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혐중]
음모론 주제 불법계엄 관련 내용에서
세대별 관심사로 세분화 파급력 커져
'팩트체크' 결과 모두 '거짓' 또는 '왜곡'
음모론 주제 불법계엄 관련 내용에서
세대별 관심사로 세분화 파급력 커져
'팩트체크' 결과 모두 '거짓' 또는 '왜곡'
지난 7일 서울 중구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멸공 페스티벌'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국회 전자청원에 '국내 체류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의 특혜 근절'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입시특혜, 대출특혜, 주거지원, 세금 문제 등 한국인은 못 받는 각종 특혜를 중국인들이 누리고 있다는 '가짜뉴스'였지만 열흘 만에 6만 명 가까이 동의할 정도로 지지를 받았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음모론이 진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중국인이라는 등 탄핵 정국과 관련한 주제를 넘어 △대입·취업(1020세대) △출산·육아(3040세대) △연금(5060세대) 등 세대별 관심사로 세분화되며 파급력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거짓이나 왜곡된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1020 취업·3040 육아·5060 연금 가짜뉴스
그래픽=송정근 기자
최근 1020 사이에선 '중국 국적이면 의대 프리패스'(화교 특별전형) 논란이 화제가 됐다. 엑스(X·옛 트위터 )의 한 사용자는 지난 1월 "수능 앞두고 마지막 일주일 불태워 2등급 이상 만들었는데 화교들은 5, 6등급 룰루랄라 받고 명문대 가는구나. 미친 제도"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게시글은 9만 회 이상 조회됐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도 "화교 전형은 왜 있는 거야?" "수능 5등급이 화교 전형으로 의대 붙는 게 진짜 럭키비키(행운)" 등의 게시물이 하루에 한 건 이상 꾸준히 올라온다. 하지만 국내 어느 대학에도 화교 특별전형은 없다. 외국인 특별전형을 착각했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특별전형은 정원 외 추가 모집이라 한국인과 직접 경쟁하지도 않는다.
3040 학부모 사이에선 '화교 국공립 어린이집 0순위설'이 중국인 혐오를 키웠다. 맘카페 등엔 "아무리 둘 셋 낳으면 뭐하냐. 화교가 얼집(어린이집) 1순위인데" "한국 엄마들은 일 나가고 싶어도 얼집에서 탈락해서 애를 맡길 수 없다" 등의 글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영유아보육법에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어린이집을 우선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할 뿐 중국 국적자 우대 조항은 없다.
"중국인이 왜 연금을 타가냐" 등 5060 사이에서 퍼져있는 '연금 낭비'도 사실과 다르다. 국민연금 외국인 가입자 가운데 중국인 비중이 42.6%(2024년 6월 기준)로 가장 높긴 하지만, 외국인의 국민연금 가입엔 상호주의 원칙이 적용된다. 한국인에게 자국 연금 가입을 허용하는 국가의 근로자만 우리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2013년 1월에 발효된 한중 간 사회보험협정에 따라 중국 거주 한국인은 중국 양로보험(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러니 한국 거주 중국인의 국민연금 가입과 수령을 혜택이라 보긴 어렵다.
문제는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6세 딸을 키우는 아버지 김모(49)씨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어린이집 화교 혜택은 없어져야 한다"며 "이러니까 한국인들은 똑같이 애 키우면서도 불공평하다고 느낀다"고 토로했다. 경기 고양시 거주자 고모(58)씨도 "유튜브에서 중국인 연금 혜택을 보고 뜨악했다"며 "연금 고갈 난다고 난리인데 대한민국 국민이 우선이어야지 중국인이 우선이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7일 국회전자청원 홈페이지에 '국내체류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의 특혜 근절 요청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원. 국회전자청원 캡처
尹 영장 발부 판사가 중국인?
계엄·탄핵 관련 음모론도 여전하다. '부정선거 중국 개입설'은 계엄군이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99명을 체포해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보냈다는 인터넷 매체 스카이데일리 보도에서 촉발됐다. 급기야 지난달 16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에서 대통령 측 배진한 변호사가 이 보도를 언급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에 "선거연수원에 있던 96명은 선관위 교육 과정에 참가한 공무원 및 외부강사였다. 당시 계엄군은 선거연수원 안으로는 진입하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주한미군 역시 "주한미군, 주일미군, 미 국방정보국, 미 국방부 어느 곳도 그런 행동(중국인 오키나와 이송)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서부지법 부장판사와 내란 혐의 사건 재판장인 지귀연 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중국인이라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차 부장판사는 인천 출신으로 인일여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199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 출신인 지 부장판사는 개포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후 1999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일부에선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 대다수가 중국인이라는 의혹도 제기한다. 주한 중국대사관이 지난달 4일 자국민에게 "정치 집회 및 군중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고 공개 정치 연설을 자제하라"고 공지한 게 근거다. 그러나 이는 자국민 보호를 위한 통상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주한 러시아·영국·프랑스대사관 등도 비슷한 내용의 안전 공지를 냈다.
연관기사
• 청년층 스며든 반중 정서 자극해 '혐중 몰이'... 보수의 위험한 도박(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21617320001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