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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가 들려주는 ‘백년의 사랑’(2)
지난 이야기 1968년 6월 15일 밤, 서울 마포구의 언덕길에서 술에 취한 중년 남자가 비틀거리다 버스에 치여 사망한다. 비극의 주인공은 시인 김수영(1921~1968). 그의 아내 김현경(97) 여사는 여전히 김수영 시인의 기억을 간직한 채 경기도 용인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그가 ‘백년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수영이 첫사랑에게 버림 받고 방황하던 1942년 일본 유학 시절, 10대 소녀 김현경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김수영과 동숙하던 이종구가 ‘사랑하는 조카딸’이라며 예뻐하던 김현경을 소개해줬다. 김현경은 이종구와 김수영을 모두 '아저씨'라 불렀다. 세 사람은 국경을 넘어 편지를 주고 받으며 문학을 논하는 문학동지였다.

김현경이 이화여대 2학년이던 1947년. 첫사랑 배인철 시인과 데이트 도중 세 발의 총성이 울린다. 한 발은 김현경의 옆구리를 스쳤다. 머리에 총을 맞은 배인철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남로당이었던 배인철을 우익이 제거했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경찰은 치정 문제로 몰고 갔다. 김수영·박인환, 이종구와 그의 동생 이진구 등 김현경과 문학을 이야기하던 남자들이 모조리 경찰서로 불려가 문초를 당했다. 김수영이 가장 혹독하게 시달렸다. 그러나 당연히 그들 중 범인은 없었다.

“그때는 연애하는 게, 사랑이 범죄였어요. 이화여대도 더는 다닐 수가 없었어요. 풍기문란죄지. 신문에서도 ‘남산 사건'이라고 대서특필을 하니, 그냥 나는 죄인이 된 거야. ”

한동안 가택 구금을 당했다. 사람들의 연락도 뚝 끊겼다. 마치 전염병이라도 옮기는 양 사람들은 그를 피했다. 편지에 사랑한다는 말을 숱하게 써 보냈던 이종구도 이 사건으로 화가 나 김현경을 외면했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고민하며 시름에 빠졌다.

″김의 자백에 의하야 소환당한 김과 관계가 있는 자가 5~6명 이상이라 한다″ 배인철 피살 사건을 '여대학생의 탈선' 탓으로 돌린 신문기사.
고립된 김현경을 제일 먼저 찾아온 게 김수영 시인이었다. 김수영은 배인철 사건도, 그로 인해 자신이 받은 고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툇마루에 앉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 문학 하자. 문학이 구원이다. "
김현경은 생각했다.

'맞아, 문학이 구원이네'

진실로 문학이 구원이었다. 김수영은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씩 찾아와 김현경의 방 창문 앞에서 베토벤의 '운명'을 휘파람으로 불었다. 둘은 각자 써온 시를 읽고, 때론 책을 읽고 토론했다. 김현경은 김수영의 실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질투가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문학을 함께 하는 것이 그들에겐 사랑이었다.

데이트할 때는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한적한 곳을 찾아다녔다. 가난한 시인 대신,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 쓰던 김현경이 데이트 비용을 냈다.

“명동의 음악다방 ‘돌체’ 같은 곳에서 차를 마시고 베토벤이나 차이콥스키 같은 클래식을 들었어요. 그런데 매번 그렇게만 있으면 답답하잖아요.”

한번은 노량진 종점에서 한강 백사장을 따라 여의도 쪽으로 걸었다. 강렬한 여름의 햇살에 지쳐 떨어질 무렵, 인적이 드문 여의도 섬 한복판에 넓은 웅덩이가 하나 나타났다. 김현경은 손수 만들어 입고 다니던 원피스를 벗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속옷까지 훌훌 벗어 던지고 물속에 텀벙 뛰어들었다.

처음엔 눈이 휘둥그레져서 난처해 하던 김수영도 결국 알몸으로 뒤따라 들어왔다.
" 더우니까, 그냥 더워 미치겠으니까 그랬지. 그땐 내가 사람들을 잘 놀라게 했어요. "
김수영은 “아방가르드한 여자"라며 이 일을 두고두고 이야기했다.

둘의 연애에 제동이 걸린 건 1948년 여름, 김수영이 심한 암치질을 앓으면서다. 김현경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를 병원에 데려가 수술을 시키고, 며칠간 집에도 가지 않고 간병을 했다. 병원비는 집에서 훔친 비단을 동대문시장에 내다 팔아 조달했다. 세 번째 비단을 훔치던 날, 화가 잔뜩 난 아버지와 마주쳤다. 시 나부랭이나 쓰는 작자를 도둑질까지 해가며 만난다며, 아버지는 딸의 방문에 대못을 박았다.

결국 도망쳐 나와 김수영을 찾아갔지만, 그는 “우리가 이래선 안 된다. 이만큼 했으면 됐다"며 김현경을 돌려보냈다. 실연을 당한 김현경은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몇 날 며칠을 울었다.

(계속)
김현경은 몰랐습니다. 김수영이 왜 이별을 통보했는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두 사람의 사랑,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6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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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탕탕!” 첫사랑은 즉사했다…98세 김수영 아내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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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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