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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창업수요 급감하자 세로수길·연남동 새 건물 공실 늘어
근린상가 과잉공급에 높은 이자비용 건물주 부담으로
신사역 인근 한 신축 건물 모습. 건물이 모두 비어있다. 사진=민보름 기자

“요즘 영업하기에 분위기가 정말 안 좋다. 오늘도 트럼프가 관세를 매긴다는 기사가 쏟아지지 않았나?”

아직은 인적이 뜸한 2월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역 인근 상권에서 만난 사업가 A 씨가 말했다. 근처에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는 A 씨가 지인과 통화를 하고 있던 곳은 깔끔한 통창으로 빈 내부가 보이는 한 꼬마빌딩 앞이었다. A 씨는 “이 건물도 공사가 다 끝난 지 몇 달 된 것 같은데 아직 공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을 대체하며 급성장하던 강남 ‘핫플레이스’ 세로수길 상권에 변화의 기미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도 찾아보기 어렵던 1~2층 상가 공실이 군데군데 눈에 띄고 있다. 공실 없기로 유명하던 강북 핫플레이스 마포구 연남동도 마찬가지다.

공실의 양상도 평소와는 다르다. 통상 임차인들은 시설이 노후화되지 않은 새 건물을 선호하는데 공실이 난 근린상가 대부분이 최근 신축 또는 리모델링을 거친 새 건물이다. 대부분 통으로 비어 있는 가운데 깔끔하게 마감된 벽면과 유리창에는 임차 문의를 할 수 있는 연락처나 공인중개사무소 이름이 적힌 현수막 등이 붙어 있었다.

지난 3~4년간 코로나19 팬데믹은 물론 금리인상 여파에도 건재했던 서울 강남, 강북 대표 상권이 흔들리고 있다. 당장 공실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들 상권 역시 불황의 조짐은 피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은 “경기가 나빠지면서 신규 창업할 임차인이 씨가 말랐다”고 입을 모은다.

자연스레 해당 지역에 신규 투자한 건물주들의 손실도 불가피해졌다. 투자금만큼 비싼 임대료를 받기가 불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버티고 있는 기존 상가 임차인들이 영업을 중단한다면 공실 확산으로 인한 부동산 시세 하락은 더 본격화할 전망이다.
경기 위축에 임차 수요 ‘뚝’
연남동 골목상권에 위치한 근린상가 건물 모습. 사진=민보름 기자

신사동 세로수길과 연남동 일대는 ‘경리단길’같이 유행이 변하며 하락세를 탄 곳과 여러모로 차별화한 상권이었다. 각각 3호선·신분당선 신사역과 2호선·공항철도·경의중앙선이 정차하는 홍대입구역 역세권으로 관광객부터 인근 직장인, 대학생 수요까지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는 입지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상권 특성이 젊은 세대 소비 트렌드에 맞았던 것도 인기에 한몫했다. 대형 상가 위주인 가로수길이나 명동, 강남역 등 전통적인 번화가에 비해 중소형 건물 및 상가 위주라 대기업 프랜차이즈 대신 MZ가 선호하는 ‘힙한’ 가게들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인 가로수길과 달리 세로수길은 아더에러, 탬버린즈 같은 특색 있는 브랜드나 개인 상점들로 채워졌다.

‘홍대상권’의 일부인 연남동도 점차 개인 식당, 디저트 카페가 들어서며 젊은층이 선호하는 만남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2015년 개장한 경의선숲길이라는 콘텐츠가 생기며 데이트코스로도 인기가 높아졌다. ‘연트럴파크’라는 별명도 생겼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권 내 매장들의 매출이 줄고 있다.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반짝’했던 엔데믹 효과도 끝이 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시 상권분석 통계를 보면 2024년 3분기 연남동 점포별 평균 매출은 505만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만원 줄었고 이 기간 점포수와 유동인구도 감소했다. 같은 기간 신사동 점포의 평균 매출은 1946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136만원 감소한 것으로 점포 수는 21개, 유동인구는 헥타르(ha)당 1789명 줄었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후폭풍과 트럼프 2기 행정부 임기 시작 등 각종 변수로 인해 소비심리는 더 싸늘하게 식었다는 평이다. 연남동에서 한 디저트 카페 주인은 “주말 대기가 크게 줄긴 했다”며 “한창 때보다 매출이 많이 빠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사동에서도 인기 커피숍 손님은 감소한 반면, 인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저가에 커피를 파는 카페에는 손님이 몰리고 있었다.

이처럼 경기가 위축되면서 올해 들어 신규 임차 수요가 거의 사라진 상태다. 특히 새로 창업하거나 이전, 확장하는 가게가 들어와야 하는 신축 건물이 피해를 보고 있다. 번화가에 새로 건물이 완공되면 임대인 눈높이에 맞는 임차인이 들어오기까지 시차가 발생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최근 새 건물 공실은 경기불황 탓이라는 설명이다. 기존 임차인들은 그럭저럭 수익을 내며 장사를 하고는 있지만 경기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새로 가게를 창업할 임차인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과잉공급된 상가, 호가 떨어져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신사역 인근 건물 가격은 부지면적 기준 3.3㎡(평)당 2억원을 호가했다. 연남동에서도 3.3㎡당 1억원이 넘게 거래된 사례가 나왔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투자자들이 소위 ‘뜨는 상권’에 꼬마빌딩 투자를 하기 위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벨류맵 사용자가 지난해 설정한 관심 부동산 건수를 보면 상업업무시설의 경우 95.91%가 서울에 위치했다. 자치구별로 보면 가장 많은 5961건이 강남구, 2598건이 서초구에 소재했고 2503건을 기록한 마포구가 그 뒤를 이었다.

유망 상권에 가격 접근성이 높은 소규모 근린상가 건물이 증가했던 것도 원인이다. 오래된 주택가였던 지역이 감각적인 상권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까지 대거 소규모 근린상가 건물로 개조됐다. 대체로 집값이 오르면 손바뀜이 일어나고 새 건물주가 리모델링 등을 통한 용도변경으로 조성한 상가 건물에 임차인을 들이는 방식으로 건물 가치를 높이는 것이 일종의 투자 공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근린상가가 과잉공급되던 상태였다. 건물주는 부동산 매수대금 및 건축행위에 투입된 비용, 금융비용 등을 새 건물 임대료에 반영하려 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시장에 나오는 상가가 많아 결과적으로 높은 임대료에 임차인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성수동 연무장길, 압구정 로데오, 용산 용리단길 등 서울 시내에 ‘핫플’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대체재도 많아졌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신사역과 동교·연남 상권은 지난해 초부터 공실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공실률이 낮던 소규모 상가조차 임대료가 소폭 상승하던 중에도 빈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에 경기불황까지 겹치며 임대료 상승세와 함께 건물 호가도 주춤하고 있다. ‘배짱’을 부리며 호가를 올리던 기존 건물주들도 매물을 내놓으며 “가격 조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거래가 성사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 연남동 소재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기존에는 다가구주택을 리모델링하면 새 임차인을 받는 데 무리가 없었는데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며 “그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던 공실이 발생하면서 건물 매수 문의도 끊긴 상태”라고 말했다. 인근 다른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주택을 자꾸 근린상가로 바꿔놔서 상가 임대료는 오르기가 힘든 반면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찾는 자취방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건물주의 손실도 불어나고 있다. 오를 대로 오른 가격에 건물을 매수한 소유주가 많은 데다 대출을 낀 경우 이자비용도 클 수 있다. 부동산 경기가 고점을 찍었던 당시보다 금리도 올랐다. 약 80억원 상당의 건물을 매수하며 50%가량 담보대출을 받았을 때 이자비용은 매월 11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이 공실로 남아 있으면 이 같은 비용은 전액 건물주가 부담해야 한다.

신사역 인근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근린상가를 리모델링한 건물주들 대부분이 2~3년 사이 비싼 가격에 건물을 사들였다”며 “새 건물주들은 전문직이나 자산가라서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지만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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