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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정치부장
한국사 일타 강사에서 보수의 전사로 거듭난 전한길씨에 이어 최근 우파 진영에서 조명받고 있는 이는 정형식 헌법재판관이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의 기존 진술 빈틈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정 재판관의 송곳 질의에 홍 전 차장은 자신이 구술했다는 메모의 부실함을, 곽 전 사령관은 인원-요원-의원 등 어휘가 오락가락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여권에선 판이 뒤집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기각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실제 그럴까.

정형식 헌법재판관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증인심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 전 차장의 계엄 직후 행적을 보면 “국정원장이 이재명 대표에게 전화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전언이 나오는 등 미심쩍은 부분도 있다. 그렇다고 그가 계엄 초반에 언급했던 체포 명단을 뒤집을 만한 결정적 증거가 있나. 오히려 조지호 전 경찰청장이나 방첩사 수사단장의 검찰 진술은 홍 전 차장과 일맥상통한다. 곽 전 사령관 역시 계엄 직후 ‘김병주 유튜브’에 출연해 울먹거리고, 주관적 해석과 실제 전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혼선을 빚었지만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안에 있는 인원을 끄집어내라”는 대통령 지시를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회와 선관위에 군을 동원했고, 특히 선관위 군 출동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고 시인했다. 포고령과 비상입법기구 등도 국헌 문란의 혐의가 짙다.
대통령 탄핵 사유 넘쳐나지만
"탄핵은 여론재판" 오명 벗으려면
헌재도 편향성 시비 최소화해야

이처럼 탄핵 사유가 적지 않음에도 기각설이 사그라지지 않는 건 의아한 대목이다. 가짜뉴스 때문에? 극우세력의 준동이라서? 오히려 탄핵 심판의 관리자인 헌법재판소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특히 1월 말에 나온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 심판이 이례적이었다. 이 위원장은 취임 이틀 만에 탄핵소추당했다. 민주당이 MBC를 자기 편으로 두기 위한 정략이라는 건 삼척동자도다 안다. 민주당은 이 위원장 취임 전부터 탄핵을 예고했다. 그렇다면 헌재는 이를 서둘러 만장일치로 기각(각하)해야 했건만, 5개월 넘게 끌더니 찬반 의견 4대4로 가까스로 기각했다. 진보 재판관 4명이 탄핵에 찬성해서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이들이 문제 삼은 건 ‘방통위 2인 체제’였다. 아니 2인 체제를 이 위원장이 만들었나. 민주당이 추천을 미뤄서 파생된 거 아닌가. ‘2인 체제’가 실제 위법한지도 관련 법 규정을 보면 모호하다. 20여 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에서 보듯, 고위 공직자 탄핵은 중대한 위법성이 확인돼야 한다. ‘방통위 2인 체제’가 무효라면 최근까지 운영됐던 ‘헌재 6인 체제’도 무효라는 얘기 아닌가.

이처럼 이진숙 탄핵소추가 억지였음에도 재판관 8명 중 4명이나 찬성하자 “헌재가 이 정도로 오염됐나”는 시선이 생겨났다. “진보가 저렇게 진영논리로 판결하면, 보수 재판관도 뭉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반작용도 일어났다. 현재 헌재는 우리법연구회 출신 등 진보 성향 5명(문형배·이미선·정계선·정정미·김형두) 대 보수 성향 3명(정형식·김복형·조한창)으로 나뉜다는 게 정설이다. 이를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그대로 적용하면 인용 5대 기각 3으로, 결국 기각된다는 게 기각설의 논거다(탄핵 인용 정족수는 6인 이상).

여기에 또 불을 붙인 건 마은혁 재판관 임명 강행이었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헌재 8인 체제’였다. 전례가 있는데 굳이?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여부를 마무리짓는 게 더 시급한 거 아닌가. 자연히 ‘진보 5명으로 머릿수가 부족하니 서둘러 한 명 더 채우려는 거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진영 간 권력 투쟁의 정점에 헌재가 자리한 꼴이다.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김성룡 기자
헌재를 둘러싸고 이런 잡음이 이어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재판관의 신상을 터는 등 ‘헌재 흔들기’도 과하지만, 헌재 역시 오해의 소지는 없었는지 돌아볼 때다. 이제라도 엄정한 절차에 집중해야 한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돌풍’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탄핵심판은 정치 재판이자 여론 재판이야.” 이번에야말로 헌법 재판의 본령을 회복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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