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미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 비치의 공항에 도착했다. 그의 마라라고 리조트에 가기 위해서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취임 후 한 달가량 동안 주요 교역국을 대상으로 ‘관세 폭탄’을 잇따라 드러내면서 한국 정부가 협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가 오는 17일 미 워싱턴DC로 출국할 예정이다.
산업부가 신경을 집중하는 건 오는 4월 2일 시행 예고된 상호관세다. 상호관세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세계 각국이 미국산 상품에 부과하는 관세율만큼 미국도 상대국에 관세를 매기겠다는 개념이다. 한국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어 서로 거의 모든 품목(98%)을 무관세로 교역한다. 이 점만 고려하면 상호관세 부담은 크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 미 대통령은 관세가 아닌 다른 무역장벽도 관세로 간주해 상호관세를 매기겠다는 입장이라 한국도 과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인 ‘그림자 관세’로 한국을 포함한 180개가량 국가가 운영 중인 부가가치세 제도가 지목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각)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관세보다 훨씬 더 가혹한 부가세 시스템을 사용하는 나라들을 관세를 가진 나라와 비슷하게 여길 것”이라며 “어떤 국가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이 너무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고 느낀다면 그들이 할 일은 대(對)미국 관세(그림자 관세 포함)를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다. 만일 미국에서 제품을 제조하면 관세는 없다”고 덧붙였다.
부가세는 한국을 비롯해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거래 단계별로 상품이나 용역에 새로 부가하는 가치에 매기는 세금이다. 한국 부가세율은 10%로 헝가리(27%) 등 유럽 각국의 부가세보다 낮은 편이다. 미국에선 부가세 형식의 소비세는 없고 최종 소비자만 판매세(세율 6.6%)를 낸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포함해 부가세 제도를 갖춘 국가의 기업은 미국에 수출할 때 자국에서 부가세를 돌려받은 뒤 미국에서 6.6%로 낮은 수준의 판매세만 부과 받으면 된다. 반대로 외국에 수출하는 미국 기업은 높은 세율의 부과세를 부과받기 때문에 불공평하다는 게 트럼프 미 대통령의 주장이다.
일각에선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보다는 유럽연합(EU)을 겨냥해 부가세 관련 언급을 한 것으로 분석(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하기도 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취임하면서 “그들(EU)은 평균 20% 상당의 부가세를 매기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높다”며 “그것은 거의 관세와 비슷하다”고 말한 바 있어서다.
김영옥 기자
상호관세 부과 예정일에는 미국의 모든 교역국 자동차에 대한 관세도 부과될 예정이라 산업부는 긴장한다. 자동차는 한국의 최대 대미 수출 품목이다. 산업부는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가 연계돼 발표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정부의 정확한 방침을 파악하고 있다.
오는 3월 12일 미국의 모든 교역국 철강·알루미늄에 부과가 예고된 관세 25%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대응할 시급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철강의 경우 관세를 부과받는 게 큰 틀에서 국내 업계에 이득이 될 수도 있어서다. 앞서 1기 트럼프 미 행정부 시절 한국 철강업계는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 연간 수출량을 약 263만t으로 제한하는 쿼터제를 받아들였는데, 앞으로는 쿼터제가 풀리고 관세를 맞을 가능성이 열렸다.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쿼터제 폐지로 수출 물량이 확대되는 데 따른 이득이 관세를 맞는 데 따른 손해를 능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현대제철이 미국에 10조원가량 투자를 추진 중인 점 등을 앞세워 관세 대상에서도 제외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한국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최종 담판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리더십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점이다. 또 트럼프 미 대통령과 담판에 앞서 관계부처 간 의견을 한데 모으기부터 어려운 문제도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부처 간 조율은 원활하다”면서도 “앞으로 트럼프가 방위비 인상 등까지 요구할 경우엔 포괄적 협상 전략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방위비를 담당하는 외교부와 관세 방어를 맡은 산업부 간 혼란이 생길 수 있어 최대한 빨리 대통령 공백 사태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한 주를 ‘외교·통상 슈퍼 위크’로 설정하고 민∙관 합동으로 외교∙통상 활동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