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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말라야'(감독 이석훈) 속
산악인 엄홍길 대장(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네팔 오지에 20개 휴먼스쿨 세워
[서울경제]

실화 기반 영화, 드라마, 책 등 콘텐츠 속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다양한 작품 속 실제 인물들을 ‘리캐스트’하여 작품에는 미처 담기지 못한 삶과 사회의 면면을 기록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영화 '히말라야' 스틸컷. 극중 황정민은 산악인 엄홍길 대장 역을 맡았다. 사진 제공=CJ 엔터테인먼트


“산쟁이들은 정복이란 말 안 씁니다. 운 좋게 산이 허락해서 산에 잠깐 머물다 내려가는 거죠.” (영화 ‘히말라야’ 中 엄홍길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서울 종로구 소재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수호 기자


1988년 에베레스트(8850m)를 시작으로 2007년 로체샤르(8400m)까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6좌를 등정한 엄홍길 대장(65·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은 여전히 1년에 6번씩 네팔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제는 히말라야 꼭대기가 아닌 산 아래서 ‘인생 17좌’를 차곡차곡 쌓기 위해서다. 엄 대장의 17번째 산봉우리는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로서 네팔 히말라야 오지에 학교를 짓는 것이다.

11차 네팔 건지 휴먼스쿨. 사진 제공=엄홍길휴먼재단


“산 정상만 바라봤던 제 눈에 어느 순간 산 아래가 보이더라고요. 산 아래에 있는 아이들의 세상이 말이에요.”


산은 정복하는 게 아니라던 엄 대장은 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학교를 짓는다. 2007년 엄 대장은 마지막 16번째 고봉이었던 로체샤르에서 수차례 죽을 고비를 겪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그는 히말라야에 빌고 또 빌었다.
“저를 살려 보내주신다면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저 혼자 누리며 살지 않겠습니다. 산 아래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습니다”라고.


히말라야로부터 깨우침을 얻고 로체샤르서 내려온 엄 대장은 이듬해 5월 28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재단을 설립, 2009년 첫 팡보체 휴먼스쿨 기공식을 열었다. 엄 대장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며 “아이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선 ‘교육’만이 답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4일 네팔 슈르켓에서 열린 ‘인천국제공항공사-엄홍길 네팔 휴먼스쿨 기공식


당초 ‘16좌 등정에 맞춰 16개 학교를 짓겠다’며 재단을 세운 엄 대장은 어느덧 네팔에 20개 학교를 건립했다. 엄홍길휴먼재단은 지난달 4일 네팔의 오지마을인 슈르켓 지역에서 재단의 20번째 학교인 ‘인천국제공항공사-엄홍길 네팔 휴먼스쿨’ 건립 기공식을 거행했다. 산 아래서 펼쳐진 그의 인생 17좌에는 20개 학교와 7800명 학생이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775만 관객 울린 엄 대장의 ‘휴먼원정대’ 이야기



영화 ‘히말라야’ 스틸컷. 사진 제공=CJ 엔터테인먼트


‘엄홍길’ 하면 2015년 개봉작 ‘히말라야’(누적 관객수 775만명)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사망한 엄 대장의 동료 고(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휴먼원정대’ 이야기를 담은 실화 기반 영화다.

고(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끌어안고 있는 엄 대장. 엄홍길휴먼재단 제공


엄 대장과 히말라야 4개봉을 함께 올랐던 박 대원은 2004년 5월 학교 후배들과 함께한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사망했다. 사고 1년 후인 2005년 4월, 박 대원 시신 수습을 위해 나선 엄 대장은 눈밭 위에서 박 대원을 재회했지만, 기상악화 위기에 직면했다. 엄 대장은 이것이 에베레스트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해가 잘 드는 곳에 돌무덤을 만들어 박 대원을 묻어주었다.

히말라야 등반 중 박 대원을 비롯해 동료 10여명을 잃은 엄 대장은 매일 아침 동료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는 “지금도 그들의 모습이 너무 생생하다”면서 “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무너지고 있는 ‘세계의 지붕’



엄홍길 대장이 서울 종로구 소재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수호 기자


“멀쩡한 산을 깎으니 토사가 흘러나오고 계곡이 황폐화되고 산사태가 일어나고…옛날엔 깨끗하고 조용했던 히말라야가 지금은 많이 오염됐어요.”


그가 동료들과 함께 히말라야를 등반하던 세월이 22년, 산 아래서 학교를 지은 시간이 18년이다. 40년 동안 히말라야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엄 대장은 격세지감을 느낀다. 히말라야가 예전 같지 않아서다.

그는 “빙하가 급속도로 녹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기상기구(WMO)의 ‘2024년 아시아 기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히말라야 중부와 중국의 톈산 산맥에서는 빙하 24개 중 23개가 대규모로 유실됐다. 지난 4월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통합산악발전국제센터(ICIMOD)는 힌두쿠시·히말라야산맥 지역 적설량이 2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AFP연합뉴스


에베레스트는 ‘지구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장’이라고도 묘사된다. 매년 4월 말∼5월 말 등반 시즌이 되면 수만 명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찾고, 수백명이 정상 도전에 나선다. 이렇다 보니 등반객들이 버린 쓰레기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후 변화까지 겹쳐 상황은 악화일로다.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수십 년 된 쓰레기들이 드러나고 빙하수로 흘러 내려가 마을 수자원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엄 대장은 “발전이 멈추지 않는 한 히말라야 환경은 갈수록 안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 5월 3일 쥬갈 히말라야 정상에 선 엄 대장. 사진 제공=엄홍길휴먼재단


히말라야가 제2의 고향이라는 엄 대장은 지난해 한국-네팔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히말라야 미답봉 쥬갈 1봉(6591m)에 다시 도전했다. 2007년 로체샤르 등정 이후 17년 만이다. 17년 전 “저를 내려 보내주신다면 반드시 은혜를 갚겠다”라고 기도했던 엄 대장은 쥬갈 1봉을 오른 후에도 산신에게 빌었다.
“꼭 살아서 내려가야 합니다. 20개 학교 7900명 학생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쥬갈봉에서 하산한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같은 해 12월 제19차 쉬리 프라나미 휴먼스쿨을 완공했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정상에서 내려온 엄 대장은 마침내, 네팔 아이들의 지붕이 되었다.

‘김수호의 리캐스트’ 연재를 구독하시면 다양한 작품 속 인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접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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