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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기증' 비혼 출산, 가족 형태 변화 논의 이끌었지만
이시영은 전남편 동의 없는 냉동배아 임신으로 논란
난임시술 연간 20만건…법 허술해 생명윤리 문제 야기
"'배아 생성 동의' 철회 권리 등 정확한 정보 전달해야"


배우 이시영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최근 배우 이시영이 이혼한 전 남편의 동의 없이 냉동배아를 이식해 임신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생명 윤리 논란이 불거졌다.

이시영의 사례는 비혼 출산, 여성의 출산 결정권 문제를 넘어 당사자 동의 없는, 혹은 무분별한 정자·난자 이식과 활용에 대한 문제를 점화했다.

인공수정과 체외수정 등 불임·난임 치료를 위한 보조생식술은 연간 20만 건 이상 이뤄질 만큼 이제 보편화됐다.

그러나 배아의 생성·보관·이식·폐기 각 단계에 대한 법적 요건 및 제도가 명확하지 않아 법적·윤리적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유리의 비혼출산(CG)
[연합뉴스TV 제공]


여성의 자기결정권 넘어…동의없는 생식세포 이용 논란
앞서 2007년 인기 방송인 허수경은 "정자 기증을 통해 시험관 아기로 임신했다"고 밝히면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허수경의 당당한 커밍아웃으로 '자발적인 싱글맘'과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우리 사회 의제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13년 후인 2020년에는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가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했다고 공개하며 자발적인 싱글맘과 비혼 출산에 대한 주의를 다시금 환기했다.

허수경과 사유리의 사례는 논란 속에서도 정자 기증, 전통적인 가족상을 벗어난 비혼모 출산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시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동의 없는 정자 사용'이라는 문제를 쏘아 올렸다. 이는 뒤집어 '동의 없는 난자 사용'에 대한 위험도 경고한다.

이시영은 지난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남편과의) 법적 관계가 정리돼 갈 즈음 공교롭게 배아 냉동 보관 만료 시기가 다가왔다. 상대방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제가 내린 결정에 대한 무게는 온전히 안고 가려고 한다"며 전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밝혔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현행법상 이시영과 같이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냉동배아를 이식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배아 생성 의료기관은 배아를 생성하기 위해 난자·정자를 채취할 때 기증자·시술 대상자·배우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일부 병원에서는 냉동배아 생성 이후 이식 단계에서 별도 동의를 구하고 있지만, 이를 의무화하는 법률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배아를 생성하기 위한 시술에 대해서는 양측의 동의를 받고 있지만, 이식하는 과정에서의 동의 절차는 명확하지 않다"며 "법적 회색지대에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도 "현실적으로 배아 이식 단계에서 혼인 지속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법적으로 확인할 의무가 없으므로 환자가 거부한다면 강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상대의 동의 없이 배아를 이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난임시술을 준비하고 있거나 진행 중인 이들도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온라인 난임 카페에 글을 쓴 네이버 이용자 'hap***'은 "생명에 관한 것이라 법적인 조치가 당연히 촘촘할 줄 알았다. 불법이 아닌 것은 알겠지만 신체에 대한 근본적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고 남겼다.

또 다른 여성 이용자 '지***'도 "반대로 제 동의 없이 이혼한 남편이 내 배아를 누군가에게 이식해서 출산한다면 너무 화날 것 같다"고 했다.

작고 소중해
(고양=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임산부의 날'인 지난해 10월 10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차병원에서 특강을 듣는 부모를 대신해 직원이 아이를 보살피고 있다. 2025.7.12 [email protected]


수십·수백명이 '묻지마 형제'…해외서 '생식세포 부실 관리' 문제
정자 기증이 활성화된 해외에서는 생식세포를 무분별하게 활용해 문제 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난임부부를 돕겠다는 취지로 정자를 기증했다가 생물학적 자녀를 30여명 두게 된 네덜란드 남성 니코 카위트 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네덜란드는 단일 기증자를 통해 태어날 수 있는 아이의 수를 25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나,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호주에서도 무분별한 정자기증 및 활용으로 인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됐다.

지난해 호주 ABC는 기증받은 정자로 태어난 캐서린 도슨 씨 사례를 소개하며, 도슨씨에게 최대 700명의 형제·자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ABC는 1970∼1980년대 정자를 기부할 때마다 10호주달러를 지급했던 제도를 악용해 여러 이름을 써가며 수백회 자신의 정자를 기증한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정자 기증 제도를 극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유명인으로는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세계 12개국에서 정자 기증자로 활동하며 약 106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있다.

머스크는 지구에 지능이 높은 사람이 늘어나야 서양 문명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정자 기증자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 여성 인플루언서에게 정자를 기증해 13번째 자녀를 출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언론 인터뷰에서 출산율 위기를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한국을 그 예로 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개봉한 영화 '대가족'은 엘리트 의대생 문석(이승기 분)이 의대 교수의 강요로 무려 500여 차례 원치 않는 정차 기증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도중에 문석이 중국집 배달원에게 돈을 주고 자신인척 정자를 기증하도록 하기도 하면서 훗날 정자 기증을 통해 태어난 수많은 아이들의 친부가 누구인지를 놓고 대혼란이 펼쳐진다.

웃자고 만든 코미디지만 뜯어보면 '묻지마 정자 기증'이 얼마나 위험한지가 들어있다. 엘리트의 우수한 정자를 널리 뿌리는 게 좋은 일이라는 의대 교수의 생각은 나치의 만행과도 오버랩된다.

이들 사례는 부실한 관리 탓이든, 의도적이든 한 사람의 정자에서 수십·수백명의 형제가, 심지어 때로는 동시다발적으로 생산되는 것을 둘러싼 법적·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

친권·양육권은 물론이고, 혈육·가족·근친의 범위 문제가 발생하며 우생학 논란, 생식세포 사기, 생명 경시 문제까지도 불거진다.

체외수정
[연합뉴스TV 제공]


법규 정비 필요성…"비혼 출산과 보조생식술은 피할 수 없는 현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정자 기증 횟수 제한 등에 대한 구체적 법률이 없어 무분별한 생식세포 활용을 저지할 방법이 없다.

현행 생명윤리법상 다른 사람의 불임치료를 위한 난자 채취 빈도는 평생 3회로 정해져 있으나 정자 채취 횟수 제한은 없다.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생명윤리법 개정안에도 정자에 관한 내용은 없다. 병원에서 치료 및 진단을 목적으로 사용하고 남은 조직·세포·혈액 등을 의료기관이 활용하기 위해서는 피채취자로부터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이에 생식세포 활용에 관한 법규 정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간한 '통계로 보는 난임시술' 책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에서 이뤄진 난임 시술은 총 20만7건으로, 2019년(14만6천354건) 대비 36.7% 증가했다.

초고령·저출생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보조생식술은 증가세인데, 이시영 사례처럼 법의 사각지대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보조생식술 등 낯선 제도에 대해 의료진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필요가 있으며, 당국의 적극적인 제도 홍보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엄경천 가족법 전문 변호사는 "배아 생성에 동의한 후에 당사자가 원한다면 동의를 철회할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의료기관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시영 사례의 사실관계와 법리적인 문제가 제대로 알려져 배아 생성 및 이식을 통한 체외수정과 관련된 관행이 잘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간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지는 비혼출산·정자기증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당국이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비혼 여성을 위한 난임시술은 제도권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을 통해 "정자 공여 시술은 원칙적으로 부부(사실상의 혼인 관계에 있는 경우를 포함)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정하고 있다.

박남철 재단법인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이사장은 "비혼 출산과 보조생식술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세계는 바뀌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심각한 저출산 속에서도 보조생식술에 대한 배타적 인식을 갖고 있다"며 "국가 차원의 정자은행을 운영해 이를 투명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체외 수정
[서울아산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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