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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중국 베이징 둥청구의 랜드마크인 갤럭시 소호는 춘절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썰렁했다. 일부 상점의 출입문엔 임차인을 구하는 안내문(招租·자오쭈)이 붙어 있다. 사진=김은정 한국경제 특파원

중국 내수 침체가 심상치 않다. 중국 정부가 금리를 내리고 보조금 정책을 확대하는 등 내수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얼어붙은 내수는 좀체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과 현지 자영업자들 모두 “이런 침체는 처음”이라며 내수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공실만 수두룩…기대 접고 떠나는 행렬
올 1월 유난히 날씨가 따뜻했던 주말 오전. 중국 베이징 둥청구의 랜드마크인 갤러시 소호는 을씨년스러웠다. 예년과 달리 따뜻한 겨울 날씨인데도 관광객은커녕 행인조차 찾기 어려웠다. 굳게 문을 걸어 잠근 가게들만 즐비했다. 식당이나 네일숍, 잡화점, 서점 등을 운영한 흔적이 남아 있는 가게들 앞엔 임차인을 구하는 안내문(招租·자오쭈·세놓음)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갤럭시 소호는 오피스텔과 상가가 같이 있는 복합 건물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해 한땐 관광객들의 성지로 불렸다. 수백 개의 사무실과 유동 인구가 많을 수밖에 없는 시내에 위치해 있다. 인근에는 외교부와 사법부 등 중국의 주요 정부 기관들이 모여 있어 베이징 중심가의 랜드마크로 여겨졌지만 최근 몇 년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는 게 상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점심 식사 시간께인데도 그나마 영업 중인 식당의 직원들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1층 상가 라인에서 영업 중인 한 식당의 중국인 직원은 “영업 중인 매장보다 문을 닫은 매장들이 더 많다”며 “전체 사무실 중 50%가량은 공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는 항상 줄 서서 손님을 받았는데 이젠 가끔 배달 주문만 처리하고 있다”며 “손님이 들어오면 낯설 정도”라고 푸념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베이징본부와 중국 최대 배달 플랫폼인 메이퇀, 수십 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는 베이징 차오양구의 왕징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왕징을 상징하는 또 다른 건물인 왕징 소호의 사무실도 60% 이상 공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주변에는 꽤 오랜 시간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보이는 상가 건물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왕징에서 15년째 부동산 영업을 하고 있는 40대 왕샤오는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지금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며 “코로나 팬데믹 종식 직후인 2023년보다 현재 고객이 딱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베이징에 진출한 한국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엔 ‘지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기업이든 사람이든 어떻게든 버텼다”면서도 “1년이 흘러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이젠 다들 체념하고 베이징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0%대 못 벗어나는 中 소비자물가
캡처

지난해 공식 경제성장률이 목표치인 5%를 달성했지만 중국 경제는 말 그대로 다중 악재에 시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중 관세 인상 위협이 여전한 상황에서 지방정부의 부채난, 장기화한 부동산 시장 침체는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0.1% 올랐다. 중국 CPI는 올 들어 0%대 상승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CPI는 전년 대비 0.2% 상승해 목표치인 3.0%에 크게 못 미쳤다.

지난 1월 중국 생산자물가지수(PPI) 역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4% 하락해 27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연간 기준으로도 전년 대비 2.2% 하락했다. 소비 부진이 계속되면서 출하 가격까지 떨어진 영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 정부는 지난해 소비 진작을 최우선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오래된 제품을 새것으로 바꾸는 이구환신 정책을 대대적으로 내세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내수 부진이 심화됐고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만 커지고 있다.

중국 브랜드인 샤오미와 화웨이 등이 앞다퉈 신제품을 내놓고 홍보를 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중국 소비자들의 핸드폰 교체 욕구를 자극하지 못하고 있다. 왕징의 한 휴대폰 매장 직원은 “구경하러 오는 고객은 많은데 실제 휴대폰을 새로 사는 고객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깊어지는 중국의 내수 침체는 자영업자부터 글로벌 기업, 명품 시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대만의 유명 딤섬 전문 레스토랑인 딘타이펑이 베이징과 톈진 등에서 14개 매장을 철수했는데 양안 관계 악화 때문이 아닌 중국 소비 부진 영향이 컸다는 게 현지 중론이다.

중국 요식업 전문 매체 훙찬망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식당, 레스토랑, 카페, 베이커리 등 요식업 매장 약 300만 곳이 문을 닫았다. 연간 기준 역대 최다 수치다. 훙찬망은 “식당, 찻집, 카페, 빵집, 훠궈 체인점, 술집, 고깃집 등 종목 불문하고 점포 폐쇄와 매장 축소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3년 연속 미슐랭 1스타를 받은 베이징의 최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 오페라 봄바나는 지난해 갑자기 폐업했고 유명 밀크티 체인점인 춰네이샤오취안춘은 최근 3년 새 매장 수가 10분의 1로 줄었다.
디플레 고착화…악순환 지속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지난해 중국 명품 시장 매출이 전년 대비 20% 급감해 2011년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나타냈다고 했다. 내수 부진으로 고가 시계와 보석류 매출이 특히 줄면서 지난 2020년 수준으로 주저앉았다는 설명이다. 베인앤드컴퍼니는 “부동산 시장 폭락과 높은 청년 실업률 탓에 경제난이 이어지면서 소비 심리가 둔화했다”고 해석했다. 중국 내 ‘면세 천국’으로 꼽히는 하이난에서도 지난해 명품 매출이 전년 대비 약 29% 감소했다.

주중 미국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 10곳 중 3곳은 사업 철수를 고려하고 있을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해 대중 무역 전쟁을 공식화했던 2017년 응답률(23%)보다 높은 수치다.

이를 두고 CNBC는 “제로(0)로 가까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중국이 여전히 내수 수요 부족으로 고전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리인하, 은행 대출 확대, 부동산 시장 지원 등으로 경기부양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디플레이션이 고착화하면 중국 경제 전반의 활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추가적인 가격 인하를 점쳐 지출을 미루게 되고 기업들의 수익성 저하로 이어지게 돼서다.

결국 기업들이 신규 투자와 임금 인상, 신규 채용을 꺼리면서 다시 가계 사정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소비심리를 반전시키고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긴 싸움을 이어나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무역 갈등 심화 등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연초부터 적극적인 부양 조치로 소비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오는 3월 열릴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지난해와 동일한 약 5%로 제시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발 리스크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내수 활성화가 올해 중국 경제의 향방을 결정할 핵심 요인”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김은정 한국경제 특파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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