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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
최상목 대통령 권한 대행의 대행 법적 지위는 안개 속 그 자체다. 부총리가 갑자기 ‘대행’이 된 근거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탄핵 소추 당해 직무 정지된 때문인데, 국회의원 192명의 찬성으로 ‘의결’된 한 대행의 탄핵소추가 정족수를 충족했는지부터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재에 계류된 이 정족수 심판에서 정족수 미달로 결론이 나면, 한 대행은 탄핵 소추와 직무 정지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됨에 따라 최 부총리가 대통령 대행으로서 행사해온 조치들은 죄다 ‘무효’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현실성을 떠나 순수한 법리로만 따지면 조한창·정계선 헌법재판관 임명부터 무효가 돼 헌재는 6인 체제로 돌아갈 뿐 아니라 조·정 재판관이 참여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도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법조인들은 “국회 같은 합의제 기관에서 의사 정족수가 미달한 의결은 무효가 되는데, 행정기본법 15조는 ‘무효인 처분은 처음부터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아니한다’고 못 박고 있다”는 근거를 든다. “판사 자격 없는 사람이 재판장으로 참여한 재판은 무효인 게 당연하지 않으냐”는 비유도 든다.

정족수 문제로 최 대행 자격 논란
두 재판관 참여는 이해 충돌 소지
신속 결론으로 ‘대행 혼란’ 해소를

이런 논란이 제기된 시발점은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해 12월 27일 한 대행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면서 정족수를 대통령 기준(재적 3분의 2, 200명)이 아닌 국무위원 기준(재적 과반, 151명)을 적용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즉각 “한 대행 소추 정족수는 200명이니 무효”라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했다. 대통령 부재로 인한 국정 공백은 1초도 있어선 안 되는 만큼 한 대행 탄핵 심판은 분초를 다퉈 처리해야 했다. 게다가 소추 정족수마저 불분명해 유·무효를 다퉈야 한다면 헌재는 권한쟁의심판이 제기된 당일이라도 재판관들이 모여 바로 결론을 내야 했다.

그러나 헌재는 심리를 차일피일 미루다 54일 만인 19일에야 한 대행 탄핵 심판과 권한쟁의심판 변론을 각각 개시했다. 사안의 급박성에 비해 너무나 안이한 처사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한 대행 탄핵 소추 의결 정족수를 따지는 권한쟁의심판에 조한창·정계선 재판관이 참여한 것이다. “이해충돌 우려가 상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심판에서 의결 정족수가 200석으로 결론 난다면 “두 재판관의 지위가 상실되는 것이 법리”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는 법언이 있다. 두 사람은 자진해서 심판 참여를 회피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법조계에선 “헌재 재판관들이 정족수를 151석으로 미리 정해놓고 권한쟁의심판 시늉만 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족수를 200석으로 판단할 경우 헌법재판관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논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조·정 재판관이 권한쟁의심판에 참여했으니, 두 사람이 ‘151석’에 손을 들어줄 건 뻔하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2017년 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로 황교안 총리가 대행을 맡고 있을 때, 막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가 세 차례나 전화를 걸어 현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최상목 부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 한번 못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총리(Prime Minister)라면 몰라도 부총리와 통화하는 건 격에 맞지 않는 데다 ‘대행’ (Acting President) 지위 논란을 워싱턴도 알고 있기 때문이란 전언이다. 이런 이유로 한 총리 측은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탄핵심판을 신속히 심리해 달라”는 의견을 4차례나 헌재에 냈다. 그런데도 헌재는 준비 절차만 두 번 진행하면서 심리를 미뤄왔으니 직무유기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헌재가 재판부의 결정이 없었음에도 공보관 브리핑을 통해 “한 총리의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한 것도 월권이다.

한 총 전리 탄핵소추 사유는 5가지지만, 민주당이 요구한 헌법 재판관 3명 임명을 거부한 ‘죄’가 핵심이다.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즉 한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역할을 하지 않은 이유로 소추 당한 것이니,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 소추 정족수를 적용하는 게 상식 아닐까. 헌법재판소 주석서가 “(대통령) 권한 대행자의 탄핵소추 정족수는 대행되는 공직자(대통령)의 정족수가 기준”이라고 한 점도 힘을 싣는다. 한 총리 변호인 측은 “법률관계만 따지면 되는 내용이라 한 총리 탄핵심판은 1시간, 권한쟁의심판은 5분이면 결론 날 사안”이라고 했다. ‘안개 속’ 상태인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헌재는 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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