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충남 아산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고 있다. 아산=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은 중도보수”라고 한 발언이 파장을 낳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비명계를 중심으로 “대표 혼자 당의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느냐” “민주당은 보수를 지향한 적 없는데 충격”이라는 등의 반발이 터져 나오면서 당 정체성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영혼 없는 ‘C급 짝퉁’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리는가 하면 “가야 할 방향을 깨달았다니 환영한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따지고 보면 “민주당은 중도보수”라는 발언을 한 건 이 대표가 처음도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 당시 방송토론에서 “우리 당은 중도우파 정당”이라며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기 때문에 우파이고, 서민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중도”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에 비해 진보”라면서도 “유럽을 기준으로 하면 보수에 가깝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중도보수 선언이 지지층 확장을 위한 선택임을 감추지 않는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건전한 보수, 합리적 보수 역할도 우리 몫이 돼야 한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황당무계하다”면서도 “국민의힘을 극우로 몰아 궤멸시키겠다는 것”이라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그 진정성을 의심하며 논란이 확산되는 건 이 대표가 그간 ‘일극체제’ 강화에 힘을 쏟으며 당내에서 제기된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막아온 탓이 커 보인다. “탈이념 탈진영 실용주의” 선언 이후 ‘전 국민 25만 원 소비 쿠폰 지급’ ‘주52시간제 예외 허용’ 등 주요 정책 현안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적지 않다.
이 대표는 중도보수 논란을 키우기보단 당 안팎의 비판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김대중·문재인은 맞고 이재명은 틀렸냐’는 식의 대응은 악수다. 속 빈 이념 논쟁이나 선거공학적 전략에 그치지 않도록 자신의 선언을 뒷받침할 구체적 정책을 내놓고 실천을 담보하길 바란다. 민주당 정체성을 가장 잘 담은 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