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프로젝트 실적 반영 본격화, 높은 부채비율·낮은 수익성이 뇌관
1월 6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서울시 용산구 소재 신동아건설 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건설업계 ‘맏형’ 현대건설이 23년 만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1월 22일 현대건설이 공개한 잠정 연결실적에 따르면 2024년 영업적자가 약 1조2000억원에 달한다. 현대건설에 따르면 이번 적자는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의 해외 프로젝트 비용이 반영되며 나온 결과다.
이는 현대건설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건설 등 1군 건설사보다 부채비율이 높고 신용등급은 낮은 중견 건설사들은 더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초 신동아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부채비율이 높은 다른 중견사들도 위기설의 주인공 명단에 오르내리고 있다.
2022년 시작된 건설 불황의 그림자가 이처럼 길게 늘어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미국발(發) 기준금리 인상 이후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며 주택사업을 대거 수주한 시공사들이 여전히 미분양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사업장에선 미분양 문제없이 예정대로 공사비를 받더라도 적자를 보는 구조다. 지난 3~4년간 급등한 공사 원가가 도급계약에 제대로 반영이 안 된 탓이다. 비교적 안정성이 높은 관급공사나 해외 토목·플랜트도 마찬가지다.
공정이 끝나서야 실적에 손실이 반영되는 건설업 특성상 각 건설사의 적자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며 어두운 업황에 더욱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어렵기만 한 ‘부채 다이어트’
건설업은 수주산업 특성상 제조업 등에 비해 부채비율이 높고 재무 상태를 파악하기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주처로부터 공사비를 받을 때와 실제 자재를 조달하고 공사를 진행하는 사이의 시차가 발생해서다. 건설사들은 부채를 통해 일단 공사 비용을 해결한다. 관급공사나 해외 토목 등 일부 프로젝트에서 착공 전 받는 선수금, 하도급 업체에 지불하기로 한 비용까지 장부상 부채에 포함된다.
따라서 수주한 프로젝트가 많으면 자연스레 부채도 많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건설사가 공사비를 수령하면서 부채 일부가 상각되는 한편, 다른 프로젝트에 착수하며 또다시 부채가 생기는 등의 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부채가 적다고 해서 좋은 회사가 아니다”거나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며 자금을 순환시키는 것도 건설사 능력”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현재로선 건설사들의 부채 규모 자체가 절대적인 기준을 넘어선 상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부채비율 150%가 적정선이라고 했는데 요즘 기업들이 부채가 많다 보니 어느새 200%를 기준으로 보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2024년 종합시공능력평가 10위권 건설사 중 2024년 3분기 기준 부채비율 200%를 넘긴 곳은 GS건설과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로 나타났다. 20위권에 들어가는 금호건설과 코오롱글로벌은 같은 기간 640.49%, 559.56%를 기록하기도 했다. 미분양·저가 수주 손실 여전
이 같은 부채를 상각할 수 있는 규모의 공사비를 때맞춰 충분히 받을 수 있을지도 문제다. 아파트가 미분양이 나면서 건설사가 건물을 지으면서도 제때 공사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방 미분양 여파로 상장폐지된 신세계건설이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신동아건설 사례가 대표적이다. 신동아건설은 미분양 사업장에서 받기로 한 공사비를 지급받지 못하면서 불과 60억원 규모의 어음을 막지 못했다.
최근 미분양 가구수는 줄고 있지만 수도권으로 미분양 여파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악성 미분양인 준공 후 미분양도 쌓이고 있다. 따라서 아파트 현장 미분양에 시달리는 회사들이 더욱 빚을 줄이기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유효 신용등급을 받은 21개 건설사의 공사미수금 잔액은 매년 늘어 2024년 9월 기준 35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3년 말 31조6000억원보다 3조6000억원이 증가한 것이다.
이처럼 수익이 제대로 나지 않으면 부채와 이자비용이 불어나는 등 운전자본 부담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 태영건설이 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했던 2023년에는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해 이자보상배율이 –2.12%였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 대비 이자비용 비율로 건설사의 자금 리스크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돌면 사업 수익으로 이자를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란 뜻이다.
일부 건설사들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불거진 이후 관급공사, 비(非)PF 공사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기도 했다. 따라서 높은 부채비율에도 불구하고 리스크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관급공사도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22~2023년 정부 발주 공사의 유찰률이 68.8%에 달했다. 적정 공사비가 반영되지 않아 경쟁률이 낮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관급공사 자체가 줄고 있는 데다 수익성이 떨어져 각 건설사가 주택사업을 강화했던 것인데 한마디로 ‘사면초가’ 상태다.
해외 발주 공사도 리스크가 큰 것은 마찬가지다. 공기 지연, 저가 수주 등의 문제로 대규모 손실을 내는 사례가 많다. 이번에 비용 반영된 현대엔지니어링 해외 프로젝트는 사우디아라비아 공기업 아람코 발주 사업(자푸라 가스처리 시설 프로젝트)과 인도네시아 원유 정제설비(RDMP Balikpapan)다. 한 시행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은 국내에서만 계약보다 공사비를 올려달라고 목소리를 낼 뿐 중동이나 해외에서는 저가 수주한 뒤 손해를 봐도 공사비 협상을 못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2025년 과연 바닥일까
이 같은 적자 프로젝트가 표면에 노출되기까지는 착공부터 2~3년 정도 시차가 생긴다. 우선 공정이 시작되면 매출에 미리 반영하고 완공 시기가 다 돼서 결산을 통해 손실을 반영하는 건설사의 회계방식 때문이다.
따라서 부동산 경기가 정점이던 2021년에서 2022년 사이 수주한 프로젝트의 손익이 본격 반영되는 올해를 ‘위기의 정점’이자 ‘마지막 위기’로 보는 의견도 있다. 2023년 발주 공사 대부분은 자재와 인건비 상승분이 공사비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3년 이후 신규 수주 물량부터는 원가인상분을 일정 수준 반영한 것으로 파악한다”며 “건설사 수익구조는 2025년 상반기를 저점으로 점진적으로 개선돼 2026년 턴어라운드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2~3년 정도 위기가 지속되리란 전망도 나온다. 부동산 경기가 반등할 조짐이 당장 보이지 않는 데다 정부가 대출규제 강화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연초 기준금리 동결 외에도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둔화시키려는 정부의 스트레스 DSR 제도가 오는 7월 한층 강화된다”며 “정국불안으로 인한 증시 및 환율 변동 위험, 경기 회복 둔화 문제는 여전히 주택 매수심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부동산 경기는 한번 침체하면 활성화하기까지 몇 년간 시간이 걸리므로 올해나 내년부터 당장 건설업황이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PF 현장의 우발채무도 여전히 ‘뇌관’으로 남아 있다. 태영건설의 경우 브리지론 단계의 PF 사업이 시발점이 됐다. 태영건설은 시행사가 차입한 400억원 규모의 브리지론에 대해 자금보충 약정을 했다가 만기를 넘기면서 우발채무 문제가 터지며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됐다. 건설업계에선 이처럼 시공사가 직접 차입하거나 보증하지 않은 PF 대출도 상환이 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부채비율 등이 양호한 대형 건설사도 수주한 사업 면면을 보면 문제가 많다”며 “사업성 좋은 프로젝트만 선별 수주를 한다는 업체도 사정을 알고 보면 사실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이 잘 안돼서 시공권 확보에 소극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