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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 흐름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하락…‘공모주 투자는 필패’ 공식
금감원의 ‘공모가 뻥튀기’ 대책 통할지 미지수…‘폭탄 돌리기’ 주의보
올해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들. 상장 당일 LG CNS는 9.85%, 미트박스는 25.26%, 데이원컴퍼니는 40%, 아이지넷은 37.79% 각각 하락했다./연합뉴스


[주간경향] 미국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A씨는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공모주 투자만 한다. 2023년 공모주의 상장 당일 가격 변동폭이 400%로 확대되며 주가 변동성을 노리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 초반 매수세가 몰릴 때, 주식을 팔면 안정적으로 ‘치킨값’ 정도를 버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올해 A씨의 국내 투자실적은 온통 손실이다. 지난 2월 11일 만난 A씨는 “LG CNS까지 손실이 날 줄은 몰랐다. 이제 치킨값 버는 것도 끝난 것 같다”며 “공모주로 수익을 냈던 것이 지난해 더본코리아 상장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마저도 당일 팔지 않았다면 손실을 볼 뻔했다”고 말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주식시장에서 올해 공식이 하나 쓰이고 있다. ‘공모주 투자는 필패’라는 것이다.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월 12일 기준, 올해 총 9개 기업(코스닥 8개·코스피 1개)이 신규 상장했다. 이중 상장 당일 종가가 공모가를 웃돈 경우는 단 두 차례였다. 나머지 7개 기업은 모두 공모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당일 거래를 마감했다. 일반적으로 공모주 투자는 상장 당일 매매를 기본으로 한다. 즉 올해 공모주에 투자했다면 약 80% 확률로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LG CNS를 청약한 A씨의 계좌. 2월 13일 기준 공모가 대비 10% 넘게 하락했다./A씨 제공


시장과 상관없이 하락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절차 진행,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이라는 대내외 변수 속에서도 올해 한국 주식시장은 우상향했다. 지난 1월 2일, 2400.87포인트로 출발한 코스피는 2월 12일 기준, 2548.39포인트까지 상승했다. 코스닥 역시 상승했다. 678.98포인트로 출발한 코스닥지수는 동일 기간 745.18포인트로 올랐다. 주가지수가 우상향 흐름을 보이는 상황에서 하락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 등에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일부 종목이었다. 철강, 2차전지 관련 기업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거시경제 흐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하락한 종목도 있다. 공모주다.

9개 종목 중 상장 당일 가장 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은 교육기관 업종으로 상장한 데이원컴퍼니다. 공모가 1만3000원짜리 주식의 상장 당일 종가는 7800원이었다. 40% 하락했다.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 업체 와이즈넛 역시 공모가 1만7000원이었던 주식이 상장 당일 1만800원을 종가로 마감했다. 36.47% 하락이었다. 해당 기업들은 사실상 상장하자마자 하한가를 맞았다. 반면 두 기업이 상장한 1월 24일 코스닥 시장은 0.65% 상승했다. 시장 흐름과 관계없이 개별 기업 주가만 하락했다는 의미다.



나머지 공모주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스테라시스, 아이에스티이를 제외하면 상장 당일 전 종목이 하락했다. 특히 시장에 충격을 준 것은 대기업인 LG 이름을 달고 지난 2월 5일 코스피에 상장한 LG CNS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을 하는 LG CNS는 올해 상반기 공모주 중 최대어로 불렸다. 국내외 기관 수요 예측에서도 2059건이 참여해 경쟁률은 114.38:1을 기록했다. 그 결과, LG CNS의 공모가는 공모밴드 상단인 6만1900원으로 확정됐다. 공모가대로면 시가총액만 5조9900억원에 달했다. 지난 1월 21일부터 22일까지 일반 청약이 진행됐고, 증거금으로 약 21조원이 모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LG CNS는 상장 첫날 9.85% 폭락했다. 공모가인 6만1900원이 그대로 이 회사의 52주 최고가가 됐다.

올해 상장한 공모주가 일시적 하락세를 겪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2월 12일 기준, 5개 종목이 여전히 공모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시장 추세와 관계없이 상장과 함께 하락하고, 시간이 지나도 공모가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공모가 책정 자체가 ‘뻥튀기’ 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12일 LG CNS의 장중 주가변동 모습. 공모가인 6만1900원이 LG CNS의 최고가가 됐다./네이버 주식 갈무리


공모가 ‘뻥튀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일반적으로 공모가는 기업실사와 수요예측을 기반으로 주관사인 증권사와 발행회사인 기업이 협의해 결정한다. 기업실사는 해당 기업의 ‘펀더멘탈’이라 부르는 매출, 영업이익 등에 대한 검토다. 동일 업종 상장 기업들(피어그룹)과 비교해 성장 가능성도 반영한다. 이후 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와 금융감독원의 증권신고서 심사 등을 거친 뒤 희망 공모가의 하단과 상단이 결정된다. 이를 ‘희망 공모가 밴드’라고 한다. 다음으로 수요예측은 시장평가를 의미하는데 기관투자자가 희망 공모가 밴드에서 어느 정도 가격대에 참여할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관사와 발행회사는 ‘최종 공모가’를 결정한다. 일반 시장 투자자들이 공모주에 참여하는 것은 ‘최종 공모가’가 결정된 뒤부터다. 즉 회사의 가치가 최종 공모가에 적절히 반영됐느냐 여부는 일반 투자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모주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공모가 대비 두 배로 시초가가 형성된 뒤 가격제한폭인 30%(상한가)까지 주가가 상승하는 이른바 ‘따상’(260% 상승)이 빈번했던 시절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공모주에 참여한 모두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다. 공모주가 상장과 함께 폭락하는 경우, 제대로 된 공모가 산정이 이뤄졌느냐를 따지게 된다.

우선, 수요예측 단계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의 경우 최종 공모가가 높게 형성되는 것을 선호한다. 최종 공모가가 높을수록 상장 시 가격변동(최대 400%)으로 얻을 수 있는 차익도 커진다. 실제로 금감원에 따르면 2024년 있었던 기업공개(IPO) 77건 중 49건(약 64%)의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자 90% 이상이 공모가 밴드 상단초과 가격을 제시했다. 이렇게 높은 공모가를 만들어 두고, 단기차익을 노린다는 것은 올해 사례로 확인해볼 수 있다. LG CNS가 상장한 2월 5일 매매동향을 보면, 개인투자자만 316만주를 순매수했고, 기관은 264만주, 외국인은 50만주를 각각 순매도했다. 상장 당일 주가가 상승한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스테라시스는 상장 당일인 1월 24일 44.35% 상승했지만 이날도 개인투자자만 158만주를 매수했고 기관은 79만주, 외국인은 8만주를 순매도했다.

금감원 역시 이를 알고 있다. 2023년 6월, 단기차익을 노린 가격 왜곡을 막겠다며 상장일 가격 변동폭을 63~260%→60~400%로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주가 상승폭을 확대해 ‘따상’을 노린 ‘묻지마 투자’를 막고, 가격도 안정시킨다는 발상이다. 문제는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4년 7월에 나온 ‘IPO 건전성 제고방안 시행 이후 공모주 주가행태’라는 논문은 2022년 10월 30일부터 2024년 2월 17일까지 코스피·코스닥에 상장한 기업 93개를 분석했다. 이중 37개는 IPO 건전성 제고 방안 시행 이전에 상장했고, 56개는 시행 이후에 상장됐다. 이를 통해 얻은 결과는 ‘제도변경 후 최종 공모가가 더 높게 형성됐고’, ‘상장일로부터 21거래일 동안의 변동성이 제도 변경 후 오히려 증가했으며’, ‘상장 한 달 후 주가가 공모가보다 밑돌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즉 대책 시행 후 가격왜곡 위험이 오히려 커졌다는 의미다.

금감원 대책 이번에는 통할까

개선된 제도하에서 상장한 LG CNS도 수요예측 단계부터 ‘고평가’ 논란에 휩싸여 있었다. 실제로 LG CNS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투자자의 약 88%가 공모밴드 최상단인 6만1900원 이상을 써냈다. IPO에 나선 기업,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 단기차익을 노리는 기관투자자 등 최종 공모가를 결정하는 주체 중 공모가를 높여서 손해 보는 곳은 없는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상장 직후 10% 넘게 폭락했지만, 이들 중 누구도 수요예측 실패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LG씨엔에스의 기관수요예측. 신청수량 기준 약 88%가 공모가 밴드 최상단인 6만1900원 이상을 써냈다./다트 전자공시시스템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금감원은 지난 1월 21일 또다시 대책을 내놨다. 공모가 결정방식 자체보단 기관투자자를 장기투자자로 변모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크게 세 가지 대책이 나왔는데 두 가지는 ‘기관투자자의 공모주 의무보유 확약을 유도’하고,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의 참여자격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기존 제도를 단순히 강화한 것에 가깝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것은 “법 개정을 통한 제도 도입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힌 세 번째 대책이다. 목표를 “주관사가 IPO 흥행, 높은 공모가가 아닌 합리적 공모가 산정, 안정적 중·장기 투자자 확보에 두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위해 제시된 것이 ‘코너스톤투자자’ 제도 도입이다. 일정 기간 보호예수를 조건으로 증권신고서 제출 전에 특정 기관투자자에 대한 공모주 사전 배정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미 홍콩, 싱가포르, 유럽 등에서는 활용하고 있다. 보호예수 기간을 얼마나 걸 것인가가 핵심인데 제도가 활성화된 홍콩에서는 6개월 이상을 부여하고 있다. 단기차익 실현이 아닌 중·장기 보유를 유도하는 것이다. 문제는 제도 시행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데 2018년 한국거래소가 처음 제도 도입을 언급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현실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합리적 공모가를 산정하도록 어떻게 유도하느냐’ 문제는 주관사가 상장 전 사전취득한 물량에 대한 의무보유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코스닥 시장의 경우 공모가에서 주관사가 사전취득한 물량의 취득가를 뺀 괴리율이 30% 이상일 경우 의무보유 기간을 6개월 부여하고, 30% 미만일 경우에는 3개월 부여한다는 것이다(기존은 괴리율 50% 이상일 때 6개월 의무보유, 50% 미만일 때 1개월 의무보유). 이 경우 공모가를 고평가하면 괴리율 문제로 주관사가 6개월간 의무보유를 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괴리율 30%까지는 여전히 공모가 뻥튀기가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공모주 투자는 상장 당일 누가 고평가된 주식을 빠르게 떠넘기느냐의 싸움이 되고 있다”며 “사실상 폭탄 돌리기 장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개인투자자가 단기수익을 노리고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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