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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선웅의 인간과 오가노이드
어셈블로이드

대뇌·중뇌·소뇌 각각의 오가노이드
이어붙여 진짜 뇌 같은 복합체로
정상+환자 세포 오가노이드에선
질병 일으키는 세포집단 규명
초록색 방광상피층, 빨간색 기질층, 하늘색 근육층으로 인간 방광 어셈블로이드가 잘 형성돼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도 커지고 내부 구조도 성인의 방광처럼 정교해진다. 신근유 교수(서울대) 연구팀 제공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체외에서 3차원으로 배양해 특정 장기와 비슷한 구조와 기능을 가진, 구조화된 세포 덩어리이다. 흥미롭고 유용한 모델이긴 하지만 약점도 많다. 과학자들은 자기 연구의 약점을 대놓고 드러내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남의 약점을 찾아내는 것에는 진심이기 때문에 거짓과 과장에 상대적으로 덜 오염되고, 이로 인해 계속 과학적 오류를 찾아가고 한계를 극복하며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노출되는 약점은 절대적 한계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목표에 가깝다. 연구목표는 기밀인 경우도 있어서 일부러 약점 또는 목표를 드러내 불필요한 경쟁을 하려고 하지 않는 때도 있지만, 어떤 목표는 너무 공공연해서 문제 해결을 위해 공개적으로 경쟁하고 협력하는 사례도 많다.

어셈블로이드로 루게릭병 연구

오가노이드 분야에도 이렇게 잘 알려진 약점이 있다. 오가노이드는 우리 몸의 장기와 비슷하므로 한국어로 ‘장기유사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 이름에 이미 오가노이드 기술의 약점과 목표가 모두 담겨 있다. 오가노이드는 장기와 유사할 뿐 똑같지 않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비슷하기만 해도 쓸데가 많긴 하지만 더 똑같아야만 쓰임새가 많아진다. 그러므로 많은 연구자들은 오가노이드를 실제 장기와 더 비슷하게 만드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보고 있다. 이에 도달하기 위해서 연구자들은 저마다의 아이디어로 해결책을 내려고 하고 있다. 오가노이드가 실제 장기와 어디가 다르고 왜 다른가를 분석한 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은 접근법이다.

이렇게 탄생한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어셈블로이드 기술이다. 어셈블(assemble), 즉 합친다는 영어 단어에 오가노이드 단어 뒷부분 ‘오이드’(oid)를 결합해, ‘합쳐서 만든 오가노이드’라는 정도의 의미다. 똑같은 오가노이드를 서로 합치게 되면 크기는 커져도 장기의 복잡성이 더 잘 표현되는 것은 아닐 테니 어셈블로이드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서로 다른 종류의 오가노이드를 붙여서 질적으로 다른 장기유사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 몸의 장기 발생 과정을 들여다보면, 초기 배아세포들은 외배엽·중배엽·내배엽의 3개의 팀으로 나뉜다. 이 세개의 배엽층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장기를 구성하는 다양한 세포를 만들고 특이적인 모양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모든 장기는 다양한 배엽층에서 유래한 세포들이 섞여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뇌는 대부분 외배엽에서 유래하지만 면역 기능을 담당하는 미세아교세포와 뇌혈관을 구성하는 혈관세포들은 중배엽에서 온다. 하지만 뇌 오가노이드는 외배엽으로 분화를 유도하는 인자를 줄기세포에 투여하는 것으로 시작한 뒤 신경줄기세포로 유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면 중배엽에서 유래한 혈관세포는 생겨나지 않는다. 외배엽에서 유도해 모양은 똑같지만 중배엽과 내배엽에서 유래한 세포집단은 없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결함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셈블로이드를 만든다. 뇌 오가노이드와 혈관 오가노이드를 각각 만든 뒤 두 오가노이드를 붙여서 혈관이 들어 있는 뇌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식이다. 같은 방식으로 혈관이 있는 간 오가노이드와 신장 오가노이드를 만든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신경계 오가노이드의 경우엔 어셈블로이드 방식이 특히 유용하다. 뇌는 대뇌·중뇌·소뇌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 부위들을 각각 만든 뒤 연결해서 진짜 뇌처럼 복잡한 신경망을 가진 복합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신경계와 몸이 연결돼 있는 방식을 모사할 수도 있다. 어셈블로이드 분야의 선두 주자인 세르지우 파슈카 교수 연구팀(미국 스탠퍼드대)은 2020년 뇌 오가노이드를 척수 오가노이드와 연결하고, 척수 오가노이드를 근육 오가노이드와 연결했다. 뇌-척수-근육이 모두 연결돼 있는 인체 근육신경계와 비슷한 어셈블로이드를 만든 것이다. 이 어셈블로이드에서 뇌 오가노이드를 자극하면 그 신경신호가 근육 오가노이드의 수축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러한 모델을 이용하면 신경계의 문제로 운동능력이 나빠지는 루게릭병 같은 질환을 연구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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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 장난감처럼 창의력 발휘해서

오가노이드를 여러개 붙이는 방법으로만 어셈블로이드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줄기세포로부터 서로 다른 발생학적 유래를 가진 세포들을 2차원으로 만들어내고 이들을 오가노이드에 합치는 방법으로 어셈블로이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2020년 신근유 교수팀(당시 포스텍 생명과학과)은 이러한 방식으로 어셈블로이드를 만드는 신기원을 이뤘다. 방광 오가노이드를 섬유모세포·근육세포 등 기원이 다른 세포들로 싸서 인간의 방광처럼 상피층·기질층·근육층이 잘 구분된 어셈블로이드를 만들어 배양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어셈블로이드 기술로 업그레이드된 방광 오가노이드는 훨씬 더 정교하게 방광의 기능을 모사하고, 이를 이용해서 방광암을 깊이 연구할 수 있는 모델로 사용할 수 있었다.

어셈블로이드 기술은 오가노이드를 진짜 장기와 더 비슷하게 만드는 데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짜 장기를 뛰어넘는 흥미로운 연구 모델로 사용할 수 있다. 정상 오가노이드에 환자 유래 오가노이드 또는 세포를 넣어주는 방식으로 모자이크(서로 다른 유전적 조성을 가진 세포가 섞인 상태)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세포집단이 환자에서 유래돼 오가노이드 전체가 질병 상태가 되는지 알아낼 수 있다. 질병이 일어나는 과정에 어떤 세포집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에서 유래한 오가노이드를 합쳐서 키메라 오가노이드를 만들 수도 있다. 키메라란 서로 다른 동물의 조직·세포를 섞는 경우를 의미한다. 키메라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다른 동물에서 유래한 세포가 생물학적으로 동등한 기능을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진화적 연구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어셈블로이드 기술은 마치 어릴 적 우리가 가지고 놀면서 창의력을 뽐내던 블록 장난감 같다. 어찌 보면 우리 몸의 구성에 블록 장난감 같은 구석이 있기도 한 것 같다.

선웅│고려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어릴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혼자 집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발생학에 관심이 생겨 신경발생학 분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 ‘첨단기술의 과학’, ‘생물학 명강 3’ 등의 책을 썼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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