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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의료공백’ 해법 진단

“집단행동해도 응급실 등 필수분야 차질 없게 했어야”
“정부 명확한 근거 제시했다면 이 정도 반발 안했을것”
“정부-의사 협의로만 정하지말고 시민·환자도 참여해야”
의정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지난 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 전공의 전용공간에 신입 전공의 모집 안내문이 붙어있다. 최근 의정 갈등 속에서 임용을 거부한 인턴들은 이날 상반기 수련을 위한 임용 등록이 끝난다. 연합뉴스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집단 사직서 제출로 시작된 의료 공백 사태가 14일로 56일째를 맞았지만 출구를 못 찾고 있다. 의료계는 의대생 정원 증원 ‘전면 중단’을, 정부는 ‘연 2천명’ 증원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환자 건강 피해 우려만 커지고 있다. 한겨레는 의사 출신으로 지방·중앙정부에서 보건의료 정책을 다룬 윤태호 부산대 의대 교수와 박향 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나백주 을지대 의대 교수 등을 지난 3∼4일 만나 해법을 물었다. 윤태호 교수와 박향 전 국장은 각각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을 지내며 의료 정책 수립에 참여했다. 나 교수는 서울시립서북병원 원장, 서울시 시민건강국장 등을 지냈다.

“응급실까지 비운 의료계 되돌아봐야”

전공의들은 2월19일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하면서 2020년 의료파업 때와 달리 환자 생명과 직결된 응급실·중환자실마저 비웠다.

윤태호 교수는 이를 큰 문제라고 봤다. 그는 “남아 있어야 할 영역마저 포기해 의사가 국민 건강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여긴다고 국민은 생각할 수 있다”며 “2020년과 올해 집단행동으로 (의사만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도 상처를 받았다는 점을 정부와 의료계 모두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백주 교수도 “의사들이 자기주장을 해야 할 상황에서도 ‘누군가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소수”라며 “집단행동을 하더라도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처럼 필수 분야는 차질이 없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 사람 모두 의료계 주류 주장과 달리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윤 교수는 “필수의료 수가 인상이 먼저라는 주장도 타당한 부분이 있지만, 수가와 의대 증원을 같이 해야 풀리는 영역이 크게 존재한다며 “설사 이번 정부에서 못 풀더라도 다음번에 또 나올 정책”이라고 말했다. 나 교수 역시 “앞으로 의료 제도나 간호사 역할 변화에 따라 의사 수 부족 여부를 다시 따져볼 수도 있지만, 지금 의료체계에선 지역과 필수의료에 의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2천명’ 못박아 협상 여지 좁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함에도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에 아쉬움도 숨기지 않았다.

대통령실이 직접 “2천명 증원은 최소 규모”라고 못박은 점이 가장 아쉽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이번처럼 국정 최고 책임자가 구체적 숫자를 얘기하면 복지부 등에선 대통령만 바라보는 경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증원 규모에) 여지를 뒀다면 실무진이 전공의나 교수 등 의료계와 만나 조율하는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증원 절차는) 대학에 어떻게 교육할지 계획서를 제출하게 하고, 어느 정도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지 면밀하게 파악하는 등 정교했어야 했다”며 “교육 역량이나 수용성을 고려해 정해진 숫자가 아니어서 교육 현장에선 일방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 반발이 뻔한 정책을 추진한 만큼, 더 많이 준비했어야 한다고도 했다. 박 전 국장은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복지부가 5년마다 보건의료발전계획을 통해 지역별 의료 자원관리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역대 정부 모두 짜지 않았다”며 “어디에 얼마큼 의사가 필요하다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했다면 의사들이 이 정도로 반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2023년 1월 보건의료발전계획을 하반기에 세우겠다고 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2천명 증원분 배분도 대학별 교육 여건 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졌다고 했다. 박 전 국장은 “(울산대 등) 서울 대형병원을 협력병원으로 둔 곳에 많은 정원이 배정됐다”며 “이들이 졸업 뒤 지역에 남을 여건이 안 돼 수도권 병원들의 인력 파이프라인을 만든 셈이다.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의료개혁이라고 국민들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윤태호 부산대 의대 교수(왼쪽부터)와 박향 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나백주 을지대 의대 교수.

“당장은 숫자 풀고 의료진은 복귀”

현 상황에서 정부와 의료계 모두 서로를 이기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자는 제안이 나왔다. 환자 피해가 커질수록 정부와 의료계 모두 국민과 환자를 잃은 패자라고 봤다.

박 전 국장은 “정부의 권위는 싸워 이겨야 생기는 게 아니라, 충분한 근거로 국민을 설득할 때 나온다”며 “정부와 의료계 모두 이기고 지느냐를 따질 게 아니라 의료 정책을 두고 보완할 지점은 없는지 같이 이야기할 때”라고 말했다. 윤태호 교수는 아예 정부가 증원 수 조정에 나서고, 이를 의료계가 받아들여 전공의·학생은 우선 복귀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소규모 의대(정원 50명 이하)는 80명까지, 75명 이상인 학교는 10∼20%를 늘려 775∼1050명 수준을 정부가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동시에 의료계를 향해 “정부가 ‘증원 규모에 유연하게 접근하겠다’고 약속하면, 응급실·중환자실 전공의는 당장 돌아와야 한다”며 “그래야 의사들 주장이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다만, 나 교수는 의대 정원 확대 방점을 ‘얼마나’가 아닌 ‘어떻게’에 찍었다. 그는 “(정원을 늘리되) 어떻게 지역에서 공공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지 교육 모형을 세우고, 이런 교육·수련이 가능하도록 예산 투입 계획 등을 구체화하면서 증원 규모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당사자 포함한 의-정 갈등 해결”

의대 정원 확대 발표로 불거진 장기간의 의료 공백은 의료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모두에게 알려줬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의료계·환자 등과 증원을 논의했다지만, 대부분 갑작스러운 발표로 인식했다. 그만큼 정원 확대 논의가 중요한 이해관계자가 빠진 채 이뤄진 셈이다.

박 전 국장은 “몸이 불편하면 잔병에도 대형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전공의 이탈로 대형병원이 진료를 줄이니까 어렵게 됐다. 의료 정책이 의사와 정부 문제라고 생각했던 국민도 의대 증원이 나의 문제라는 걸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 교수도 국민 생명에 직결되는 의대 증원 등의 정책을 정부와 의사 간 협의로만 정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계를 넘어 시민·환자까지 협의에 참여하는 의사결정 방식이 필요하다”며 “적정한 인력 규모, 교육, 의료기관 배치와 노동 조건까지 다루는 보건의료 인력 전담기구를 구성해 상시적인 논의가 이뤄지게끔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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