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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어디 갔어, 버나뎃>
영화 <어디 갔어, 버나뎃>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어디 갔어, 버나뎃?” 영화는 질문을 던집니다. 버나뎃(케이트 블란쳇)이 사라진 모양입니다. 그는 어디로 간 걸까요? 고민할 새도 없이 정답이 공개됩니다. 첫 장면에서 버나뎃의 행방이 나오거든요. 그는 남극에서 홀로 작은 보트를 타고 있어요.

“왜 갔어, 버나뎃?” 이제 우린 이렇게 묻게 되죠. 영화의 방점은 ‘어디로’가 아닌 ‘왜’에 찍힙니다. 버나뎃은 왜, 어쩌다 남극으로 향한 걸까요. 노를 젓는 버나뎃의 표정에서 슬픔과 기쁨, 후련함과 두려움이 모두 읽혀 더욱 알쏭달쏭합니다.

영화는 5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딸 비(엠마 넬슨)는 부모님에게 졸업을 기념해 남극으로 가족여행을 가자고 제안합니다. 자, 여기서 첫 장면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버나뎃은 분명 혼자 보트를 타고 있었어요. 가족여행인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다른 가족들은 어디로 가고 버나뎃 홀로 남은 걸까요. 머릿속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상상해보며 본격 관람을 시작해봅니다.

버나뎃은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이웃과 사사건건 부딪힙니다. 그의 심기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두 명은 바로 옆집에 사는 오드리(크리스틴 위그)와 남편의 행정 비서로 일하는 수린(조이 차오)입니다. 버나뎃에게 친구라곤 온라인 비서 ‘만줄라’밖에 없어요. 만줄라에게 이것저것 잡무를 부탁하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도 합니다.

버나뎃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과도 불화를 겪습니다. 불안과 우울로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도 하죠. 여러 가지 약을 구분없이 한데 모아놓은 약통은 그의 위태로운 상태를 보여줍니다.

영화 <어디 갔어, 버나뎃>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


이토록 아슬아슬한 버나뎃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일이 연이어 발생합니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딸 비 앞에서 오드리와 격한 말싸움을 합니다. 그러다 “다른 엄마들도 당신 싫어하는 거 알아요? 동네 엄마들끼리 모녀 파자마 파티를 했는데 당신과 비는 초대도 안 한 거 알아요?” 같은 모욕적인 말까지 들어요.

워커홀릭인 남편 엘진(빌리 크루덥)은 위로는 못할 망정 오히려 버나뎃을 타박합니다. 오드리와의 말싸움을 일으킨 그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모두 버나뎃 탓으로 돌리죠. 딸 비는 오드리와의 말싸움으로 이미 상처를 입은 엄마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아빠가 밉습니다. 아빠에게 서운함을 쏟아내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버나뎃의 마음은 더욱 괴로워집니다.

위태롭게 버티던 버나뎃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러시아 범죄 조직의 국제 범죄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충격을 받은 버나뎃에게 남편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며 그를 몰아붙여요. 심지어 남극 가족여행 대신 정신병원에 입원하라는 말까지 합니다. 와르르 무너진 버나뎃은 도망을 택합니다.

버나뎃은 왜 이렇게 사회와, 또 스스로와 잘지내지 못하는 걸까요. 영화는 그 이유와 과정을 조금씩 보여줍니다. 20년 전 버나뎃은 천재 건축가로 주목받았습니다. 최연소로 맥아더상을 받은 건축가이자 남성 위주 업계에서 홀로 활동한 젊은 여성이었고, 녹색건축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건축계 샛별이었던 그는 ‘20마일 하우스 사건’ 등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떠안고 일을 그만뒀습니다. 남편을 따라 LA를 떠나 지금 살고 있는 시애틀로 왔죠. 그는 경력 단절 여성이었던 겁니다. “엘진은 내가 아직 LA에서 못 벗어났다는 걸 몰라.” “실패가 내 안에 파고들어서 놓아주질 않아.” 버나뎃이 오랜 동료를 만나 쏟아내는 말들에는 창작의 세계에서 떠난 뒤 방황했던 지난날이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첫 장면에서 이미 봤듯, 도망친 버나뎃은 남극으로 갑니다. 버나뎃은 그곳에서 다시 예전의 빛나던 모습으로 돌아오는데요. 그는 어떻게 ‘나’를 되찾을 수 있었을까요? 버나뎃이 집에서 탈출해 가장 처음 향한 곳이 어디일지도 맞혀보세요. 정답은 왓챠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마리아 셈플이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84주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전 세계 30여개국에서 번역·출간됐습니다. 책은 서간체여서, 각색된 영화와 비교해서 읽어보는 재미도 있겠습니다.

‘비포’ 시리즈(<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와 <보이후드> 등을 만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러닝타임 109분.

영화 <어디 갔어, 버나뎃> 포스터. 디스테이션 제공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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