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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벽 등반 동호인을 대상으로 '수거용 대변 봉투'를 나눠주는 설악산악동지회 회원들. 사진 설악산악동지회
“예전엔 대변을 보고 돌이나 나뭇잎으로 슬쩍 덮고 왔는데, 대변 봉투에 하고 그걸 배낭에 넣어 산에서 내려오니 스스로 뿌듯했어요. 응고제를 넣은 다음 케이블 타이로 꽁꽁 묶으니 거리낌 없더라고요. 단, 용변을 볼 때 몸을 가려주는 텐트가 있으면 이런 문화가 더 확산할 것 같아요.” 이우영(39) 씨는 지난 2일 강원 속초시 토왕골폭포 빙벽 등반을 하면서 생긴 대변을 봉투에 담아 되가져왔다. 대학 1학년 때 등반을 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의 대표적 암벽·빙벽 대상지인 설악산에서 LNT(Leave No Trace, 흔적 남기지 않기)가 확산 중이다. 산행 중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되가져오자는 캠페인은 오래됐지만, 대변을 수거하자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미국·유럽은 물론 히말라야에서도 대변을 수거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한국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강원 지역 산악인 모임인 설악산악동지회(설악동지회)는 지난달 초부터 이달 20일까지 토왕성폭포가 자리한 외설악 일원에서 등반 중 발생한 대변을 되가져오자는 취지의 ‘내 똥은 내가 되가져온다’ 캠페인을 실시했다고 23일 밝혔다. 최창득 설악동지회 간사는 “토왕성 진입로 중간에 화장실이 있지만, 등반을 앞두고 긴장감에 소식이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골짜기에 하지 말고 봉투에 담아 가져오자는 당부와 함께 배포했다”며 “한 달간 모든 대변을 수거하진 못했지만, 첫 캠페인 치곤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설악동지회가 배포한 봉투는 응고제와 케이블타이, 생분해 비닐봉지와 겉봉투로 구성된 국산 제품이다.

자원봉사에 나선 김영기 씨는 “(봉투를 받은 사람 중) 어떤 사람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어떤 사람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다음부턴 내가 사 오겠다’고 했다. 의외로 호의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했다. 이상식 회원은 “등반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설악산의 환경 오염을 막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설악산은 이런 캠페인이 절실하다”고 했다. 겨울이 되면 길이 약 300m의 빙벽으로 변하는 토왕성폭포는 국립공원의 허가를 받아 등반이 이뤄진다. 잦은바위골과 토막골 빙폭을 포함해 매주 약 100여명, 겨울 시즌 1000명 안팎의 산악인이 이곳을 찾는다.

설악휴게소 주차장에서 '대변 수거' 캠페인에 나선 설악산악동지회 회원들. 사진 설악산악동지회
등반 기간 자신의 대변을 되가져오는 문화는 미국과 유럽 등에선 오래됐다. 수차례 미국 요세미티국립공원의 암벽을 등반한 정승권(65) 씨는 “요세미티에선 오물통을 가져가지 않으면 등반할 수 없다. 대변뿐만 아니라 소변까지 수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등반가 1세대인 정 씨는 설악산을 등반할 때도 오물통을 들고 다닌다.

네팔에서도 대변 수거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네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책임지는 SPCC(사가르마타 국립공원 오염방지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에베레스트를 찾는 등반가를 대상으로 ‘오물세’를 걷고 있다. 대소변 오물은 1kg에 220루피(약 2200원)를 받는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체링 셰르파 SPCC CEO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사람이 한해 300~400명(셰르파 제외)이나 되면서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쓰레기가 쌓이고 있다. 대변을 포함해 한 시즌에 65톤의 오물을 수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악산악동지회. 사진 설악산악동지회
설악동지회는 올해 봄부터 설악산에서 집중적으로 대변 되가져오기 캠페인을 펼칠 예정이다. 단체는 한국 최고의 경관을 지닌 산이자 등반 활동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설악산을 보호하고자 강원 지역 산악인들이 결성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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