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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과각성
엄마, 제품 하자 댓글로 명예훼손
아들, 친구들 따돌림 ‘과도한’ 의심
층간소음 문제로는 윗집과 갈등
화·분노→불안→각성의 ‘악순환’
게티이미지뱅크

영숙(가명)씨는 40대 여성으로 고등학생인 아들(철민·가명),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영숙씨 가족은 최근 층간소음 문제로 위층과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천장에서 뛰는 소리가 들리면 영숙씨 가족들은 빗자루로 천장을 치기도 했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윗집 초인종을 누르고 언쟁을 벌였습니다. 이제는 아파트 경비실에서도 잘 알 정도로, 두 가족 중 한쪽이 이사를 가야 전쟁이 끝날 것 같습니다.

영숙씨는 어느 날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한 전자제품에 흠집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쇼핑몰이 다른 사람에게 판매했던 리퍼 상품을 새 제품으로 속여 판매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는 쇼핑몰에 반품을 요구하고 “이 사이트에서 구입하지 마세요. 하자 있는 제품을 팔아요. 최악이에요”라는 댓글을 여러 차례 달았습니다. 쇼핑몰에서 명예훼손으로 영숙씨를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편은 가상화폐 투자 실패로…

아들 철민이는 친구들이 자신을 괴롭혀 더 이상 학교에 못 다닐 것 같다고 영숙씨에게 얘기했습니다. 영숙씨는 너무 화가 나서 아들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영숙씨는 친구들을 보자마자 “너희들 가만 안 두겠어, 우리 아들을 괴롭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놀란 학생들은 ‘괴롭힌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철민이는 “애들이 나에 대해서 뒷담화하고 따돌려요”라고 했지만, 친구들은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영숙씨가 확인한 내용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이 지나가는 철민이를 쳐다보았다는 것까지입니다. 철민이는 친구들이 자신이 이야기하려고 하면 피하고 자기들끼리만 모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이야기를 멈추고 자신을 쳐다보는 친구들의 행동을 자신을 험담하는 것이라고 의심하게 됐습니다.

철민이는 다시 학교에 다녔습니다. 영숙씨는 친구들이 또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자신에게 알리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영숙씨에게 지적당한 이후로 철민이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멀리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습니다. 그 일 이후로 친했던 사이가 되레 멀어졌습니다. 철민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됐고 사람들이 조금만 소리를 질러도 잘 놀라는 사람이 됐습니다.

영숙씨는 아들이 학교를 잘 다니는지 신경 쓰고, 층간소음 문제로 위층과 다투고, 인터넷 쇼핑몰과 명예훼손 문제로 다툼을 벌이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습니다.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입이 바짝 말라갔습니다. 매사에 우울하고 의욕이 없어졌습니다. 남편이 밤늦게 들어와 집안 꼴이 말이 아니라며 한마디 하자 영숙씨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이 한 것은 뭔데 그래요? 내 편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당시 남편도 투자한 가상화폐 가격이 떨어져 무척 화가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부부는 각방을 쓰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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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줄이니 마음 편해져

영숙씨는 기분이 더욱 우울해지고 화를 참을 수 없게 되어 인근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영숙씨는 검사 결과 교감신경이 항진돼 있고 각성 상태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숨이 차고 화가 올라왔습니다. 스트레스 가운데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요구를 안 들어주면 자신을 만만하게 보는 것 같고 무시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강하게 표현했고 그렇게 하면 자기 말을 더 잘 들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영숙씨는 친구가 없어지고 혼자가 되었습니다. 혼자가 되는 것은 더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더 화가 났습니다.

영숙씨는 불안을 동반한 우울증(Depression with anxious distress)으로 진단되었습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이 발생하면 화를 내고 분노를 표현하는 것으로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화와 분노는 다른 불안을 만들어냈고, 각성 상태를 높이게 되었습니다. ‘과각성’(hypervigilance)이란 시각·청각 등 감각 정보에 대한 예민성이 높아진 상태로 불안·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위험이 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경계 상태에 있게 됩니다. 과각성 상태에서는 자극에 대해 반응이 빠르고 강하게 나오며 주변 환경을 끊임없이 살피는 습관을 보입니다.

아들도 엄마와 마찬가지로 과각성 상태였습니다. 각성이 높은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에 지나치게 민감해집니다. 자신을 공격하거나 괴롭히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하기 쉽습니다. 조금씩 친구들에게 다가가 어울리면 점차 각성이 줄어들고 대인관계의 긴장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영숙씨가 아들 친구들을 만나 개입하고 화를 낸 것은 아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박탈한 측면이 있습니다. 철민이가 친구들과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성장해야 하는데 이제 친구들이 철민이에게 말을 걸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영숙씨는 치료를 받으면서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긴장하고 각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행동이 자신을 공격하는 행동이라고 해석하고, 그런 태도가 주위 사람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만든 것입니다. 영숙씨 아들도 지금까지는 자기도 모르게 엄마의 행동을 배워 친구들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해석해왔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자 다른 사람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원래 성격이라고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각성이 줄어들면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이전보다 편안하게 수용하게 된 것입니다.

영숙씨와 가족은 이전보다 화기애애해졌습니다. 위층에서 쿵쿵 소리가 들려도 여유가 생기고 잠을 잘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철민이도 조금씩 친구들과 어울리고 가까워졌습니다. 영숙씨에게 가장 좋은 것은 다른 사람과의 갈등 때문에 쓸데없이 소모되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고 아침마다 조깅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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