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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중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린샤오쥔
중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린샤오쥔이 8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남자 500m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린샤오쥔은 어제의 동료들을 적으로 만나 치열하게 레이스를 벌였다. 다음 대결 무대는 내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이다. 하얼빈=연합뉴스


2017년 삿포로 대회 이후 8년 만에 열린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은 한국 쇼트트랙이 9개 걸린 금메달 중 6개를 휩쓸었던 대회다.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한국 쇼트트랙은 더 많은 '금빛 질주'를 펼칠 수 있었지만 동지에서 적으로 만난 중국 국가대표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에게 막혀 6개로 만족해야만 했다.

린샤오쥔은 대회 첫 종목이었던 혼성 2,000m 계주에서 혼자 넘어져 한국의 금메달에 일조했지만 남자 500m 금메달로 자존심을 회복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국 동료 선수의 '밀어주기 논란'이 불거져 한국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남자 5,000m 계주에서는 한국의 에이스 박지원(서울시청)과 레이스 막판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만 해도 한국의 쇼트트랙 에이스였지만 이제는 중국의 간판으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을 준비하는 린샤오쥔의 발자취를 ‘이달의 스포츠 핫피플’에서 훑었다.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난 '오뚝이

한국 대표팀 시절인 2017년 쇼트트랙 월드컵 대회에서 역주 중인 린샤오쥔. 연합뉴스


린샤오쥔의 초등학생 때 꿈은 수영 선수였다. 하지만 고막이 터져 수술을 받았고 마침 동네에 있던 수영장이 스케이트장으로 바뀌는 묘한 인연에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운동에는 확실한 재능이 있었다. 두 살 위 형들을 제치고 종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중학생 시절인 2012년엔 유스올림픽 남자 1,000m 금메달을 목에 걸어 나란히 여자 1,000m 금메달을 따낸 심석희와 함께 남녀 기대주로 꼽혔다.

그러나 늘 부상이 문제였다. 오른 발목 인대 파열, 발목 골절, 허리 골절, 손목 부상 등으로 7차례나 수술대에 올라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국가대표 선발전도 잦은 부상 탓에 출전조차 못했다. 좌절과 재기를 반복해 지칠 법도 했으나 매번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도전했다. 마침내 린샤오쥔은 2017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꿈에 그리던 2018 평창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태극마크를 단 그는 올림픽 쿼터가 걸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단숨에 에이스로 등극했다. 빙상계에선 김기훈-채지훈-김동성-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로 이어지는 한국 쇼트트랙의 남자 에이스 계보를 잇는 스타가 탄생했다며 주목했다.

당시 린샤오쥔의 롤모델은 곽윤기였다. 체구가 비슷하고, 장난기 많은 미소도 닮았다. 레이스 내내 후위에 머무르다가 순간적인 스피드로 틈을 파고 들어 역전승을 이끌어내는 경기 스타일도 비슷했다. 그는 "곽윤기 형을 좋아한다"며 "특히 왼발을 잘 이용하기 때문에 속도를 붙이고 기술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부분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평창에서 소치의 '노 골드' 한 풀어

린샤오쥔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1,500m 결선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뒤 환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린샤오쥔은 기대대로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가장 먼저 열린 남자 1,500m 결선에서 2분10초485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한국 쇼트트랙의 22번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아울러 이 금메달은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이정수가 금메달을 따낸 이후 8년 만에 나온 남자 쇼트트랙의 결과물이라 더욱 값졌다. 남자 대표팀은 2014 소치 올림픽 당시 '노 골드' 수모를 당했다.

출발부터 금빛으로 장식한 그는 다관왕 전망도 밝혔다. 린샤오쥔의 주 중목은 사실 1,500m보다 1,000m였다. 김선태 당시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은 "순발력이 좋아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스피드가 폭발적"이라며 "단거리 쪽으로 능력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1,000m는 결선에서 4위로 마쳤다. 두 바퀴를 남기고 넘어진 헝가리 선수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린샤오쥔, 서이라가 함께 엉켜 넘어졌다. 서이라는 다시 일어나 질주를 펼쳐 3위로 골인했다. 다음 종목인 500m에선 대표팀 후배 황대헌이 은메달, 린샤오쥔이 동메달을 각각 획득했다. 초반부터 독보적인 스퍼트로 치고 나간 중국의 우다징을 넘지 못했다. 그래도 취약 종목 남자 500m에서 2개의 메달을 동시에 따낸 건 최초였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남자 5,000m 계주는 노메달이었다. 린샤오쥔이 레이스 초반 혼자 미끄러져 넘어지며 메달권에서 멀어졌다. 경쟁팀들에 반 바퀴 이상 뒤진 한국은 레이스를 정상적으로 마쳤지만 최종 4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린샤오쥔은 "올림픽 전부터 계주에서만큼은 금메달을 가져오자고 팀원들끼리 얘기했지만 내가 결선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면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아쉬워했다.

대표팀 후배와 갈등 이후 중국행

린샤오쥔이 법원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평창 올림픽 이후 한국 쇼트트랙은 격랑이 일었다. 남자 대표팀의 쌍두마차인 린샤오쥔과 황대헌 간 사고가 발생했다. 2019년 6월께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암벽 등반 훈련 중에 린샤오쥔이 황대헌의 바지를 내렸고, 이에 수치심을 느낀 황대헌은 성희롱으로 선수촌에 신고했다. 앞서 선수촌에서 남자 국가대표 선수가 여자 숙소에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발각돼 물의를 일으켰던 쇼트트랙은 얼마 안 가 또 사고를 쳐 대표팀 전원이 퇴촌 처분을 받았다.

진상 조사를 벌인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성적 수치심을 일으킨 신체적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인정됐다"며 선수 자격 정지 1년을 결정했다. 이 징계로 그는 2020년 8월 7일까지 선수로 뛸 수 없게 됐다. 빙상 연맹 징계 후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고, 결국 법적 대응에 나섰다. 린샤오쥔은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징계무효 확인 소송을 법원에 내 승소했다. 또 강제추행 혐의 형사 소송도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가 확정됐다.

법적 분쟁 과정에서 그는 2021년 3월 중국 귀화를 결심했다. 린샤오쥔 측은 "아직 한참 선수 생활을 이어갈 시기에 이어가지 못하는 어려움과 아쉬움에 기인한 결정"이라며 "당연히 한국 선수로서 태극기를 달고 2022 베이징 올림픽에 나가 2연패 영광을 누리고 싶었지만 재판이 길어지고 연맹의 징계도 있어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는 꿈을 이어가기 어렵게 됐다"고 귀화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결과적으로 베이징 올림픽 출전은 불발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올림픽 헌장에 따르면 한 선수가 국적을 바꿔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기존 국적으로 출전한 국제대회 이후 3년이 지나야 한다. 린샤오쥔은 2019년 3월 한국 대표 선수로 ISU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어서 2022년 3월 이후 중국 대표로 뛸 자격이 주어지는 상황이었다. 베이징 올림픽은 2022년 2월에 펼쳐졌다.

한국 쇼트트랙의 부메랑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혼성 2,000m 계주 결선에서 중국 대표팀 마지막 주자 린샤오쥔이 넘어져 아쉬워하고 있다. 하얼빈=뉴스1


린샤오쥔은 2022~23시즌부터 중국 대표로 성과를 냈다. 단거리 500m에 강세를 보였고, 중국 대표팀의 남자 계주와 혼성 계주 주축이었다. ISU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들과 다퉜던 그는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을 통해 처음 종합국제대회에 출격했다. 그러나 의욕이 넘쳤던 나머지 대회 첫 종목부터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혼성 2,000m 계주 결선에서 결승선을 2바퀴 남기고 블록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선두로 달리던 린샤오쥔이 대열에서 이탈한 사이 라이벌 박지원이 선두로 치고 나가 여유롭게 금메달을 따냈다. 미끄러져 펜스에 부딪힌 린샤오쥔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어 벌어진 남자 1,500m 결선에서도 박지원에게 밀려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린샤오쥔은 결국 가장 강점을 보이는 남자 500m 결선에서 금빛 질주를 펼쳤다. 박지원을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경기 종료 후 박지원을 추월하기 직전 중국 대표 동료 쑨룽이 린샤오쥔을 밀어줬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중계 영상을 보면 린샤오쥔의 뒤에 있던 쑨룽이 오른손으로 린샤오쥔의 엉덩이를 밀어주는 듯한 장면이 나왔다. ISU 규정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은 이 같은 장면을 뒤늦게 확인했고, 이날 심판진도 경기 종료 즉시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아 그대로 넘어갔다.

밀어주기 의혹으로 한국 팬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린샤오쥔은 마지막 종목 5,000m 계주 결선 마지막 바퀴에서 박지원과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이다가 넘어졌다. 린샤오쥔이 먼저 밀치는 장면이 포착됐지만 심판진은 박지원에게만 실격을 줬다. 이로 인해 한국은 노메달, 중국은 동메달을 가져갔다. 이 대회에서 중국 남자 대표팀의 유일한 금메달리스트가 된 린샤오쥔은 어깨 수술을 위해 2024~25시즌 잔여 대회에 출전을 안 하기로 했다. 그는 북경일보를 통해 "내년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지금 수술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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