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차준환과 김채연이 13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프리스케이팅에서 각각 금메달을 차지한 뒤 태극기를 두르고 있다. 하얼빈=뉴스1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역사가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새로 쓰였다.
차준환(고려대)과 김채연(수리고)이 한국 피겨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남녀 싱글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둘 모두 세계 정상급 일본 선수들을 상대로 역전 우승을 일궈냈기에 감격이 두 배였다. 동시에 1년 뒤 열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을 앞두고 자신감도 크게 끌어올렸다.
차준환은 13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대회 피겨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99.02점, 예술점수(PCS) 88.58점을 합해 총점 187.60점을 받았다.
차준환이 13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하얼빈=연합뉴스
11일 쇼트프로그램 점수 94.09점을 더한 최종 점수는 281.69점으로 프리스케이팅에서 실수를 연발한 일본의 가기야마 유마(272.76점)를 2위로 끌어내리고 1위에 올랐다.
이날 경기 전까지 차준환의 금메달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쇼트프로그램에서 가기야마와 격차가 9점 넘게 벌어져 현실적인 목표는 2위였다. 점수 차이도 많이 나는 데다가, 가기야마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톱랭커(세계 3위)였기 때문이다. 차준환도 "역전을 위해 프로그램 난도를 올리지 않겠다"며 클린 연기에 집중할 뜻을 내비쳤다.
다짐대로 차준환은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 '광인을 위한 발라드'(Balada para un Loco) 선율에 맞춰 연기를 큰 흔들림 없이 수행했다. 무난하게 연기를 펼친 차준환에 이어 은반에 오른 가기야마는 예상치 못한 실수를 쏟아냈다. 초반 점프 과제를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무너져 프리스케이팅에서 차준환보다 한참 낮은 168.95점에 그쳤다.
이로써 차준환은 한국 남자 싱글 사상 첫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했다. 그간 여자 싱글에서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연아를 시작으로 유영, 김채연, 신지아 등 많은 선수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남자 싱글에선 차준환이 유일하게 경쟁력을 갖췄다. 아시안게임 역사만 봐도 2011 아스티나-알마티 대회 곽민정 동메달, 2017 삿포로 대회 최다빈 금메달, 이번 하얼빈 대회 김채연이 금메달을 따냈지만 남자 싱글은 차준환이 이번에 최초로 시상대 위에 섰다.
차준환은 경기 후 "경기 내용에 만족했고, 하나도 후회가 없어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상관이 없었다"며 "목표였던 개인 최고점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낸 것 같아서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금메달로 병역 혜택도 받게 된 그는 "굉장한 결과를 바라고 욕심낸다면 그건 노력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연기 중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 잘 이겨낸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 싱글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김채연이 태극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하얼빈=뉴시스
앞서 열린 여자 싱글에서는 김채연이 프리스케이팅 점수 147.56점을 받아 쇼트프로그램 점수(71.88점) 합계 최종 219.44점으로 1위에 올랐다. 전날 쇼트프로그램 2위였던 김채연은 이날 완벽한 연기를 펼쳐 세계 1위 일본의 사카모토 가오리(211.90)를 끌어내리고 순위표 맨 윗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를 달성한 세계 최고의 선수인 사카모토 역시 프리스케이팅에서 실수를 범해 김채연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한국 피겨가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2개 이상을 수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채연은 "금메달을 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그래도 한 번쯤은 사카모토를 이겨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큰 대회에서 사카모토를 이겨서 정말 영광"이라고 기뻐했다. 이번에 쇼트프로그램, 프리스케이팅, 총점 모두 자신의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그는 "아시안게임에서 최고 기록을 세워 가장 좋다"며 "앞으로 조금씩 더 수정하고, 채워나가다 보면 아마 더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제 시선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으로 향한다. 김채연은 "예행연습 삼았던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올림픽은 피겨를 시작할 때부터 꿈꿔왔던 대회기도 하고, 선수 생활의 가장 큰 목표다. 올림픽에 꼭 참가해 더 좋은 경기를 펼치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