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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원대 횡령 사건이 발생해 사업이 무산된 경남 합천군 호텔 건립 예정 터

■'수백억 원 손해' 합천군 호텔…공무원은 ‘유흥 접대’

2023년, 인구 4만 명의 경남 합천군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합천군이 생활 인구를 끌어들이기 위해 590억 원대, 4성급 호텔을 짓는 과정에서 대규모 횡령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착공 일곱 달 만에 시행사 대표 김 모 씨가 부동산 대출금 250억 원을 들고 잠적했고, 사업은 결국 좌초됐습니다. 터파기가 진행된 현장은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되메워졌습니다.

호텔 사업은 군 예산 한 푼 들이지 않은 '민간 투자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합천군과 시행사가 맺은 부실한 실시협약에 따라 횡령한 돈에 이자를 더해 310억 원을 합천군이 세금으로 고스란히 메워야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실시협약에는 사업 중단으로 대체 사업자를 찾지 못할 경우 합천군이 대주단에 대출 원리금을 물어줘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기 때문입니다. 합천군이 대출자금을 관리한 금융기관에도 책임이 있다며 대주단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 항소심이 진행되는 지금도 하루 600만 원의 이자가 붙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재판에서도 패소할 경우 합천군이 져야 할 부담은 한해 자체 수입 예산과 맞먹는 규모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달 감사원 감사에서는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2020년 합천군 공무원 3명이 시행사 대표 김 모 씨로부터 수백만 원어치 술과 음식을 대접받은 것이 감사원에 적발된 것입니다. 접대가 이뤄진 이튿날 이 시행사는 호텔 사업의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습니다.

검찰은 뇌물을 받은 혐의로 합천군 공무원들과, 뇌물을 준 김 씨 등 6명을 뇌물수수와 배임 등 혐의로 지난달 재판에 넘겼습니다.

■ 계좌 추적 중 '뜻밖의 인물'…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기소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이 2023년 1월 1일 국민의힘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 가운데 '뜻밖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유준상 원장입니다. 유준상 원장은 전직 4선 국회의원이자 현재 국민의힘 상임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검찰이 유 원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청탁금지법 위반'입니다. 대출금을 횡령한 김 씨의 계좌 추적 과정에서 2022년 3월 유 원장에게 4천만 원이 전달된 사실을 수사기관이 확인한 건데, 이 돈은 시행사가 호텔을 짓기 위해 빌린 대출금의 일부였습니다.

검찰은 김 씨가 유 원장의 영향력을 앞세워 각종 사업 편의를 제공받을 목적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습니다. 돈을 건넨 김 씨는 "유 원장이 공직 유관단체장이자 국회의원을 여러 번 하면서 인맥이 있기 때문에 향후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돈을 줬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했습니다.


유 원장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4천 만원을 받은 것은 자신의 사무실을 빌려주고 받은 정상적인 금전거래였다는 주장입니다. 유 원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김 씨와는 지인 소개로 만나 알고 지내는 사이이며, 사무실을 빌려주고 받은 임대료일 뿐"이라며 호텔 사업과는 관련 없는 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씨가 어떤 사업을 하는지 몰랐고, 법인 통장으로 받아야 할 돈을 개인 통장으로 받아 문제가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돈을 준 김 씨와 돈을 받은 유 원장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대목입니다.

■'호텔 관여 없었다더니'…등기이사에 착공식도 방문

유 원장이 말한 자신의 사무실은 민간 연구소 사무실입니다. 정책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된 사단법인으로 유 원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유준상 원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단법인에 이사로 취임한 합천 호텔 시행사 대표 김 씨.

취재진이 이 연구소의 법인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봤더니, 여러 명의 이사 가운데 합천 호텔 사업 시행사 대표 김 씨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김 씨는 2021년 12월 유 원장이 운영하는 연구소에 이사로 취임했습니다. 김 씨가 합천군과 호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입니다.

2020년 9월 대한요트협회와 뷰티 컨설팅 업체의 업무협약에서 유준상 당시 협회장(가운데)과 김 씨(오른쪽)가 사진을 찍는 모습.

이보다 앞서 유 원장과 김 씨가 업무상 관계를 맺고 알고 있었던 정황도 확인됩니다. 유 원장이 대한요트협회 회장을 맡은 2020년 한 컨설팅 업체와 업무 협약을 맺었는데, 당시 업체 대표가 다름 아닌 김 씨였습니다.

김 씨와 '단순히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유 원장의 해명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2022년 9월 경남 합천에서 열린 호텔 착공식. (왼쪽부터) 김윤철 합천군수, 시행사 대표 김 씨,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윤상현 국회의원 (출처: 유튜브 모브클래식)

합천 호텔과 무관하다는 유 원장의 해명도 석연치 않습니다. 취재진은 유 원장이 2022년 9월 합천군이 개최한 호텔 착공식에 참석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김 씨와 유 원장이 돈을 주고받은 지 6달 뒤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합천군이 촬영한 행사 영상에는 유준상 원장이 맨 앞줄에 앉아 행사를 관람하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시행사 대표 김 씨와 김윤철 합천군수, 윤상현 국회의원 등과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도 촬영했습니다. 유 원장은 이날 한국정보기술연구원에 오후 반차 휴가를 냈습니다.

2022년 9월 경남 합천에서 열린 호텔 착공식. (왼쪽부터) 윤상현 국회의원,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시행사 대표 김 씨(동그라미), 김윤철 합천군수 /출처: 합천신문/

합천군은 착공식 참석 내빈 현황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합천군 관계자는 "주요 내빈은 김 씨가 모두 섭외했고, 군은 관여한 사실이 없다"면서도 "김 씨가 거물급 정치인들을 데려와 다들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김 씨가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합천군에 신뢰를 주기 위해 유력 정치인들과의 인맥을 과시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합천군청

착공식 참석에 대해 유 원장은 "김 씨가 와달라는 요청이 왔고, 법인 이사들과 참석했을 뿐"이라며 "호텔 사업 개입은 없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습니다. 또, 이어지는 재판 과정에서 관련 사실을 적극적으로 소명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윤리 강령에는 임직원들이 직무 관련자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는 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연구원 측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유 원장에 대해 내부 윤리 강령 위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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