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1987년 고려대학교 캠퍼스에는 '정돌이'라고 불리는 14살 소년이 있었습니다.
집을 나와 갈 곳 없는 그를 대학생들이 챙겨주었고, 그렇게 '정돌이'는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게 되었는데요.
영화로 재탄생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12월 3일 계엄 이후 대한민국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문다영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 리포트 ▶
대학생 누나 형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14살 아이.
1987년 고려대 캠퍼스에서 그는, '송귀철'이란 이름 대신 정돌이로 통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했다 우연히 만난 형을 따라 고려대에 갔습니다.
[송귀철/정돌이]
"'갈 데 없으니까 같이 가자' 그래서 이 학생회실에 왔더니 이제 누나들하고 형들하고 막 있더라고요."
대학생들은 하숙방을 내어주고 밥을 먹여가며 그를 동생처럼 품었고, 별명도 지어줬습니다.
[김남수/고려대 경제학과 86학번]
"정경대 학생들이 움직일 때마다 그 친구가 같이 움직이니까, 아 저 친구는 정경대 마스코트야. 정돌이야."
캠퍼스의 낭만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그러나, 치열한 현실을 딛고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학교엔 최루탄 연기와 폭력이 자욱했습니다.
[송귀철/정돌이]
"하얀색 백골단들은 진짜 무서운 사람들… 일반 시민들도 그냥 길 막힌다고 뭐라 그러면 바로 안경 벗겨서 때리고…"
경찰이 대학생을 감시하는게 일상이었고,
[서정만/고려대 행정학과 84학번]
"그 당시 유행했던 말이 정돌이만 잡아가면은 (학생운동 지도부를) 다 잡을 수 있다. 왜냐하면 얘가 다 봤으니까 이름 다 알 거 아니에요."
형과 누나를 따르다 보면 소년 정돌이도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 이르렀습니다.
[송귀철/정돌이]
"이한열 열사 사건 터지고 노제까지 추모제 하면서 노제까지 참가하면서 시청에서 최루탄 바바방 터지는데도 있었고…"
87항쟁으로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고 고려대 농악대에서 장구치던 정돌이는 진짜로 '장구 명인'이 됐다는 동화같은 이야기.
작년 12월 2일까지 만해도 영화가 해피엔딩일 줄 알았던 주인공들은 더 간절한 마음으로 1987년 그 때의 정돌이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김대현/영화 '정돌이' 감독]
"지나가서 그냥 끝나버린 흘러가버린 역사가 아니고 현실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기 때문에 계엄 이후에 오히려 저희 영화에 더 많이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닌가…"
MBC뉴스 문다영입니다.
영상취재 : 나경운 이상용 / 영상편집 : 김민상 / 자료제공 :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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