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피해가 극심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시 말리부 지역이 14일(현지시간) 쏟아진 폭우로 침수되고 진흙으로 덮였다. AFP=연합뉴스
최악의 산불이 남긴 상처를 수마가 또다시 할퀴었다. 가뭄에 의한 화재에 이어 폭우로 인한 홍수와 산사태를 겪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얘기다.
미국 기상청(NWS)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남부에는 13일(현지시간)부터 14일까지 ‘대기의 강’이 지나가며 폭풍우가 불어 닥쳤다. 대기의 강은 띠처럼 얇고 긴 강수대가 한 번에 많은 양의 비를 쏟아내는 현상을 말한다.
로스앤젤레스(LA)엔 이틀간 최대 150㎜ 내외의 비가 내려 토사가 유출되고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이 지역 9개월 치 강우량보다 많은 강우량이라고 CNN은 전했다. 영상에는 구급차가 바다로 떠밀려 가고, 주택이 폭우로 일어난 산사태에 쪼개진 모습도 포착됐다.
이처럼 가뭄에 의한 산불, 폭우로 인한 홍수라는 정반대의 현상이 연달아 나타나자, 지난달 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의 연구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UCLA 연구팀은 ‘(수문)기후 채찍질’(Hydroclimate whiplash)이란 명칭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했다. 땅은 바싹 마르고, 대기는 스펀지처럼 많은 물을 머금은 탓에 가뭄과 폭우 같은 극한의 기상 현상이 서로 빠르게 전환된다는 의미다.
지난달 7일(현지시간) 대형 산불로 로스앤젤레스 퍼시픽 팰리세이즈 지역이 화마에 휩싸이자, 소방관들이 출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근본적인 원인은 지구 온난화로 수분 증발량이 많아진 탓이다. 연구에 따르면 3개월 이내에 가뭄→홍수 또는 홍수→가뭄으로 전환한 사례가 20세기 중반 이후 31~66% 증가했다. LA의 경우 겨울철 폭우의 강도가 심해졌다. 지난해 2월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폭우가 쏟아진 뒤, 봄부터 가뭄이 시작돼 12월까지 8개월 동안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우기인 겨울철에 큰 산불이 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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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대륙서 나타난 기후 채찍질
2016~2023년 전세계에서 나타난 '기후 채찍질' 현상. 사진 네이처 UCLA 연구팀 논문
UCLA 연구팀에 따르면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중미, 칠레ㆍ아르헨티나, 서아프리카ㆍ동아프리카, 유럽, 걸프만을 둘러싼 중동, 호주, 중국 등에서 이런 기후 채찍질이 나타났다. 중국은 2022년 6~9월 사이 폭우에서 가뭄으로 급격히 변해 농작물과 수력발전 전력 생산량이 감소했다. 온난화로 지구 평균온도가 3도 상승할 경우, 3개월 이내에 나타나는 기후 채찍질 증가율은 113%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지역과는 다소 양상이 다르나 한반도에도 기후 채찍질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 전문가 반기성 케이클라이밋 대표는 “나라마다 지형적 특성이 다르나 대기가 스펀지처럼 수분을 머금어 문제가 생기는 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봄철 동해안은 LA의 산림처럼 건조한 바람이 불고 소나무가 많아 주기적으로 큰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남부에 가뭄이 심각했던 2023년 4월에는 강원도 강릉을 포함해 전국에서 35건의 산불이 동시 발생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퍼시픽 팰리세이즈 지역이 폭풍우로 초토화됐다. AFP=연합뉴스
‘기후 채찍질’ 연구를 이끈 UCLA 환경 및 지속가능성 연구소의 다니엘 스웨인 박사는 가디언에 “지난 5~10년 사이 기후변화가 가속하면서 대기가 스펀지 역할을 하는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