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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닉’ 이재진의 러닝 코스
폭염이 쏟아져도 끄떡없는 곳이 숲이다. 하늘을 가리다시피 한 나뭇가지와 잎들이 더위를 막아준다. 남산둘레길도 마찬가지. 이른 아침에 달리기에 나선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박미향 기자

편집자주

국내 러너들 사이에서 스승처럼 추앙받는 달리기 전문 유튜브 채널 ‘마라닉티브이(TV)’ 운영자 이재진 작가가 러닝 코스를 한달에 한번 추천합니다. 초보자부터 ‘프로’ 러너까지 흔쾌히 달릴 만한 곳들입니다. 이 작가는 격무에 시달리다 퇴사한 뒤 지난 9년간 달리기를 통해 삶의 다른 여정을 시작한 이입니다. ‘마라닉티브이’는 ‘마라톤을 피크닉처럼’ 즐겁게 하자는 의미를 담은 명칭입니다.
폭염이 쏟아져도 끄떡없는 곳이 숲이다. 하늘을 가리다시피 한 나뭇가지와 잎들이 더위를 막아준다. 남산둘레길도 마찬가지. 이른 아침에 달리기에 나선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박미향 기자

“서울에서 달리기 좋은 곳은 어디인가요?” 러닝 입문자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이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 지루하지 않은 코스, 교통 접근성, 러너의 안전, 화장실 유무 등 사람마다 다른 기준이 작동한다. 하지만 내 기준은 조금 독특하다. 달리기가 일상의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마라톤을 피크닉처럼’ 즐길 수 있는 장소인지가 기준이다. 걷고, 달리고, 쉬고,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즐길 수 있는 코스인지를 따진다. 피크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치열하게 달리며 기록을 만들기 위한 코스가 아닌, 느긋한 러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곳들이다. 서울의 도심 속에서 달리기를 소풍처럼 즐길 수 있는 4곳을 소개한다.

서울숲공원은 달리기에 나선 이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자주 찾는 여행 명소다. 신소영 기자

서울숲공원-뚝섬한강공원 코스

지하철 서울숲역 3번 출구 → 서울숲 내부 산책로 → 뚝섬한강공원 → 한강 자전거길 따라 잠실 방면이나 반포 방면 선택

3㎞에서 10㎞까지 원하는 만큼 달릴 수 있는 코스. 서울숲공원 내부를 한바퀴 돌면 약 3㎞ 달린 셈. 서울숲공원에서 뚝섬한강공원까지는 편도 약 3.5㎞ 거리.
서울 한복판에서 숲과 강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도심형 러닝 코스다. 서울숲공원의 싱그러운 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뚝섬한강공원이 나타난다. 그 길의 끝엔 탁 트인 한강 풍경이 기다린다.

초보 러너라면, 서울숲공원만 한바퀴 도는 것도 훌륭한 선택이다. 약 3㎞의 짧은 거리지만, 코스 중간에 울창한 나무 터널과 호수, 그리고 사슴 우리를 지나는 재미가 있다. 지루할 틈 없다. 힐링 러닝 코스다. 서울숲공원을 벗어나 한강공원에 접어드는 지점에선 러닝 시간대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각에는 고요한 한강 수면 위에 연분홍빛 안개가 깔리고, 동쪽 하늘이 아주 천천히 밝아온다. 도심에서 맞이하는 그 찰나는 마치 내 하루가 새로 태어나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한편, 해 질 무렵 붉게 물드는 하늘을 배경으로 한강변을 달리는 경험은 러너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된다.

봄에는 벚꽃이 서울숲공원 외곽을 따라 흐드러지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 아래로 시원한 그늘이 펼쳐진다. 가을엔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낙엽이 러닝 코스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겨울에는 서늘한 공기 속에서 도심과 강의 실루엣이 묘한 고요함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길은, 단 한번의 러닝으로는 다 볼 수 없다. 달리는 걸음마다 풍경이 다르고, 그날의 마음마다 길이 다르게 기억된다. 러닝의 습관을 만들기에 딱 좋을 코스다.

초원이 펼쳐진 올림픽공원. 소풍 나온 이들 사이로 러닝에 몰입하는 이가 많은 곳이다. 신소영 기자

올림픽공원-몽촌토성길 코스

지하철 올림픽공원역 3번 출구 → 세계평화의 문 진입 → 몽촌해자 산책길 → 몽촌토성길 외곽 순환 → 한성백제역이나 올림픽공원역으로 복귀

3㎞부터 7.5㎞까지 다양한 루트 선택 가능. 올림픽공원 내부 순환 코스는 약 3.5㎞. 몽촌해자(호수)와 공원 외곽 루트, 몽촌토성길까지 이어 달리면서 공원 내부 코스까지 포함하면 최대 10㎞까지 코스 확장 가능.
서울 동남권에서 가장 ‘단정한 풍경’ 속에서 러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올림픽공원이다. 1988년 ‘서울 여름올림픽’의 뜨거웠던 열기를 품은 공원은, 공원이란 공간적 의미를 넘어 문화와 자연이 공존하는 러닝 명소다. 탁 트인 초원 위에 홀로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달리다 보면, 마치 마음에 바람 한줄기가 스며드는 듯하다. 잘 정돈된 산책로와 나무들, 길이 부드럽게 휘어지고,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들이 작은 전시처럼 다가온다.

특히 몽촌해자 수변 산책로는 치유를 주는 고요한 공간이다. 나무 그늘과 벤치가 잘 정비되어 있어, 잠시 숨 고르기에 좋다. 느긋하게 달리면서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을 따라 조깅을 이어가 보자. 가끔 바람에 실려 오는 운동하는 이들의 활기찬 기운이 러닝의 리듬감을 만들어준다. 이곳의 매력은 정돈된 자연이다. 과하지 않고, 너무 번잡하지 않으며, 각자의 속도로 걷고 달릴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출발지인 ‘세계평화의 문’ 앞에선 꼭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길 권한다. 날씨가 맑은 날엔 ‘서울 하늘이 이렇게 넓고 맑았나’ 싶을 만큼 깨끗한 풍경이 펼쳐진다. 어느새 일상에서 가장 멀리 떠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달리기란 결국 가장 단순한 여행이다. 그리고 올림픽공원은 그 여행을 시작하기에 가장 평화로운 장소다.

폭염이 쏟아져도 끄떡없는 곳이 숲이다. 하늘을 가리다시피 한 나뭇가지와 잎들이 더위를 막아준다. 남산둘레길도 마찬가지. 이른 아침에 달리기에 나선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박미향 기자

폭염이 쏟아져도 끄떡없는 곳이 숲이다. 하늘을 가리다시피 한 나뭇가지와 잎들이 더위를 막아준다. 남산둘레길도 마찬가지. 이른 아침에 달리기에 나선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박미향 기자

남산둘레길 북측순환로 코스

지하철 명동역 3번 출구나 회현역 1번 출구 → 남산공원 입구 → 북측순환로 진입 → 팔각정 쉼터나 엔(N)서울타워 하단 → 원점 복귀 혹은 반대편 순환로 연계

총거리는 편도 약 3.3㎞, 왕복 약 6.6㎞. 대부분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 구간으로 초·중급 러너에게 적합.
서울 중심부에서 가장 정제된 고요함을 품은 러닝 코스가 남산둘레길 ‘북측순환로’다.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이 길에 한발 들이는 순간 소음이 사라진다.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과 새소리만이 귀를 채운다. 출발 지점은 명동 혹은 회현동. ‘북측순환로’ 들머리에서 이어지는 부드러운 오르막길은 ‘달리기’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

포장된 도로는 러너들의 발걸음에 안정감을 주고, 곳곳에 설치된 벤치와 쉼터는 중간 휴식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완만한 경사와 넓은 길 덕분에 사람들과 부딪힐 걱정도 없다. 각자 속도로 ‘걷고, 달리고, 멈추고’를 반복할 수 있다.

이 코스의 가장 큰 매력은 ‘풍경의 전개’다. 도심을 등지고 숲을 향해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엔서울타워 아래에 자연스럽게 도착한다. 팔각정 쉼터에선 발아래로 펼쳐진 서울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밤이면 남산 타워의 조명이 북측 숲길을 은은하게 밝혀준다. 낮에는 울창한 녹음 속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만든 그림자가 길 위에 드리워진다.

이 길은 단순한 왕복 루트가 아니다.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그날의 기분과 속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길로 느껴진다. 계절마다 다르고, 시간대마다 다르며, 그날의 마음에 따라 또 다르게 기억되는 길이다. 길 중간에 있는 전망 지점마다 걸음을 멈추게 하는 ‘소풍’ 같은 장소다. 많은 러너가 기록 단축을 위해 훈련하는 곳이기도 하다.

옛 철길과 숲 사이를 달리게 되는 러닝 명소인 경춘선숲길 코스. 달리면서 색다른 풍광을 만난다. 이재진 제공

경춘선숲길-중랑천 코스

화랑대역 폐역 앞 → 경춘선숲길 → 중랑천 합류 지점 → 중랑천 자전거길 따라 추가 연장 가능

화랑대역 폐역에서 중랑천 합류 지점까지 약 3㎞(왕복 6㎞). 중랑천 산책로 따라 러닝 거리 확장 가능. 10㎞ 이상도 가능.
기차가 멈춘 자리에 옛 철길을 따라 달리는 특별한 시간이 시작된다. 낡은 철로 위를 달린다는 일은 시간을 거슬러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서울 노원구에 있는 경춘선숲길은 한때 열차가 달리던 그 길이다. 이젠 러너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특별한 코스가 됐다. 화랑대역 폐역에서 시작하는 이 길은 옛 철길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독특한 풍광을 연출하는 러닝 코스다.

철도 레일 일부를 그대로 보존한 구간, 기차 모양의 쉼터, 철도 신호등 같은 풍경이 곳곳에 남아 있다. 달리다 보면 마치 기차를 타고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무 데크와 흙길이 번갈아 나오는 길에서 러닝은 속도보다 ‘흐름’에 집중하게 된다.

옛 철길과 숲 사이를 달리게 되는 러닝 명소인 경춘선숲길 코스. 달리면서 색다른 풍광을 만난다. 박미향 기자

아침 시간대 이곳은 특히 조용하고 맑다. 햇살이 곧게 솟은 미루나무 사이로 쏟아지고, 녹이 슨 철로 위에서 부서진다. 매일 이 길을 달리는 내게도 이상하리만치 같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날의 기분과 그날의 빛, 그날의 공기와 함께 달리기 때문일까. 그 기분에 따라 원하는 만큼 더 달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철길의 끝에는 중랑천 산책로가 한강까지 20㎞나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코스의 진짜 매력은 ‘확장성’에 있다. 기차가 멈췄던 자리에서 러너는 멈추지 않는다.

경춘선숲길은 내가 ‘달리기를 삶처럼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시끄럽지 않고, 조급하지 않고,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 이곳이다. 매일의 반복 속에서도 늘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해주는 길이다. 나는 오늘도 이 길을 달린다.

이재진 ‘마라닉 페이스’ 저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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