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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운동 주짓수

남성 스파링 파트너의 부상
공격에 공격으로 맞선 결과
가늠하기 어려운 ‘적당한 선’
양민영 작가(위쪽)가 한쪽 팔을 비트는 자세로 상대를 제압하고 있다. 박종혁 제공

여느 날처럼 주짓수 도장에 갔다가 그를 만났다. 혼자서 그를 ‘그때 그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때 그 사람은 멋모르던 초보였던 나와 스파링하다가 다쳤던 남자 동료다. 거의 5년 만의 재회였다. 다른 도장으로 옮겨 갔다던 그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5년 전 그때 그 사람은 나보다 수련 기간이 길고 무엇보다 공격적이기로 유명했다. 아무리 그래도 첫 스파링이니까 조금은 봐줄 거라고 기대했다. 시작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자마자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항복을 가능한 한 많이, 양껏 받아낼 기세로 밀어붙였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항복의 탭을 치겠다는 위기감과 함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뜻밖의 성향이 발현됐다. 그건 과도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쥐를 궁지에서 궁지로 끝 간 데 없이 몰았을 때 나타나는 공격성이었다. 이대로 질 수 없다는 생각뿐이던 나는 유일하게 알던 레그록(하체 관절을 다양하게 공격) 기술로 그의 발목 관절을 공격했다. 수준 높은 방어술로 공격을 막는 게 주짓수인데 무자비한 공격을 공격으로 들이받은 셈이다.

실력 늘 때마다 공격성도 확장

그리고 요즘 들어서 다시 공격성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 초급자를 벗어나 중급자에 가까워지면서 생긴 중대한 고민이 공격성이다. 다양한 공격 기술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서 나도 모르게 행동이 과해진 거다.

안 하던 짓을 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다치는 건 물론이고 동료들도 그때 그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다치는 일이 왕왕 생긴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청소년기에 접어든 나의 주짓수 자아가 진로를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처럼 외부 세계와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공격성을 억누르고 싶지 않다. 솔직하게 말해서 공격성을 드러내는 일은 즐겁다. 삶이 권태롭다면 누군가를 공격해 보라, 순수한 기쁨이 거기 있을지니. 이는 내가 특별히 공격적이어서가 아니다. 공격성은 억눌러야 할 인간 본성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러기에 인간은 자연계의 모든 종 가운데 가장 공격적이다. 동물이 먹이를 얻는 것 외의 이유로 상대를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다. 먹잇감과 포식자의 관계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공격적이지 않다. 우리는 공격적인 사람을 두고 ‘짐승 같다’고 하지만 공격성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특성이다.

따라서 공격성과 무관해 보이는 지적인 탐구, 언어적인 소통, 교육, 심지어 사랑에도 그 기저에 공격성이 존재한다. 인간은 동물에게 없는 공격성을 등에 업고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으며 자존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나부터도 주짓수가 조금이라도 확장되는 걸 느낄 때마다 공격성이 함께였다. 더 밀어붙여도 되는지 망설였던 순간, 힘을 줘서 버틸지 포기하고 항복할지 갈등하던 순간, 붙잡아야 할지 놓아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철모르고 이기적인 아이 같은 공격성이 등을 밀어주지 않았다면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말았을 것이다.

모두가 선을 지켜야 한다지만 항상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 ‘적당하다’는 건 무엇이며 그 개념은 누가 정하는가? 아무런 시행착오나 충돌 없이 적당한 선을 가늠하는 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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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성, 조바심, 욕심

더욱이 공격성은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는데도 대체로 부정적으로만 인식되며 그것을 다루는 언어조차 너무 빈약하다. 쉽게 말하면 살인자도 공격적이고 최고의 스트라이커도 공격적이다. 공격성이 아우르는 인간의 행위를 제대로 이해하기 전까지 누군가를 공격적이라고 평했을 때 따라붙는 낙인 효과를 피하기란 어렵다. 특히 여성은 공격적이라는 평가를 두려워한다. 나도 평생 다른 여성들처럼 내가 너무 공격적이지 않은지 의식하며 스스로를 검열했다. 지금도 내재된 공격성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거나 다루지 못한다. 어떤 자질이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에 싹이 잘려나갔으니 당연한 결과다.

여성의 공격성을 거세하는 작업은 성장기부터 공공연하게 진행된다. 소년의 인기는 그가 얼마나 거칠게 노는가에 따라 결정되지만 자라서 양육자가 될 소녀에게 공격성은 금기사항이다. 공격성이 착하고 순종적이고 돌봄을 좋아하는 바람직한 소녀의 상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자란 소녀가 공격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느냐면 천만에. 그것은 절대 죽지 않는다. 물 밑에서 조용하게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서 여성에게 자기방어 기술을 가르쳐보면 그들 대부분이 방어보다 공격을 훨씬 좋아한다. 격투기를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이들도 아니, 오히려 비슷한 경험이 없을수록 본능적으로 방어보다 공격에 흥미를 느낀다.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방어 기술을 알려줄 땐 반쯤 감겨 있던 눈이 상대의 팔을 꺾는 암바를 알려주면 반짝이기 시작한다.

나도 그때 그 사람을 다치게 하고서야 알았다. 나에게도 반격할 능력이 있다는 걸. 그때 그 사람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근래 있었던 사건에 옛날 사건까지 소급돼 놀림이나 실컷 당했지만 그 일은 여전히 결정적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나는 평생을 주저하며 살았다. 고작 ‘착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쳤던가. 내 몫을 달라고 요구하지 못하고 모욕당하면서도 웃었던 순간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고 매달리지 못했고 악착같이 파고들지 못했다. 그런 행위는 공격적이고 여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한 발짝쯤 떨어져서 바라보다가 포기하고는 품위를 지켰다고 자위했다.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완벽을 쫓던 나는 낡은 틀을 부수기까지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뒤늦게 본연의 공격성을 받아들였을 때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났다. 재빨리 그간의 손해를 만회하고 싶었다. 욕심은 그 어떤 놀림이나 낙인 효과에도 굴하지 않고 점점 커졌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나는 내가 진정한 의미에서 공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 중에서 공격적인 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어떤 여성이 어느 정도의 공격성을 숨기고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내가 지닌 공격성의 상당 부분도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으며 드러난 부분조차 아직 완전하게 발휘된 적이 없다.

양민영 작가

사회적기업 운동친구의 대표이며 ‘운동하는 여자’를 썼다. 페미니즘과 여성의 운동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고, 못 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즐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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