 그대로 이어받았다. 정치 영역만이 아니다. 그는 책에서 “한 무더기의 시민들은 여전히 극우에 가까운 정권을 적극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적었다. 이슬람교, 유물론, 공산주의, 북한에다가 성소수자를 ‘악마’로 추가하고, 우파 보수 정권과 강한 친화력을 맺은 한국 개신교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비판 역시 계엄 사태 이후 상황을 내다본 듯하다.

김 교수는 계엄 반대와 탄핵 광장에서 확인한 시민의 존재에 잠시 위안을 받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고 한다. “그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인 깊은 병리적 증상들이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보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극우가 자리 잡고, 언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온갖 유튜브 요설꾼들이 자리 잡았고, 신성한 종교의 자리에 사이비 교주가 자리 잡았어요. 무엇보다 ‘정치’의 자리에는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안하무인의 선동과 거짓을 서슴지 않는 역겨운 정치인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도덕감정의 사회학>에서 병리증상을 이렇게 썼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극단적 언사를 서슴지 않는 정치인들, 자신의 도그마에 빠져 침소봉대와 아전인수를 마다하지 않는 지식인들, 정화되지 않은 오염수처럼 온갖 가짜 뉴스와 억측을 쏟아내는 언론인들, 타자의 세계는 안중에도 없는 종교인들, 맹목적인 생활 태도를 보이는 우중, 소위 ‘반지성주의 동맹’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를 맹목적인 한 무리가 이러한 병리적 증상에 응답한 결과로 본다. “특히 서부지법에 난입한 ‘젊은 폭도’들을 주의 깊게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무한경쟁과 시장의 불평등, 가부장주의 잔재, 젊은 남성들의 상대적 박탈감 등이죠”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가 고집과 편견, 냉소와 혐오로 물든 반지성주의를 넘어 천박한 하류사회로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거대한 퇴행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1월 19일 발생한 서울 서부지법 난입 ·폭력 사태로 파손된 청사 모습. 이준헌 기자


김 교수는 원색적이고 선동적이며, 위협적·적대적인 언어로 표출되는 혐오 감정을 반(反)지성주의의 진원으로 본다. 반지성주의는 “더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지 않는” 태도다.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나 심리적 상황을 충족시키면 곧 정의가 되고 그렇지 않은 것이 부정의가 되는 세상이 되었어요. 즉 자기가 좋으면 옳은 것이고, 싫으면 그른 것이죠. 판단이 중지된 겁니다.” 김 교수는 이 말을 하며 “사유의 불능이 모든 악의 근원이 되고, 도덕의 붕괴가 정치의 파멸을 낳는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도덕감정의 사회학>에서 그는 반지성주의와 혐오 문제를 여러모로 들여다본다. 그는 반지성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태도로 독선과 아집, 편견을 꼽았다. 반지성주의자들은 “역사의 흐름과 변화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사고와 행위가 절대 불변이라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반지성주의자들은 누군가를 적으로 규정하고 적대시함으로써 일종의 시민전쟁을 수행하려 한다”는 분석도 지금 상황에 맞아떨어진다.

김 교수는 윤 정권 수립 이후부터 계엄을 거쳐, 최근의 극우 결집까지를 “보수를 참칭한 극우적인 한국판 트럼피즘 정치”가 극렬하게 전개되는 시기로 본다. ‘노골적인 미국 패권주의’ ‘글로벌 기업가들의 정치판 끼어들기’ ‘비즈니스의 품목이 되어버린 정치’ ‘경쟁자에 대한 반국가세력 낙인찍기’ ‘적과 동지의 이분법, 적대와 혐오, 부정선거론 등 분열과 갈등 조장을 통한 권력 잡기’ 같은 트럼피즘과 미국 양당 정치의 부조리를 한국 사회가 그대로 닮아간다고 진단했다. “법의 이름으로 상대 경쟁자를 파멸시키려 하고, 폭력적 언사를 일삼는 자들이 국가기관의 요직을 독차지하기도 했어요.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책임질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회의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죠.”



2019년 출간한 전작 <감정과 사회>(한울아카데미)에서 김 교수는 분노와 슬픔, 혐오, 냉소주의, 친밀성 등 다양한 감정 문제를 사회학의 주제로 삼아 한국 사회 변동과 갈등 문제를 다뤘다. 한국 전쟁의 기억이 남긴 두려움과 공포, 정리해고자의 분노, 재난의 트라우마,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시선 등을 분석했다. 그는 “사회적 배제 과정”에 놓인 이들을 벌거벗은 반인반수의 인간 즉 ‘호모 사케르’에 빗대 분석했다. 당시 대통령의 탄핵반대 집회에 주목하면서 현장 노트를 통해 ‘태극기 집회자’들의 감정과 집합행동을 들여다봤다. 공교롭게도 당시의 분석은 지금 탄핵반대 집회 분석을 위한 초석이 됐다.

김 교수는 지금 어지러운 상황을 헤쳐나가려면 ‘인간 행위자의 도덕 감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도덕감정은 “사유와 판단, 실천 의지를 끌어내는 감정”이다. “개인의 생리적 요소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감정이며 행위”라고 설명한다. “도덕 감정은 타자를 사유하는 감정이죠. 타자의 타자는 ‘나’라는 점에서 나를 성찰하고, 배려하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부채감과 죄의식이라는 실존적인 감정에서 공감과 상상력, 양심과 책임의식, 정의와 관용, 신뢰와 연대를 지향하는 감정이 곧 도덕 감정이죠.” 우정과 돌봄, 배려의 도덕감정은 신뢰와 연대를 구축하는 에너지로 본다. 도덕감정은 결코 유약한 감정이 아니다. “무언인가 잘못된 것을 폭로하고, 되갚으려는 날카로운 정의감을 소유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비인간 생명도 포용하는 정치체제’인 바이오크라시(Biocracy)를 미래의 패러다임으로 고민한다.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인류는 자신의 생존 조건들이 모두 무너져내리는 절박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어요, 인간 중심의 사회계약을 넘어 인간 너머 ‘자연’과의 계약을 추진하며, 비인간 생명체들에게도 도덕적, 법적 권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지구와사람 참여에 대한 답이다. “우리는 자기 욕망을 채우고 배를 불리기 위해 서로를 적대시하고 증오하며 폭력으로 굴복시키려는, 그래서 스스로 파국을 맞이하려는 어리석은 일들을 벌입니다. 지구 생명과 연대하는 바이오크라시에 대한 논의를 더는 미뤄서는 안 됩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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