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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근우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홍대 레드로드 버스킹거리에서 정치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최악의 경우 정언유착, 높은 확률로 상부상조, 최소한 방송이 호구. 최근 허은아 개혁신당 전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제기한 이준석 의원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이하 <뉴스쇼>)와의 언론 유착 의혹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허 전 대표는 이준석이 아마도 당직자들과 모인 듯한 단톡방을 캡쳐해 공개했는데, 해당 캡쳐에서 이준석은 <뉴스쇼> 게스트인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을 공격할 여론조사 자료를 제작진에게 제공하라 지시하고, 실제로 해당 방송에선 당일 새벽에 올라왔던 뉴스토마토의 여론조사 자료를 사용해 조 의원에게 질문했다. 우연일까. 허 전 대표의 의혹 제기에 대해 <뉴스쇼> 제작진은 바로 반박문을 통해 이준석 측에 자료를 제공받은 게 아니라 “생방송 도중에 이 여론조사 내용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질문을 추가”했으며 “어떤 특정인이나 단체의 지시 또는 강압에 따라 방송한 일이 없음”을 강조했다. 대체 당일 새벽 6시에 올라온 여론조사 기사가 어떻게 아침 7시 반 조금 넘을 즈음 ‘화제’가 되었는지 의문이지만, 그걸 추궁하려는 건 아니다. 아직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허은아의 의혹 제기를 괄호 안에 넣어 유보하더라도, 여전히 논쟁적인 회색지대가 남는다.

김현정의 뉴스쇼.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현재 <뉴스쇼>에서 ‘월간 이준석’을 진행하고도 있지만, 이번 의혹 이전에도 <뉴스쇼>가 이준석을 편애 수준으로 자주 출연시키고 본인 주장을 펼칠 기회를 줬다는 것은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난해 12.3 내란 사태 다음날 수많은 국회의원 중 굳이 계엄 해제 표결에도 참여하지 않은 이준석을 섭외해 내막을 들어본 건 끈끈한 유대 외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소위 ‘마이너스 삼선 중진’이라 불리며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 번이나 낙선한 게 전부였던 시절에도 그는 그럼에도 소속 정당과 직함을 계속 바꾸고 역시 정치적 입장도 계속 바꿔가면서 꾸준히 <뉴스쇼> 패널로 등장해 자신의 정치적 체급과 대중적 인지도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 후광을 바탕으로 국민의힘 당대표가 된 후 <뉴스쇼>와의 첫 인터뷰 말미, 그는 김현정 앵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런데 <뉴스쇼>에 제 빈 자리는 누가 채우나요? 사람들이 탐을 많이 낼 것 같은데요.” 짧은 발언에서도 진실은 숨김없이 드러난다. 방송은 언론으로서 자체적 관점을 구성하기보단 정치인의 ‘말빨’에 의존하며, 정치인에게는 자기 홍보를 할 탐나는 자리라는 것.

정언유착에 대한 <뉴스쇼> 제작진의 반박이 사실이라 해도, 윤리적으로는 공허한 건 그래서다. 그들은 그저 당시 가장 화제가 된 시사 인물을 섭외했을 뿐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청취율이 높은 방송은 그 자체로 자기실현적 힘을 지니고 있다. 가령 2024년 총선에서 당선하며 드디어 ‘마이너스 삼선 중진’에서 벗어났던 그는 화제의 당선자 중 하나로 직접 스튜디오에 나와 <뉴스쇼>와 인터뷰를 했다. 물론 그의 당선은 실제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또한 그는 해당 인터뷰에서 민주당 공영운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좁히고 역전할 수 있던 변곡점으로 선관위 토론을 꼽으며 “저희가 <뉴스쇼>에서 했던 것(토론)도 굉장히 관심 많이 받았고 신나게 (유권자들에게 영상을) 돌렸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공영운 후보는 처참한 토론 능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준석이 토론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던 건 공영운 후보 딸의 전세를 낀 아파트 갭투자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며, 이는 이후 사실이 아니란 게 밝혀졌다. 그렇다면 언론으로서 <뉴스쇼>가 한 건 무엇인가. 화제의 선거구로 선정되어 방송 토론을 하고 방송을 통해 화제의 중심이 되며 최종적으로 화제의 당선자가 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뉴스쇼>는 화제성 밑에 깔린 진실을 드러내는 언론의 역할 대신 아닌 스스로 화제성을 부여하고 인증하는 역할을 했으며 그 수혜자는 명백히 이준석이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2일 서울 마포구 홍대 레드로드 버스킹거리에서 정치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준석이 제공하려 한 여론조사 기사를 <뉴스쇼>가 인용한 것은 우연일 수 있지만, <뉴스쇼>가 끊임없이 마이크를 쥐어 준 그가 당대표도 되고 국회의원도 된 건 우연이 아니다. 당장 2022년 성 접대 의혹으로 당대표 자리에서 내려왔다가 화제의 ‘양두구육’ 기자회견으로 다시 정계 복귀를 시도하던 그를 가장 먼저 불러주고 그를 위한 변명의 판을 깔아주며 공론장의 한복판에 다시 세워준 것도 <뉴스쇼>다. 단순히 이준석이 자주 출연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비판적 검증 없이 그의 말을 그대로 실어 나르고 정당화한 게 문제다. 국민의힘 당대표 시절 그는 방송에서 전국장애인철폐연대(이하 전장연)와의 갈등에 대해 자신은 장애인을 혐오하는 게 아니라 단지 전장연의 투쟁 방식을 비판한 것뿐이며, 자신에게 장애혐오 프레임을 씌운 것에 대해 사과를 받아줄 용의가 있다고 했다.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투쟁은 비장애인의 이동권 침해가 아닌 이미 침해된 장애인의 이동권을 가시화하는 운동이며, 장애인은 혐오하지 않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는 장애인은 비판하겠다는 것은 결국 정치적 주체로서의 장애인을 배제하는 광의의 차별일 수 있다는 지적이나 질문은 없었다. 외려 일주일 후 일종의 반론 인터뷰를 하러 온 박경석 전장연 대표에게 김현정 앵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더 많이 박수칠 수 있는 또 다른 시위 방식이 없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같이 고민해봐야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며 이준석의 논리를 반복하는 수준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허은아가 공개한 카톡에서 <뉴스쇼>를 만만하게 보는 이준석의 하대와 자신감 역시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무책임한 자극적 말로 청취율과 정치적 인지도를 올리는 정치인과 언론의 건강하지 못한 상부상조가 지속될 때, 비판적 기능이 상실된 언론을 정치인이 호구로 보지 않을 이유란 없다. 이에 대해 “강압에 따라 방송한 일이 없”다는 것으로 언론의 역할을 다한 양 구는 <뉴스쇼>의 반박은 얼마나 허약한가.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2일 서울 마포구 홍대 레드로드 버스킹거리에서 정치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물론 이 모든 것을 <뉴스쇼>만의 문제, 김현정 앵커만의 문제로 환원한다면 억울할 법하다. 정치인 패널을 정치 이슈에 대한 이해당사자이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거리를 두고 접근하기보단, 막전막후에 대한 ‘썰’을 제공할 입담꾼으로 소비하는 건 최근 시사 프로그램의 공통적인 문제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MBC 시청자위원회 회의록에는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통렬한 지적이 남아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인 신미희 위원은 명태균의 공천개입을 다룬 <100분 토론>에 명태균과 연루되어 있고 실제로도 방송에서 반쯤 명태균 대변인 역할을 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을 부르는 게 적절했는지 질의하는 동시에, MBC의 이준석 편중을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100분 토론> 이후에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이하 <시선집중>)과 MBC <뉴스외전> 등 주요 시사 프로그램도 그를 섭외하며 공천개입에 대한 이준석의 주장과 변명을 전달하는 창구가 되었다. 또한 이준석은 1999년부터 2021년까지 <100분 토론> 22년간 최다 출연자 분석에서 15회 출연해 13위를 기록했으며 최다 출연자 중 1970년대생 이후는 1985년생인 이준석 딱 한 명이었다는 것이 신미희 위원의 지적이다. 다시 말해 MBC 시사 프로그램이 가장 사랑하는 젊은 패널은 이준석이었다. 한국 언론 지형에서 비교적 진보 성향인 MBC조차 윤석열과 사이가 안 좋다는 이유 하나로 이준석을 합리적인 젊은 보수 포지션으로 활용하고 경청하는 상황은 많은 것을 드러낸다.

그러니 이번 이준석과 <뉴스쇼>의 유착 의혹은 그저 유착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유무죄의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거나 종결되어선 안 된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도 된다는 얘긴 아니다. 만에 하나 정언유착이 사실이라 한들 김현정 앵커 한 명이 책임을 떠안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의 말들을 무비판적으로 확산시키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는 행태는 이미 유착만큼 나쁘다. 지난해 텔레그램 기반 딥페이크 성착취 범죄가 크게 공론화되자 <시선집중>에 출연한 이준석은 텔레그램 검열 강화는 불가능하다는 전제로 “결국 이런 식으로 가면 대책은 텔레그램 차단밖에 없”으며 이는 “학교 폭력을 없애기 위해 학교를 없애는 거”나 다름없다며 검열 강화 주장은 무책임한 과잉 규제라 비난했다. 이후 그의 장담과 달리 텔레그램과의 수사 협조가 이뤄졌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 추가 인터뷰는 없었으며, 다시 언론은 그에게 윤석열-한동훈 갈등이나 명태균에 대해 질문하느라 바빴다. 마찬가지로 12.3 내란 사태 이후 더더욱 신나서 여기저기 출연해 떠드는 이준석에게 그 미치광이 군주를 대통령 만든 것을 본인 치적으로 자랑하던 과거에 대해 책임감을 묻고 따지는 시사 프로그램을 보거나 들은 바 없다. 공론장의 특혜 속에서 홀로 합리적인 정치인인 척 굴기란 이렇게 쉽다. 이보다 양두구육에 어울리는 상황이 또 있을까.

<위근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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