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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추~서울역 왕복 704번 버스의 마지막 여정
1953년 개통 후 70여 년 간 서민들의 발
1월 1일부로 송추~구파발역 구간 운행 종료
106번, 773번… 경기~서울 노선 잇단 폐선
지방 소멸, 고령화 시대 가속화 우려
704번 서울시 간선 버스가 지난해 11월 6일 서울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 덕양구를 지나 양주시 장흥면에 들어서고 있다. 올해 1월 1일 부로 704번 노선의 서울 외 구간이 폐지되면서 다시 볼 수 없는 장면이 됐다. 영상 캡처


단풍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15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효자치안센터 정류장 앞길을 704번 버스가 달리고 있다. 영상 캡처


2024년의 마지막 날 고요한 새벽 어스름을 뚫고 파란색 버스가 지나갑니다. 경기 양주시 장흥면 송추골과 서울 도심을 연결하는 유일한 노선 버스이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704번' 버스입니다. 1953년 개통 후 70년 넘는 긴 세월 서민들의 발이 되어준 버스는 이 날을 끝으로 서울 외 구간 운행을 종료했습니다. 그 마지막 여정을 한국일보가 5개월에 걸쳐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기록했습니다.

당신에게 버스란

지난 1월 24일 서울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성입구 정류장에서 등산객들이 704번 버스를 타고 있다. 영상 캡처


704번 버스는 누군가에겐 대중교통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블로거 유찬열(31)씨는 세 살배기이던 1997년부터 이 버스를 탔습니다. 일요일마다 남대문시장 앞 교회를 가기 위해 엄마 손을 잡고 버스를 타던 아이가 어느새 어엿한 어른이 되었고, 이제 같은 버스를 타고 예비군 훈련장으로 향합니다. 유씨에게 704번은 인생을 함께 달린 친구인 셈이죠. 송추 지역에 사는 초등학생 엄태빈(12)군은 친구들과 신나게 논 뒤 704번을 타고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학교나 병원을 오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버스 덕분이죠. 엄 군은 "(704번 버스는) 피곤함도 나누고 즐거움과 설렘도 나눈 존재"라고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습니다.

704번 버스는 시민들의 친구이자 발이 되어 주었습니다. 단풍이 물든 가을이면 서울 도심에서 버스에 오른 등산객들이 '북한산성 입구' 정류장에서 우르르 내립니다. 마음이 갑갑하고 위로받고 싶을 때마다 버스에 몸을 싣고 훌쩍 떠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요. 예비군들은 704번 덕분에 서울에서 훈련장까지 한번에 갈 수 있습니다. 이 버스를 못 타면 구파발역이나 불광역에서 택시를 잡아 타야 합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소옥자(82)씨는 자택이 있는 송추골에서 704번 버스를 타고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까지 통원 치료를 해 왔습니다. 새벽부터 움직여 진료를 받고 약을 타서 환승까지 하는 긴 여정에서 704번은 소씨에게 든든한 '리무진'이었습니다.

156번에서 704번으로, 또 서울 버스로

지난해 10월 17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지축예비군훈련장 정류장에서 예비군들이 704번 버스에 오르고 있다. 영상 캡처


지난해 12월 31일 경기 양주시의 한 버스 정류장에 704번 서울 외 구간 폐선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영상 캡처


704번 버스가 처음부터 이 번호를 달았던 건 아닙니다. 1953년 개통 후 '22번' '22-1번' '156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달리던 버스는 2004년 7월 서울시 버스 체계 개편과 함께 '704번'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70여 년 간 번호는 수 차례 바뀌었어도 경기 양주시 장흥면 송추골에서 고양시 덕양구, 서울 은평구 구파발을 거쳐 서울역까지 시민들을 나르는 버스의 여정은 변함이 없었죠. 그런데 지난 2017년과 2022년 노선이 단축될 뻔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다행히도 당시 양주시 주민들의 반대로 위기를 넘겼지만, 지난해 7월 704번 노선을 운행하던 제일여객이 한남여객운수로 인수되면서 위기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서울시와 한남여객운수가 사업 정리 차원에서 서울 외 구간 폐선을 통보한 것입니다. 결국 지난해 8월 양주시 송추~구파발역과 구파발역~서울역으로 노선이 분리되더니 2025년 1월 1일부로 송추~구파발역 구간은 최종 폐선됐습니다.

서민들에게 든든한 자가용이자 삶을 이어주는 실핏줄 같던, 언제든 찾아가 기댈 수 있는 아빠 같던 704번 버스는 이제 서울 밖에선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서울시는 시내 운행 버스는 늘리면서 도로 혼잡 등을 이유로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노선들을 잇따라 폐지하고 있습니다. 의정부에서 종로5가까지 운행하던 106번이 지난해 8월 폐선됐고 파주 운정과 구파발역 사이를 왕복하던 773번도 12월 폐선되고 말았습니다. 704번을 대체하기 위해 '양주 37번'이라는 버스가 생겼지만, 서울역까지 가지 않으니 양주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긴 역부족입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버스는 지방 소멸 고령화 시대의 가장 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최후의 보루"라며 "지방 소멸이 가속화하고 사람들이 대도시에만 모여 살면 소도시는 다니는 버스도, 사람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이번 정류장은 이 버스의 마지막입니다"

704번 버스 내부. 영상 캡처


704번 버스의 마지막 운행일인 지난해 12월 31일 새벽 서울 은평구 진관동 진관공영차고지에서 기사 최용식씨가 운행을 준비하고 있다. 영상 캡처


704번 버스는 2024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서울 외 구간 운행을 종료했습니다. 버스 기사 최용식씨는 영상을 통해 승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냈습니다. "이쪽(고양·양주)이 개발되면 노선이 증설돼서 다닐 수 있으니까... 많이 아쉽지만 환승 잘하시고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버스는 멈췄지만, 버스와 함께한 세월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여전히 달리고 있을 겁니다.

다큐멘터리 <이번 정류장은 이 버스의 마지막입니다>는 한국일보 홈페이지와 유튜브, 네이버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704번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해 주세요.



편집자주

다큐멘터리 <이번 정류장은 이 버스의 마지막입니다> 제작: 한국일보 기획다큐팀
박고은 팀장
이수연·김용식·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김가현 인턴 PD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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