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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상 대통령의 형사상 불소추특권에는 임기 전 기소된 사건에 대한 재판 중지까지 포함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픽=김영희 디자이너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구속돼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례가 있다는 사실은 헌정사에 어두운 단면이다.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사자다. 이들은 재판을 받을 당시 ‘현직’이 아니었다. 만일 현직 대통령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국가원수로서 직무수행이 곤란해지는 것은 물론 국가적인 망신임이 분명하다. 다행히도 헌법 제84조는 이러한 암울한 사태를 방지하고 있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이른바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헌법상 대통령 불소추 특권에 재임 전 기소된 재판을 중지하는 것까지 포함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김성룡 기자
대통령에게 형사상 특권을 부여한 취지는 무엇일까.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신분에 따라 일반 국민과는 달리 대통령 개인에게 특권을 부여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의 원수로서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는 대통령이라는 특수한 직책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고, 그 권위를 확보하여 국가의 체면과 권위를 유지하여야 할 실제상의 필요” 때문이라고 밝혔다.

헌법에 형사상 특권을 둔 대상은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과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뿐이다. 후자는 역대 국회에서 자주 등장하여 국민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은 다소 낯설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을 상상하지 않아서일까. 헌법 교과서에도 아주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낯선 헌법 조문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 재판, 극심한 혼란 야기 논란의 불씨를 댕긴 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한 전 위원장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 부지사가 1심에서 쌍방울 그룹 대북 송금에 공모하고 억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받자 자기 범죄로 재판받던 형사 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경우에도 형사 재판이 중단되지 않는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렸다. 한 전 위원장이 직격한 대상자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임은 자명하다.

검찰은 지난 12일 불법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하여 이 대표를 제3자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로써 이 대표가 받아야 하는 재판은 4건으로 늘어났다. 한 전 위원장이 재판이 진행된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이 대표가 받는 재판 중 집행유예 이상만 확정되면 대통령직을 상실하기 때문에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국가 권위, 직무수행 보장에 목적
대통령 임기 전 기소된 것도 포함
신속한 재판이 논란 없앨 수 있어
대통령이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 것은 명확하지만, ‘재직 전’에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는지 헌법은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대통령 직무를 하면서 재판에 출석해야 하나, 아니면 대통령 임기 중에는 재판이 중단되어야 하나. 학자들 견해는 갈린다. 헌법 조문을 문리적으로 해석하면 불소추 특권은 재직 중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에서 ‘소추’란 ‘기소’의 의미이지 이미 기소된 사건에 대한 재판의 진행을 포함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직 전에 기소된 재판은 중단 없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불소추 특권의 취지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이라는 대통령의 지위를 고려하여 대통령의 임기 중 원활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고자 하는 점에서, 나아가 국가의 권위를 유지하고 국정 혼란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재직 전 기소된 재판도 일시적으로 임기 중 중단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 즉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소추’의 범위에 재판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현직 대통령에 대해 재판을 강행하게 되면 집권당은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밀어붙일 것이고, 찬반 지지자들 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져 나라 자체가 극심한 혼란에 빠질 우려가 농후하다. 물론 대통령 임기 후에는 원칙대로 재판을 받고, 만일 유죄로 확정되면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제정 때 형사 재판받는 후보자 예상 못 해 헌법 조문 해석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몹시 불행한 일이다. 1948년 헌법 제정 당시 형사 재판을 받는 후보자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그만큼 현 상황이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장차 2027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가 또다시 갈등의 상황이 초래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이 대표의 재판이 대선 전에 확정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법부가 제 역할을 충실히 다해야 한다. 이 대표의 재판을 담당한 법관들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른 법관 독립 원칙에 따라 최대한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진행하여 진실을 밝히게 되면 한 전 위원장이 제기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재판 지연 해결이었다.

헌법 제84조 해석 논란과 별개로 최근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이화영 전 부지사 실형 선고 이후 “결과도 오판이었지만 절차도 엉망”(김승원 의원), “심판도 선출”(박찬대 원내대표) 해야 한다며 법원 판결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매우 잘못된 처신이다. 하급심 판결에 이의가 있으면 상소심에서 판단 받고, 재판이 확정되면 따라야 하는 것이 우리 헌법 체계다. 국회의원이 헌법 훼손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의 존재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한규 변호사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칼럼에 대한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다른 의견을 추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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