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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반대 목소리에 “알바” 공격하던 주민들
군 예산 1000억 투입 등 건설안 내용에 싸늘
힘 얻은 반대 시민들은, 주민감사청구 등 추진
지난 4일 강원 양양군 남대천 인근에서 한 양양 주민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에 대한 주민감사청구 청구인 모집에 동참하기 위해 서명을 하고 있다. 김기범 기자


“예전엔 반대세력 알바냐고, 얼마 받고 나왔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지금은 대놓고 반대한다고 말은 못해도 양양군에 속았었다는 반응들이 많이 나옵니다. 케이블카가 주민들을 위한 게 아니라는걸 알게된 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거죠.”

강원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큰 장날로 꼽히는 지난 4일 양양 장날, 강원 양양군 남대천 인근에선 장을 보던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현수막과 피켓의 내용을 유심히 읽어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양양군 예산 1200억원 들여 케이블카 설치하면 주민만 피해’ 등 피켓 내용을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었다.

시민들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케이블카 반대 설악권 주민대책위’ 등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 활동을 벌여온 양양 주민들이 양양군의 케이블카 설치 사업에 대해 강원도에 주민감사를 청구하기 위한 청구인 모집 캠페인이었다. 적자가 예상됨에도 국비를 확보하지 않고 비용 대부분을 양양군이 부담하기로 한 과정의 위법성과 지방재정투자심사 과정에서 사업의 적자를 감추고 흑자가 날 것으로 예측했다는 내용 등이 감사청구의 주요 내용이다.

주민들이 양양장날 케이블카 반대를 위한 선전전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부터다. 인구 2만27600명가량으로, 한 다리 건너면 대부분 아는 사이인 양양군에서 군청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케이블카를 대놓고 반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주민감사 청구인으로 나선 김경희씨는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케이블카 설치 반대 유인물을 배포하려고 하면, 케이블카 설치에 찬성하는 이들이 ‘니들이 뭔데, 이런 걸 하냐. 이미 하기로 결정된 건데 왜 재를 끼얹냐’면서 폭언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다보면 이내 말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최근 몇달 사이 양양군 주민들의 케이블카 관련 반응은 사뭇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는 이들의 유인물을 받아보는 것은 물론이고, 귀를 기울이면서 어떤 내용인지 들어보려는 이들이 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4일 거리 선전전 도중에는 주민감사청구 청구인 모집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길을 가던, 또는 장날을 맞아 남대천 인근에 왔던 주민들이 청구인 모집에 동참하는 사례도 다수 나왔다. 기존에 청구인 모집에 동참했던 이들은 대부분 개별적인 만남을 통해 모집됐는데 이날 남대천 부근에서 3명의 시민들이 청구인 모집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흔쾌히 청구인이 되겠다고 나섰다. 길을 가던 시민들이 청구인이 되겠다고 선뜻 나선 것은 주민감사청구를 위한 청구인 모집을 시작한 지 2개월여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15년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조건부 허가한 뒤부터 반대운동을 이어온 김씨는 “이전에는 지인들이나 건너 건너 아는 이들이 청구인에 모집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거리에서 청구인 모집에 동참한 이들이 나온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날 양양 주민들은 물론 인근 속초, 고성 등 지역에서 온 시민들 중에는 케이블카 반대운동에 나선 이들을 향해 옳은 일을 한다며 응원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주민들이 붙여놓은 반대 현수막을 보고는 “그래도 개발을 해야한다”고 말하면서 케이블카에 찬성하는 의견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과거처럼 험악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거나 말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없었다.

많은 이들이 오고가는 장날 케이블카 반대 선전전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분위기가 달라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올해초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 협의에서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허가하면서부터였다. 강원도와 양양군이 ‘드디어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확정됐다’면서 대대적으로 축하하고 나서면서 비로소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주민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실제 ‘그동안 강원도와 양양군에 속았다’고 말하는 주민들은 특히 1172억원에 달하는 케이블카 설치 예산 가운데 1000억원가량을 양양군비로 충당해야 한다는 점과 케이블카가 설악산 주봉 대청봉이 아닌 끝청봉으로 간다는 것을 문제로 보고 있다. 한해 예산이 4000억원가량에 불과한 양양군이 케이블카 사업 예산으로 재난 재해 대응 등 갑작스러운 예산 수요에 대비하는 재정 안정화 기금을 사용하는 것에도 반발이 커지고 있다. 양양군 주민 김동일씨는 “과거에 양양군청과 함께 케이블카 설치 찬성운동을 열심히 벌였던 이들도 최근에는 진상을 알고는 후회한다면서 지금은 반대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일 강원 양양군 남대천 인근에서 한 양양 주민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에 대한 주민감사청구 청구인 모집에 동참하기 위해 서명을 하고 있다. 김기범 기자


최근 양양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고는 해도 사실 지역에서 주민감사청구가 쉬운 일은 아니다. 주민감사청구를 위해서는 청구인단을 150명 모집해야 하는데 “양양군에서 150명을 모으는 것은 서울에서 150만명 모으는 것만큼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주민감사청구인이 되려면 단순히 서명을 하고, 주민번호, 주소만 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련 서류들을 스스로 작성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청구인 모집에 나선 주민들이 환경단체 등의 도움 없이 청구인 모집을 해야하는 것도 어려운 부분이다.

난관 속에서도 주민들은 청구인 모집 기한인 다음달 8일까지 한달가량을 남긴 현재 150명 중 130명가량의 모집을 완료한 상태다. 기한까지 150명 모집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청구인 적격 심사에서 일부가 탈락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150명이 아닌 200명 이상을 목표로 청구인을 모집할 계획이다.

주민들은 청구인단 모집에 성공한 뒤 실제 청구를 했을 때 강원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내놓는 경우 즉각 주민소송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양양군과 함께 오색케이블카를 추진해온 강원도가 주민들의 감사청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법적인 대응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주민감사청구 이후 소송에 나설 경우 용인경전철 주민소송처럼 지자체장에게 책임을 묻는 판결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2월 서울고법은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이 낸 손해배상 청구 주민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바 있다. 현 용인시장이 사업 당시 용인시장·한국교통연구원·담당 연구원 등에게 총 214억원을 지급하도록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용인경전철 승소를 이끈 변호인단에 참여했으며, 이번에 양양 주민들의 케이블카 주민감사청구·소송 자문을 맡은 최재홍 변호사는 “지자체가 벌이는 사업이 경제성이 없었다는 주민 주장에 대해 법원은 소극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이미 권금성 케이블카가 있고, 추가로 6개의 케이블카가 더 추진되는 강원도에서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떨어지는 양양군의 오색케이블카 추진은 법원 판단을 받아봐야할 충분한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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