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심판 막바지, 막말 논란 커져
게티이미지뱅크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여야의 ‘막말 논란’도 점입가경이다. 반말·비속어는 물론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까지 나온다. 22대 국회 들어 줄곧 이어진 강대강 대치 정국이 12·3 비상계엄과 윤 대통령 탄핵소추 및 탄핵 정국에서 더욱 심화하며 발언 수위도 함께 격해지는 양상이다.
입길에 오르다 지난 12일 사퇴한 박구용 전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 전 원장은 유튜브 방송에서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옹호하는 청년층을 거론하며 “그들 스스로 말라비틀어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가 ‘청년 비하’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는 앞서 지난해 12월에도 “20, 30대 남성들한테 정보를 알려주려고 한다. (윤 대통령 탄핵 집회에) 여자분들이 많이 나온대”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여성 참가자들을 객체화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박 전 원장 사퇴 이튿날 대정부질문에 나선 상대 당 의원을 “치매”라고 소리쳤다가 지탄을 받았다. 지난 13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를 상대로 질문을 하던 박지원 민주당 의원을 향해 일부 여당 의원이 “치매 걸렸냐, 치매!”라고 야유한 것이다. 1942년생인 박 의원은 현직 국회의원 중 최고 연장자다. 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생물학적 나이로 무차별적 공격을 하는 국민의힘의 발언은 이 사실을 비하한 악의적이며 부도덕한 차별 발언”이라며 해당 표현을 쓴 의원을 찾아 윤리위원회에 제소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연이은 설화(舌禍)에 여야 모두 소속 의원들에게 과도한 언행을 자제하라는 ‘주의령’을 내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박 전 원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당직자들에게 신중한 언행을 당부했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내란 이후 생긴 극도의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완화해야 할 민주당의 성숙하고 신중한 언행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고 전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역시 “당에서는 폭력을 선동하거나 비호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각별히 말과 행동을 유의해 달라”고 당내에 당부했다.
여야가 부쩍 ‘입단속’에 신경 쓰는 이유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여론이 더욱 민감하게 움직이는 시기가 됐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 현실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잘못 뱉은 말 한마디가 중도층 여론 기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실제 역대 선거 때마다 정가(政街)의 실언은 꾸준히 유권자들의 구설에 올랐다.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불거진 실언이 특정 지역·연령층 표심, 나아가 선거 전반의 향배를 가른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불거진 ‘노풍(老風)’이 대표적이다.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이 청년층 투표를 독려하며 “60,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열린우리당은 결과적으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힘입어 과반 의석을 확보했지만, 고령 보수층 결집에 빌미를 제공하면서 막판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터진 정태옥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의 ‘이부망천’ 발언도 종종 회자된다. “멀쩡한 사람이 서울 살다가 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는 말을 꺼냈다가 정 의원은 대변인에서 물러난 데 이어 탈당까지 해야 했다. 자유한국당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2석, 226개 기초단체장 중 53석을 얻으며 참패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18년 지방선거 결과 분석 논문에서 해당 발언을 두고 “전국의 민심을 주도하는 수도권의 인천 경기 지역 여론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고 평가했다.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질 낮은 비방성 발언으로 중도층의 표심을 떠나보낸 사례도 있었다.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은 2012년 19대 총선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막말한 전력이 드러나 홍역을 치렀다. 결국 민주통합당은 127석을 얻어 새누리당(152석)에 밀렸고, ‘막말 파문’은 선거 직후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에서 총선 최대 이슈로 꼽혔다.
일단 막말이 뱉어지면 수습하긴 쉽지 않다. 21대 총선에 출마한 차명진 미래통합당 의원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자원봉사자를 비하하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폈다가 당으로부터 제명당했다. 그러나 제명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며 끝내 총선을 완주했고, 미래통합당은 결과적으로 103석을 얻는 데 그쳤다.
거친 발언은 통상 지지층 결집 수단으로 활용된다. 특히 조기 대선 관련 언급을 피하며 탄핵심판 기각을 외치고 있는 여당 일각의 입장에서 야당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이 유용한 수단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강한 대야 투쟁 논리가 정치적 지지층을 끌어안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라며 “향후 후보·선대위가 주도해 지나친 발언을 자제시키더라도 그 효과는 한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탄핵 정국을 거치며 핵심 지지층이 뭉칠 대로 뭉친 상황이어서 ‘득점’보다 ‘실점’에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지지자들이 주로 보는 유튜브 등에서 본인의 상품성을 입증하기 위해선 보다 자극적이고 ‘엣지 있는’ 발언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게 현 미디어의 환경”이라며 “막말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승리 확률을 높이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