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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무료급식소 ‘아침애만나’ 르포
대기실이 따로 있는 급식소…이용자들의 존엄성 지켜주려
지난 6일 오전 4시55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인근의 무료 급식소인 '아침애만나' 간판에 환한 불빛이 켜져 있다. 박주원 인턴기자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7도를 기록했던 지난 6일 오전 4시55분. 칼바람이 부는 한파에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무료 급식소 ‘아침애(愛)만나’의 간판은 환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쪽에서 노숙인 2명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봉사자들이 보였다. 주방에서는 다른 봉사자들이 식기 준비와 식재료 손질에 한창이었다.

서울역 노숙인들에게는 오전 5시가 되기 전에 역사 밖으로 나가야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고 한다. 그런 노숙인들을 위해 봉사자들은 매일 오전 4시40분까지 모여 급식소의 문을 열고, 찾아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러면서도 오전 7시까지 3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인다. 이날도 봉사자들은 노숙인들과 틈틈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거운 쌀 포대와 건어물 포대를 주방으로 바삐 옮겼다.

한 봉사자가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박주원 인턴기자

음식을 준비 중인 아침애만나 봉사자. 박상희 인턴기자

식자재를 옮기고 있는 아침애만나 봉사자. 박주원 인턴기자

‘이랜드’에서 운영하는 아침애만나는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5층 규모의 건물이다. 지하 1층은 개인·기업으로부터 후원받은 식재료와 이랜드에서 기부한 옷들을 보관하는 장소다. 1·2층은 식사 공간으로 각각 28석, 46석이 준비돼 있다. 조리실은 1·2층 두 곳에 모두 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건강이 안 좋은 이용자들이 주로 1층에서 식사하기 때문에 ‘저염 식단’ 등 맞춤형 요리를 제공하기 위해 조리실을 층마다 마련했다고 한다.

3층은 ‘카페’라고 불리는 대기 공간이다. 무료 급식소에는 노숙인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등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한다. 이들은 배식 차례가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통상적인 무료 급식소를 방문할 때면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돼 위축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런 시선이 두려워 급식소에 오지 않는 이들도 있다. 반면 아침애만나는 대기 공간이 따로 있기 때문에 식사 차례가 올 때까지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다.

3층의 대기 공간인 '카페'. 박주원 인턴기자

각층에 남녀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 한쪽에는 간단하게 샤워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박상희 인턴기자

오전 5시15분이 되자 급식소 앞에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아워홈’ 등 여러 기업에서 후원하는 식자재를 싣고 온 트럭이었다. 트럭 기사가 분주하게 식자재를 옮기는 동안 빈 쌀 포대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1층에 앉아 있던 한 이용자가 쌀 포대를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처럼 소소한 도움을 주거나 아예 봉사자가 되는 이용자들도 있다고 한다.

시설장인 박모(56)씨가 그런 경우다. 박씨는 서울 지하철 3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노숙을 하다가 지난해 7월 중순쯤 서울역 쪽방촌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이곳에서 우연히 식사를 하게 됐고, 방문이 잦아지다가 아예 봉사를 시작했다. 바닥 페인트칠부터 지하 천장의 누수 공사까지 이곳 아침애만나에는 박씨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이 밖에도 서울역 인근의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교회에서 단체로 오는 봉사자도 많다. 조리를 총괄하는 황선희(62)씨도 처음에는 교회를 통해 이곳에 왔다가 팀장까지 맡게 됐다. 인천에 거주한다는 그는 이날도 오전 2시50분에 일어나 서울역까지 왔다고 했다.

식자재를 싣고 온 트럭. 박주원 인턴기자

직접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배식 봉사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부터 중년 남성까지 다양한 봉사자들이 맡고 있다. 그중에서도 신지유(16)양은 지난달 초부터 배식 봉사를 시작한 가장 어린 봉사자다. 신양은 봉사를 하면서 자신이 오히려 느끼는 바가 많다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한 노숙인이 식사를 한 뒤 5000원을 기부했던 일을 꼽았다. 그는 “꼬깃꼬깃한 5000원짜리 한 장을 꺼내서 모금함에 넣으시는 모습을 보고 봉사자들이 함께 박수를 쳐드리고 사진을 찍었다”고 전했다.

봉사자들이 이용자들에게 대접할 식사를 담고 있다. 박상희 인턴기자

배식 봉사 중인 봉사자들. 박상희 인턴기자

이날의 메뉴는 봄동, 꽃게탕, 감말랭이 멸치볶음, 고구마밥이었다. 이곳은 다른 무료 급식소와 달리 배식 봉사자들이 이용자들에게 직접 식사를 가져다준다. 봉사자들은 이를 ‘존엄한 한 끼’라고 부른다. 이 표현에는 이용자들이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만든 건강한 한 끼를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3층에 별도의 대기 공간이 마련돼 있는 것도 이용자들의 존엄성을 지켜주려는 취지다.

이용자들도 봉사자들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었다. 쪽방촌에 거주하는 심모(56)씨는 “봉사자분들이 친절하고 대기 공간도 따로 있어서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쪽방촌 거주자 이모(55)씨도 “매번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지금은 아침을 챙겨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용산구에서 자활근로자로 일하는 조모(54)씨도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2층 식사 공간부터 3층 대기실까지 길게 늘어선 줄. 박상희 인턴기자

배식 시간인 오전 7시가 다가오자 3층의 대기실(47석)은 거의 만석이 됐다. 봉사자들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졌다. 10분쯤 흐르자 2층 식사 공간부터 3층 대기실까지 이어지는 계단에도 줄을 설 정도로 이용자들이 점점 몰려들었다. 이처럼 바쁜 와중에도 봉사자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맛있게 드셨나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등의 인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오전 7시18분쯤. 1층에서 빨간색 패딩을 입은 한 남성이 식사를 마친 뒤 지갑에서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그는 “이거 모금함에 넣으려고요”라고 말했다.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모금함 쪽으로 이동한 그는 지폐를 조심스레 넣은 뒤 급식소 밖으로 나섰다.

모금함에 1만원을 기부하는 이용자. 박주원 인턴기자

구재영 센터장은 “이분들에게는 물질적인 어려움도 크지만 정신적인 어려움도 클 것”이라며 “주변인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이들을 고립시킨다”고 말했다. 인천 하늘소망교회 목사인 그는 가족이 거주하는 집이 따로 있지만, 8년째 서울 쪽방촌에서 생계가 어려운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쪽방촌 사람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구 센터장은 “무료 급식은 점심에 제공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침애만나에서 대접하는 ‘아침’의 가장 큰 의미는 이분들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이라며 “건강이 안 좋은 분들은 약 하나만 해도 빈속이 아니라 아침 식사 후에 먹으며 속이 더욱 편안할 수 있다. 종일 배를 곯는 분들은 아침 식사와 함께 더욱 든든한 마음으로 하루를 생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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