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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석 더불어민주당은 진보정당인가 보수정당인가. 갑작스러운 이념 좌표 논쟁이 정치권을 덮쳤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은 원래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밝히면서다. 반도체 특별법 ‘주52시간 특례’ 조항과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의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포함 여부를 두고 ‘우클릭이냐, 도로 좌클릭이냐’ 논란이 채 마무리되기 전에 민주당 정체성 논쟁에 새로 불을 붙인 모양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서울 마포구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서 열린 '트럼프 시대 : 한미동맹과 조선산업·K-방산의 비전'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표는 19일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원래 진보 정당이 아니다. 진보는 정의당·민주노동당 이런 쪽이 맡고 있다”며 민주당의 위치를 '중도 보수'로 꼽았다. 이어 “국민의힘이 극우보수, 또는 거의 범죄 정당이 돼 가고 있으니 제자리를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친(親)민주당 유튜브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우클릭을 안 했다. 원래 자리에 있다”며 “우리는 중도보수 정도의 포지션이고, 진보 진영은 새롭게 구축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달 들어 구체적인 정책 각론을 두고 좌우를 넘나들며 혼선을 빚어왔다. 반도체 연구·개발(R&D) 분야에 ‘주 52시간제 예외’를 두는 방안을 수용하는 듯 했다가, 근로시간 특례 조항을 뺀 채 반도체법을 처리하는 쪽으로 최종 방침을 정했다. 추경안 쟁점인 민생회복지원금을 두고도 이 대표는 “필요하다면 특정 항목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사흘 뒤 발표한 추경안에서 1인당 25~35만원 ‘민생회복 소비쿠폰’ 예산을 포함시켰다. 그런 이 대표가 현대차 아산공장(20일), 양대 노총(21일) 방문을 앞두고 총론 차원의 ‘중도보수 정당론’을 꺼낸 것이다.

이 대표의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을 ‘극우’로 가두고,중도층을 끌어당기기위한 프레임 전략"으로 분석한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12·3 계엄 이후 보수 정당이 ‘윤석열 지키기’에 몰두해 법치주의 같은 보수적 가치를 버리고 극우정당으로 변질했다”며 “그들이 비워놓은 자리를 우리가 조금 확장해 가져오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 측 관계자 역시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대한민국 이념 지형이 왜곡돼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며 “계엄 옹호 세력이 보수 포지션을 과도하게 점유한 걸 정상화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대표가 “민주당은 중도보수”라고 외친다고, 실제 국민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겠냐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당이나 정치인의 이미지는 ‘내가 이렇다’고 해서 바뀌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언행이 쌓여 만들어내는 시간의 축적물”이라며 “작년까지 노란봉투법이나 양곡관리법 같은 법안을 마구잡이로 던져 놓고 ‘중도보수’라고 선언하는 건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야권 인사 역시 “사회경제적 의미의 중산층과 이념 지형에서의 중도는 엄연히 다른 차원인데, 이 대표가 그 둘을 동일시하다 보니 국민 입장에선 뭔가 엇박자로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운데), 김두관 전 의원(오른쪽), 박용진 전 의원이 18일 경기 광명시 KTX 광명역에서 열린 비명계 인사들 모임 '희망과 대안 포럼' 창립식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의 발언은 민주당부터 발칵 뒤집어놓았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페이스북에 “이 엄중한 시기에 왜 진보·보수 논쟁을 끌어들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주당의 정체성을 혼자 규정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민주당의 정체성을 한 번의 선언으로 바꿀 수 없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 고민정 의원은 “중도확장이라는 말의 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교섭단체의 허들을 낮추고 당론을 최소화하고,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꼬집었다.

‘보수 정당’을 자처해 온 국민의힘도 맹비난을 쏟아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중도보수는 말로 되는 게 아니라, 헌법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신장시키고 시장경제 활성화해서 기업들이 마음 놓고 경영할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라며 “우클릭하는 척하다가 양대 노총이 반대하면 바로 접는 사람이 중도보수라고 주장한들 누가 믿겠냐”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한마디로 양두구육,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것”이라고 했고,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검사 사칭’에 이은 ‘보수 사칭’”이라며 “중도층 표심을 잡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정치 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이미 국민 판단이 끝나 있는 사안이라면, 최근 정체성 논란은 중도층에게 오락가락하는 정체성을 폭로한 새로운 기회”란 해석도 내놓았다. 이번 발언이 이 대표에게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5당 대표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내란 종식 민주 헌정 수호 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 출범식에서 공동선언문에 서명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조국혁신당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연합뉴스
하지만 지난 대선과 달라진 정치 지형 때문에 이 대표의 ‘중도화 전략’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 의원은 “지난 대선처럼 2.37%를 득표한 정의당이 이번에도 존재했다면 양대 노총에서 반발할 정책은 절대 꺼내지 못한다. 노동계 표가 정의당에 흡수되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왼쪽이 비어있으니 과거보다 큰 보폭으로 중도로 전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5당 대표들과 만나 ‘내란 종식 민주 헌정 수호 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를 구성했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 등 내란 종식 ▶부정선거 음모론 엄벌 ▶민주주의·기후·경제·안보·불평등 위기 해소 등에 공동 보조를 맞추겠다는 의도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의 범야권 연대를 염두에 둔 행보로 읽힌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결국 대선은 ‘진보 대 보수’의 일대일 구도로 좁혀질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심상정도 조국도 없지 않으냐”며 “진보 쪽에서 이탈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 이 대표가 마음 놓고 ‘합리적 보수’에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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