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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옥상에서 바라본 종묘·북한산 방향(2022년 10월 촬영). 허남설


종묘와 남산을 어떻게 이을까?

조선왕조의 사당인 종묘, 서울 중심에 봉긋 솟은 남산. 이런 질문을 처음 마주한 사람이라면 이 둘을 왜 이어야 하는지, 이어서 무엇에 쓰는지 같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오를 터다. 3㎞나 떨어진 종묘와 남산을 구태여 잇는다는 건 누가 봐도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 질문은 무려 반세기 넘도록 서울 강북 도심의 개발 논의를 지배해왔다. 낙후된 강북의 발전 여부가 종묘와 남산을 잇는 문제에 달렸다는 거다.

서울시장 오세훈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천착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2006~2011년 서울시장 재임 때부터 종묘와 남산을 이으려고 애썼다. 종묘 앞부터 충무로까지 약 1㎞에 걸친 기다란 세운상가군을 철거해 그 자리를 공원으로 만들고, 그 주변부 35만㎡(약 10만평)를 10년 안에 재개발하려고 했다. 이 계획은 시작은 거창했는데 끝이 초라했다. 상가 여덟 채 중 한 채를 부숴 3700㎡(1100평) 남짓한 공원을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오세훈은 포기하지 않았다. 10여년 만에 서울시장으로 돌아와서 다시 세운상가군을 전부 해체하려고 한다. ‘2040 서울 도시기본계획’(2023)엔 ‘종묘-세운상가-퇴계로를 중심으로 입체적 선형공원을 조성’한다는 밑그림이 담겼다. 이른바 ‘녹지축’이다. 이 축은 더 거대한 축의 일부다. 북한산부터 종묘, 세운상가, 남산을 거치고 한강을 건너 관악산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을 설정하겠다는 게 이 계획의 목표다. 전임 시장 박원순이 세운상가군에 설치한 공중보행로를 완공 2년 만에 철거하느니 마느니 하며 일어나는 작금의 논란은 서울시가 녹지축이란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세운상가군 위에서 바라본 종묘와 북한산. 서울역사박물관


녹지 혹은 공원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녹지축은 좀 다른 문제다. ‘연트럴파크’란 별명으로 더 유명한 경의선숲길이 바로 녹지축인데, 이 공원이 생기고 그 일대가 환경적·경제적으로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누구나 안다. 다만, 이 녹지축 조성이 가능했던 건 경의선 지상철로를 지하화하면서 용산부터 홍대까지 기다란 공터가 생겼기 때문이다. 세운상가군의 사정은 철로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누적된 전자, 기계, 공구, 금속, 인쇄 등 산업체가 수천개에 이른다. 이런 곳을 녹지축으로 개벽하는 데는 훨씬 더 정교한 절차가 필요하다.

언론은 종종 이곳에 녹지축을 ‘복원’해야 한다고 표현한다. 원래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축이 있었고, 서울시의 계획은 그저 그것을 회복하는 작업이란 이야기다. 서울시의 공식 책자에도 같은 논리가 등장한다. ‘북한산-비원-종묘-남산-용산-한강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을 세운상가가 단절’(<세운재정비촉진지구 그 과정의 기록>, 2009)시켰다는 것이다. 역사는 이 정도 토건사업의 명분이 될 수도 있겠다. 문제는 녹지축에 역사적 맥락을 부여하는 서사가 허구에 가깝다는 점이다.

원래 세운상가군 자리는 일제강점기까지 민가가 촘촘한 주거지였다. 1945년 일제가 미군 전투기 폭격으로 화재가 서울 전역으로 번지는 사태를 예방하려고 집을 허물어 폭 50m, 길이 1.2㎞ 공지를 만들었고, 해방 후 그 땅에 야심에 찬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가 지금의 세운상가군이다. 애초 존재한 적 없는 녹지축을 어떻게 ‘복원’한단 말일까? 물론, 조선시대 민가는 거의 모두 단층이었을 테니 세운상가군 일대 어디에서든 북쪽 북한산, 남쪽 남산을 모두 조망했을 거다. 고을을 둘러싼 일련의 산, 녹지의 흐름을 느꼈을 수 있다. 그런데, 서울시는 지금 세운상가군 주변을 30~40층에 이르는 고층빌딩군으로 개발하고 싶어 하지 않는가? 그럼 시민의 시야에서 산은 사라질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울시가 2022년 발표한 녹지생태도심 구상 조감도. 세운상가군과 그 주변부를 철거하고 종묘와 남산을 잇는 선형공원과 고층 건물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이 녹지축 담론의 뿌리를 추적하다 보면, 녹지축 차단의 원흉으로 지목받는 세운상가군 설계자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1세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세운상가군을 구상할 때 세운 콘셉트가 바로 인공토지가 될 구조물을 지어 종묘와 남산 사이 녹지축을 잇는 거였다. 지면에 공원을 만드는 게 아니라, 차로로 쓰고 그 위에 건물을 지으면서 옥상과 보행로를 공원처럼 꾸민다는 계획이었다. 김수근 휘하 직원들이 세운상가군 일대 마스터플랜 성격으로 작성해 서울시에 제출한 ‘종묘-남산 간 3가-4가 지구 재개발계획’(1967)에 그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녹지축 개념의 시발점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여기서 찾아야 한다.

전후 복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짓자는 요구, 일제가 방공용으로 만든 거대한 공공토지 자원, 식민 시절 생채기를 치유한다는 역사적 의미 등 다양한 시대적 조건이 종묘와 남산 사이에서 만났다고 볼 수 있다. 실제 구현된 건축물은 녹지축은커녕 지독하게 건조한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김수근 밑에서 일했던 건축가 김석철(1943~2016)은 당시 녹지축 개념 등이 담긴 재개발계획을 서울시가 수령하길 거부하자 김수근이 “무식한 놈들”이라고 내뱉었다고 전한다(<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 2007). 언젠가부터 김수근은 종묘-남산 녹지축을 끊은 장본인으로 취급받는데, 당사자로선 꽤 억울한 평가일 수 있다.

종묘 앞에서 시작하는 세운상가군 일대 전경. 서울역사박물관


정리하면, 녹지축이란 것은 역사적으로 실체가 불분명하다. 기껏해야 패기 넘치는 20~30대 건축가들이 활약했던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정도다. 물론, 녹지축 조성에 역사적 명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미래를 이야기하면 된다. 오세훈과 서울시도 강남에 비해 낡은 강북 도심에 녹지축이 활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발전을 위한 축, 그 자체로 참 매력적인 개념이다. 서울의 경의선숲길, 뉴욕의 하이라인, 도쿄의 미야시타 등 기다란 공원은 확실히 주변을 번성하게 하는 축이 됐다.

하지만, 축에 대한 과한 집착은 일을 그르치고 만다. 세운상가군이 그 생생한 예다. 원래 존재하지 않던 길을 일제가 전쟁이 임박하자 다급하게 냈고, 해방 후 그 길에 종묘-남산을 연결한다는 역사적 의미를 억지로 부여한 결과물이 곧 세운상가군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시는 종묘-남산-용산공원-한강-현충원-관악산을 잇는 녹지축을 구상한다는 것 아닌가. 이 장대한 축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보행로도, 바람길도 아니다. 그냥 설계자가 지도 위에 시원스레 그은 선일 뿐이다. 단언컨대, 누구도 서울에 살면서 이 축을 의식하며 살 일은 없다. 그런 부자연스러운 축을 기필코 몇년 안에 만들겠다며 일을 재촉하는 자는 60여년 전 세운상가군의 실패를 그대로 반복할 공산이 크다.

1966년 종묘-남산 사이 판자촌을 철거하는 모습. 1967년 세운상가군 건설이 시작됐다. 서울역사박물관


세운상가군을 짓기 전 ‘종삼’의 풍경을 본 적 있는가? 종삼은 ‘종로3가’를 줄인 말로, 사창가를 뜻하는 은어로 쓰였다. 세운상가군 자리도 종삼의 범위에 들어갔다. 일제가 남긴 소개공지에 전쟁 후 갈 데 없는 피란민이 몰려들어 집을 지었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성을 파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시는 세운상가군을 짓는 과정에서 도심 성매매를 뿌리 뽑는다는 명분으로 이른바 ‘나비작전’을 펼쳐 무허가 판잣집을 대량 철거했다. 무허가 상인도 많았다. 미군부대 등에서 나온 기계·공구를 떼다 종로·청계천변에서 팔았다. 이들이 단속을 피해 세운상가군 주변 민가로 스며들면서 이 근방이 지금처럼 거대한 제조·유통업 단지로 변했다. 이곳의 현대사는 무질서와 복잡성 그 자체였다.

이후 수많은 행정가·계획가들이 세운상가군 같은 거대한 축을 설정하려고 이곳에 덤벼들었다가 실패했다. 이쯤 되니 이런 생각도 든다. 혹시 ‘종묘-남산’이라는 질서정연한 축은 애당초 성립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지도에 선 긋기 좋아하는 이들의 편집증적 산물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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